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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raya Apr 26. 2016

떠난 선배가 부쩍 생각나는 요즘,

6개월 중남미 여행_ 번외 편 

@Cusco, Peru


왈칵, 눈물이 났다. 선배는 잘 지내고 있을까? 왜 그렇게 떠났을까. 처음이었다. 이렇게 가까운 사람이 죽었다는 사실이. 2014년 8월 29일, 처음 가보는 철원에서 그렇게 선배를 보냈다. 


왜 하필 남미로 떠나는 비행기에서 본 영화가 보이후드였을까. 우리는 살면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영향을 받는가? 작디작은 인생의 유리파편들이 모여 하나의 인간이 만들어지는 과정이 바로 이 영화 보이후드 전체를 관통한다. 여행하는 내내 이 영화가 많이 떠올랐다. 내 인생의 작은 조각들을 이루고 있는 사람들이 불쑥 떠오를 때가 많았고, 새로이 만난 사람들이 나의 또 다른 조각이 되어가는 것을 느꼈다. 


선배는 내게 각별한 사람이었다. 첫 회사의, 첫 프로젝트에서 만난, 나의 첫 사수였다. 어리바리 아무것도 모르는 나를 차근차근 가르쳤고, 타지 생활과 야근과 스트레스 속에도 먼저 농담을 건네는 사람이었다. 나에게는 마냥 커 보이는 사람이었다. 선배는.


@Santiago, Chile


선배에 대한 기억들은 언제나 불쑥 나타나서 내 머릿속을 헤집고 도망 가버린다. 손 끝에서 맴도는 이야기들은 언제나 일기장에 꾹꾹 눌러 숨겨두었으나, 언젠가 한 번은 선배의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 아니 뱉어내야만 했다. 내게 선배는, 생각보다 큰 파편이었다. 


바야흐로 봄이다. 청첩장은 늘어가고 지갑은 얇아지는 계절. 지난주 토요일에는 결혼식이 두 개나 있었다. 하나는 대학 동기인 친구의 결혼식이었고, 다른 하나는 선배와 함께했던 프로젝트에서 탄생한 커플의 결혼식이었다. 유일한 동갑내기 여사원으로 친해진 그녀였기에 꼭 참석하겠노라 약속했다. 오랜만에 예쁘게 차려입고 집을 나섰다. 그런데, 지하철을 타고 가는 내내 마음이 불편했다. 선배가 생각났다. 갑자기 나는 무서워졌다. 


사람들은 선배를 잊었을까?


@Santiago, Chile


나조차도 잊고 지내다 불쑥 떠오르는 선배의 기억에 놀라면서, 선배가 잊히는 게 무서웠다. 사람들은 나를 보면 선배를 생각하겠지. 항상 옆자리에 앉아 투닥대던 우리를. 지하철에 앉아 목 끝까지 차오른 눈물을 꾹꾹 눌렀다. 도착하니 식은 이미 시작되었고 축의금을 내고는 도망치듯 나오는데, 엘리베이터 앞에서 아는 얼굴들을 마주쳤다. 밝게 인사는 했는데, 아마 나를 못 알아본 것 같았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리고는 친구의 식장으로 급히 발길을 돌렸다. 그렇게 내 마음의 잔이 찰랑이며 가득 차있는 채로. 결국 친구의 결혼식을 보다 눈물샘이 터져버렸다. 딸을 보내는 아버지의 눈물을 보는 순간, 아슬아슬 가득 차 있던 잔에 마지막 한 방울이 떨어지면서. 친구 아버지에 대해 아는 거라곤 친구에게 들은 말 몇 마디뿐인데도, 그 자리에서 펑펑 울고야 말았다. 선배는 왜 그랬을까. 다른 삶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힘들었던 걸까? 차라리 죽었다는 건 거짓말이고 어딘가에 가서 아무도 모르게 새로운 사람으로 살고 있었으면 좋겠다. 


@Santiago, Chile


여행을 하면서 얻은 것이 무엇이냐 묻는 사람들이 많다. 사실 그런 거 없다. 그래도 하나를 꼽자면, 내가 만난 사람들과의 빛나는 순간들이, 나를 이루는 또 하나의 빛나는 파편이 될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는 거다. 


나를 만드는 조각들에게 감사하며,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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