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개월 중남미 여행_ 번외 편
왈칵, 눈물이 났다. 선배는 잘 지내고 있을까? 왜 그렇게 떠났을까. 처음이었다. 이렇게 가까운 사람이 죽었다는 사실이. 2014년 8월 29일, 처음 가보는 철원에서 그렇게 선배를 보냈다.
왜 하필 남미로 떠나는 비행기에서 본 영화가 보이후드였을까. 우리는 살면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영향을 받는가? 작디작은 인생의 유리파편들이 모여 하나의 인간이 만들어지는 과정이 바로 이 영화 보이후드 전체를 관통한다. 여행하는 내내 이 영화가 많이 떠올랐다. 내 인생의 작은 조각들을 이루고 있는 사람들이 불쑥 떠오를 때가 많았고, 새로이 만난 사람들이 나의 또 다른 조각이 되어가는 것을 느꼈다.
선배는 내게 각별한 사람이었다. 첫 회사의, 첫 프로젝트에서 만난, 나의 첫 사수였다. 어리바리 아무것도 모르는 나를 차근차근 가르쳤고, 타지 생활과 야근과 스트레스 속에도 먼저 농담을 건네는 사람이었다. 나에게는 마냥 커 보이는 사람이었다. 선배는.
선배에 대한 기억들은 언제나 불쑥 나타나서 내 머릿속을 헤집고 도망 가버린다. 손 끝에서 맴도는 이야기들은 언제나 일기장에 꾹꾹 눌러 숨겨두었으나, 언젠가 한 번은 선배의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 아니 뱉어내야만 했다. 내게 선배는, 생각보다 큰 파편이었다.
바야흐로 봄이다. 청첩장은 늘어가고 지갑은 얇아지는 계절. 지난주 토요일에는 결혼식이 두 개나 있었다. 하나는 대학 동기인 친구의 결혼식이었고, 다른 하나는 선배와 함께했던 프로젝트에서 탄생한 커플의 결혼식이었다. 유일한 동갑내기 여사원으로 친해진 그녀였기에 꼭 참석하겠노라 약속했다. 오랜만에 예쁘게 차려입고 집을 나섰다. 그런데, 지하철을 타고 가는 내내 마음이 불편했다. 선배가 생각났다. 갑자기 나는 무서워졌다.
사람들은 선배를 잊었을까?
나조차도 잊고 지내다 불쑥 떠오르는 선배의 기억에 놀라면서, 선배가 잊히는 게 무서웠다. 사람들은 나를 보면 선배를 생각하겠지. 항상 옆자리에 앉아 투닥대던 우리를. 지하철에 앉아 목 끝까지 차오른 눈물을 꾹꾹 눌렀다. 도착하니 식은 이미 시작되었고 축의금을 내고는 도망치듯 나오는데, 엘리베이터 앞에서 아는 얼굴들을 마주쳤다. 밝게 인사는 했는데, 아마 나를 못 알아본 것 같았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리고는 친구의 식장으로 급히 발길을 돌렸다. 그렇게 내 마음의 잔이 찰랑이며 가득 차있는 채로. 결국 친구의 결혼식을 보다 눈물샘이 터져버렸다. 딸을 보내는 아버지의 눈물을 보는 순간, 아슬아슬 가득 차 있던 잔에 마지막 한 방울이 떨어지면서. 친구 아버지에 대해 아는 거라곤 친구에게 들은 말 몇 마디뿐인데도, 그 자리에서 펑펑 울고야 말았다. 선배는 왜 그랬을까. 다른 삶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힘들었던 걸까? 차라리 죽었다는 건 거짓말이고 어딘가에 가서 아무도 모르게 새로운 사람으로 살고 있었으면 좋겠다.
여행을 하면서 얻은 것이 무엇이냐 묻는 사람들이 많다. 사실 그런 거 없다. 그래도 하나를 꼽자면, 내가 만난 사람들과의 빛나는 순간들이, 나를 이루는 또 하나의 빛나는 파편이 될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는 거다.
나를 만드는 조각들에게 감사하며,
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