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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raya Sep 23. 2015

달, 그리고 아빠 @Bolivia

6개월 중남미 여행 108일째: 아름다운 것과 기억의 비밀 창고 

나는 아빠를 싫어한다. 


내가 고3 일 때, 아빠와 엄마는 헤어졌다. 그 이후로 몇 번의 재결합과 헤어짐의 반복이 있었고, 그 과정에서 나는 지쳐갔다. 


아빠라는 사람에 대한 나의 기억은 모순에서 시작된다. 먼지 쌓인 앨범 사진 속 다정했던 아빠와, 지금의 남보다 못한 한 사람. 페루와 볼리비아를 여행하면서 참 많은 버스를 탔다. 밤 버스를 타면서 셀 수 없는 별들과 달을 보았다. 그 달을 보면, 이상하게도 항상 아빠에 대한 기억의 파편들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철학자의 여행법에서 미쉘 옹프레는 말했다. - 우리가 일상에서 벗어나 여행을 하게 되면 오감이 열리고 아름다운 것들을 보고 듣고 느낄 수 있게 된다- 고. 볼리비아 우루로로 가는 버스 안에서의 노을이 너무 아름다워서 였을까, 갑자기, 내 기억의 비밀 창고가 열려버렸다. 반짝반짝한 기억들, 내 무의식 깊숙이 박혀있던 그 기억이 왜 그제야 떠올랐는지 알 수 없지만 세상의 아름다운 것들과 빛나는 기억은 한 통속이기 때문이 아닐까. 지금은 생사도 모르는 아빠에 대한 기억이 지구 반대편 볼리비아에서 불쑥 나타날 줄이야. 모든 것이 너무도 아름답고 반짝거려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듣고 있는 음악도 아름답고, 차창밖의 노을도 아름답고, 내 기억도 반짝 반짝.



그중, 가장 아름다운 조각은 아빠의 작은 택시 안에 행복한 우리 네 가족이 함께 타 있던 밤이었다.  7살쯤이었을까. 아빠가 운전하는 택시 안에서 바라본 밤 하늘의 달이, 자꾸만 나를 따라왔다. 우리 네 가족은 행복했고, 나는 아빠에게 물었다.  "아빠 왜 자꾸만 달이 따라와?" 


아빠는,


달님이,

나를,

지켜주는 거라고 했다.


아빠에 대한 기억을 꺼내는 일은 언제나 고통스럽다. 프로이트 아저씨가 말한 저- 깊고 깊은 빙하 아래 있는 창고에, 나는 아빠에 대한 기억들을 숨겨두었다. 자꾸 보이면 아프니까.


그런데도 이상하게 달이 나를 따라오는 날이면, 어김없이 아빠가 생각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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