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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raya Sep 17. 2015

여행, 언어를 뛰어 넘는 아름다움

6개월 중남미 여행 59일째_ 에콰도르 아줌마와의 데이트 

여행을 하다 보면 언어를 뛰어넘는 것들에 집중하게 된다. 사랑, 음악, 예술, 아름다운 것들. 언어의 장벽에 가로막혀 답답할 때도 있을지언정, 언어를 뛰어넘는 아름다움에 나의 감정을 온전히 열어버리는 것이다. 



에콰도르에 막 도착했을 때, 돈을 아껴보자며 택시가 아닌 시내 버스를 타기로 했다. 어찌어찌 헤매다 무사히 시내버스를 탔고, 내릴 때쯤 기사 아저씨에게 샌 프란시스코 광장까지 가는 길을 물었다. 그랬더니 옆에 있던 한 푸근해 보이는 에콰도르 아줌마께서 함께 가자며, 길을 알려주시겠다고 했다. 역시나 나는 냉큼 따라갔다. 아줌마는 내가 얘기한 호스텔 까지 나를 데려다 주며, 키토 구시가지 곳곳에 있는 명소를 알려주셨다. 내가 스페인어를 잘 하지 못했던 터라 절반도 이해하지 못했지만, 그런 나를 위해 사진도 찍어주시고 호스텔에서 흥정까지 도와주셨다! 


그리고도 모자라 저녁에 친구가 노래하는 바에 가자며 나를 초대해 주셨다. 사실 나는, 하루 종일 아주머니의 스페인어를 이해하려고 용쓰느라 진이 다 빠져있었다. 그렇지만, 아주머니의 호의를 거절할 수는 없었다. 지친 몸을 이끌고 아주머니의 친구가 노래하는 바에 도착했다. 차가운 키토의 공기와 따뜻한 canelazo(열대 과일과 계피로 맛을 낸 따뜻한 술) 한 잔, 그리고 음악. 하루 종일 곤두서 있던 신경이 마침내  무장 해제되는 기분이 들었다. 그저, 행복했다. 음악과 따뜻한 술 한 잔, 언어 따위는 필요 없었다. 



내가 만났던 다른 친구들 또한 전혀 영어를 구사할 수 없는 이들이 많았다. 하지만, 우리는 소통할 수 있었다. 일치하는 언어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대화가 되는 것이 신기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도대체 어떻게 내가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는지 도통 알 수가 없다. 



내가 사랑하는 책 중 하나인 은밀한 생 (파스칼 키냐르/문학과  지성사/2001)에서 발췌.



전혀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함은 굉장한 전달 수단이다. (75) 


언어는 자가당착에 빠지기를 좋아한다. 자기 모순에 빠지기를 즐길 뿐만 아니라, 우리로 하여금 말이 하고 싶어 안달이 나게 만든다. 언어는 지배력을 추구한다. 언어의 기능은 대화인데, 대화는 오늘날에는 무슨 말을 하든 간에 전쟁이다. 그건 말로 하는 전쟁이어서 몸으로 하는 결투를 대신한다. 지도자들은 언제나 무엇보다도 언어를 사랑했다... 즉 가슴 깊이 느껴지는 모든 것을 외면해야만 한다. (80) 


인간의 언어로 들어가는 입구의 문은  하나뿐이다. 인간의 언어의 출구에는 세 개의 문이 있다: 즉 수면, 침묵, 나체다. 세 개의 문은 세 개의 결별이다. (459) 


비교적 성공적으로 퍼즐을 맞추려면 소통 불가능한 것을 가능하게 만드는 '사랑'이라는 열쇠를 사용하되 사랑의 세 가지 금기를 지키지 않으면 안된다. 세 가지 금기란 잠들기 말 것, 말하지 말 것, 보지 말 것이다. (482)





나는 침묵이 사랑의 필수 요소라는 점에 동의한다. 언어는 너무나 많은 것을 파괴한다. 


그런 점에서 여행도 사랑도, 

가끔은 침묵의 시간이 필요하다. 

언어를 뛰어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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