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숨 쉬는 삶

#04. 나를 갈아서 내가 되는 일을 하고 싶어요.

젊은이들의 고군분투 홀로서기: 작가/일러스트레이터 홍갈홍갈

by Soraya

작가/일러스트레이터 홍갈홍갈

https://www.instagram.com/hongal.hongal/

http://www.picturebook-illust.com/san_kr/popup_gallery.asp?mem_id=hongal


느리지만 또박또박 조용하게 이야기하는 모습이 남달랐습니다. 자기 자신의 모습을 잃지 않고, 십 년 동안 꾸준히 본인만의 그림을 그리는 그녀. "꾸준함의 힘"에 대해 생각하게 만드는 소녀, 홍갈홍갈의 이야기입니다.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해도 될까요?

: 일러스트를 그리고, 책을 쓰고 있는 홍갈홍갈 홍화정입니다. "혼자 있기 싫은 날”이라는 일러스트 에세이집을 냈어요.


여태까지 하셨던 일을 간단히 알려주세요!

: 그래픽 디자인과 편집 디자인을 전공하고 제주도에 있는 한 회사에서 UI 디자인 일을 했었어요. 사실 이쪽 일을 하고 싶었다기보다는 그냥 제주도에서 살아보고 싶었어요. 그래서 공항에서 한 달 정도 일을 했는데 정말 너무 힘들더라고요. 한 달 만에 때려치우고 어쩌다 UI 일을 시작하게 되었어요. (그럼 그곳이 처음이자 마지막 회사였나요?) 사실 졸업하기 전부터 일을 했었어요. 학업과 일을 병행했었는데, 그때는 아동 미술교재를 만드는 일을 했었어요.


제주도에 있는 좋은 회사였는데.. 퇴사를 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 회사를 다니며 깨달은 것이 있어요. 저는 실제로 손에 만져지는 작업을 하는 게 더 맞는 사람이더라고요. 완성물이 손으로 만져지는 성취감을 좋아해요. 그런데 UI는 완성물이 화면으로 보이는 것이다 보니 잘 맞지 않더라고요. 그리고 또 다른 이유는 제주도에서 생활하는데 필요한 비용이 너무 컸어요. 한마디로 생활이 어려웠죠. 출근을 하면서, 일을 하면서, 그리고 퇴근을 하면서도 “아, 이게 아닌데...”라는 생각이 계속 들었어요. 제주도의 환상도 이미 다 깨져버렸고요. 그러다 마침 책이 계약되면서 퇴사를 하고 서울로 올라왔어요.


나는대체뭘하고싶었던걸까.jpg 그 시절 그녀의 고민하는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퇴사하고 가장 하고 싶었던 일, 그리고 그 일을 이루었나요?

: 책이요. 회사 다니면서 써둔 원고가 쌓여있었거든요. 그 원고로 책 내는 일이 가장 하고 싶었죠. 3주 만에 그림까지 모두 손봐서 책을 완성했어요. 지금은 책 내는 일이 전혀 쉽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죠. (웃음)


인생 살면서 가장 잘한 일은 뭔가요?

: 고등학교 때 그림일기를 그려서 싸이월드에 올린 일이요. 제 일상을 담은 그림일기가 인기를 얻게 되었고, 페이퍼라는 잡지에 그림을 연재하기도 했어요. 가끔 8~9년째 제 그림을 봐주시는 분들의 이야기를 들어요. 그때 싸이월드에 그림을 안 올렸다면, 인생이 어떻게 달라졌을까요?


조직 안과 밖에서 일하는 것의 장단점이 있다면?

: 조직 안에서 일할 때는 배울 사람이 있는 게 정말 좋아요. 모르면 물어볼 사람이 옆에 있다는 것. 그리고 규칙적인 생활을 할 수 있다는 것. 지금은 혼자 일을 하면서 물어볼 사람이 없다는 점이 가장 힘들었어요. 틀 안에서 안정감을 느낄 수 있고, 또 월급이 들어오는 게 큰 장점이죠.

반대로 혼자서 일할 때는 어디서든 일을 할 수가 있어서 좋아요. 사실 저는 한 장소에 잘 머물러 있지 못해요. 어릴 때부터 이사도 많이 다니고, 가출도 하고 그러면서 어느 한 도시에 오래 머문 적이 별로 없었어요. 지겹기도 하고. 그런데 그렇게 장소를 옮기면서도 어디서든 일을 할 수 있다는 점이 좋아요. 일하고 싶을 때 일하고, 내 시간을 마음대로 쓸 수 있다는 것도 참 좋죠.

사실 회사에서는 어떤 일을 해도 제가 했다기보다는 회사가 한 일이 되잖아요. 그런데 지금 하는 일에는 제 얼굴이 붙어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더 부담스럽고 신경 쓰여요. 더 잘하고 싶고. 그러다 보니 쉬는 시간이 잘 없어서, 힘든 시간들도 있었죠. 사실 일러스트레이터가 그림만 그리는 것은 아니에요. 책마다 성격에 맞는 그림을 그려야 하기 때문에 그림의 배경이 되는 내용들도 잘 알아야 해요. 제 욕심일지 모르겠지만 그러다 보니 시간이 더 많이 걸려요. 예를 들면 최근에 어린이 경제 도서를 맡아서, 상반된 두 캐릭터를 그릴 일이 있었어요. 그런데 여자와 남자로 각각의 캐릭터를 구상해 보니 혹시나 어떤 고정관념이 캐릭터에 묻어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되는 거에요. 더더욱이나 어린이 책이기 때문에 아이들이 받을 영향을 생각하면 더 고민이 되더라고요.


주력으로 하고 있는 프로젝트는 어떤 것이 있나요?

: 작년부터 두 번째 책을 준비하고 있어요. 그런데 책 준비보다는 일러스트 외주 작업을 더 많이 하게 되어서 이제는 책 작업에 좀 더 몰두해야겠단 생각을 해요. 올해는 서울시 여성공예센터, 중고등학교 국어 교과서, 실용서와 에세이 단행본, 한국전력 사보 등에 일러스트를 그렸어요. 한국전력 사보에는 만화를 그렸는데, 8년 전부터 제 그림을 봐주시던 분이 사보를 보셨다며 반갑게 연락이 오기도 했어요! 꾸준히 그림을 그리다 보니 그 시절 싸이월드의 제 그림을 기억해 주신 거죠. 너무 반가웠어요! 사실 저는 그 힘으로 살아간답니다.

얼마 전에는 작가 6명이 모여서 자체 마감을 만들고, 창작활동을 해보기도 했어요. 각자 정해진 요일에 창작물을 만들어서 구독자님께 배달을 해드리는 ‘어떤 요일’이라는 프로젝트였어요. 개인적으로 생각 중인 프로젝트도 하나 있어요. 아마 내년부터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는데, 한 가지 주제에 대한 그림일기로 한 권의 책을 채우고 싶어요. 한 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각 호마다 다른 주제로 시리즈를 만들 거예요.

어떤요일프로젝트__포기하다.jpg

그런데 오히려 우리는 회사를 다닐 때 더 열심히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잖아요. 왜 그럴까요?

: 그때는 내 일을 찾고 싶은 갈증이 있었어요. 그것도 그렇고 월급이 나오니까. 회사에서 시간을 보내고 집에 돌아오면, 저녁시간을 어떻게 쓰던 월급이 들어오니까요. 그래서 더 안정적으로 그림을 그릴 수 있었던 것 같아요. 하지만 지금은 프리랜서로 일을 하다 보니 항상 맡은 일 생각이 머릿속에 가득 차 있어서 오히려 창작에 집중을 하기가 힘들더라고요.


본인이 가고자 하는 방향은 무엇이고, 그 방향으로 가고 있나요?

: 스스로에게 떳떳하고 싶어요. 사실 얼마 전까지도 고민이 너무 많았어요. 내가 아직 나를 잘 모른다는 생각, 스스로를 속이고 있다는 생각들 때문에요. 일러스트 일하는 것도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어요. 내가 작가인지 일러스트레이터인지, 도대체 내 정체성은 무엇인지. 직업은 한 가지만 잘해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거든요. '나는 작가가 꿈인데, 왜 일러스트 일만 하고 있는 걸까?'라는 고민이 들기도 하고. 그래서 일러스트레이터로서 열심히 돈을 벌다 머리가 아프면 창작을 위해 여행을 다녀오고, 그러다 여행을 다녀오면 돈이 떨어져서 다시 또 일러스트레이터 일을 하게 되는 생활의 반복이었죠. 그러다 이번 발리 여행을 가서 깨달았어요. '아! 나는 직업이 두 개구나. 나는 두 가지 일을 하고 있는 사람이니까. 이제 진짜 도망 안 가야지.. ' 요즘에는 내가 나를 잘 알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어요. 나를 인정하면서 잘 가고 있구나, 쑥스럽긴 하지만 부끄러움 없이 이야기할 수 있어요. 스스로에게 떳떳하게 살고 있다고.

그림_1.jpg

홍갈씨에게 일이란 어떤 의미인가요?

: 굉장히 많은 생각이 들었어요. 일에 대해서 자주 생각하거든요. 일을 할 때 제가 살아있고, 제 몸을 운용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요. 일을 해서 돈을 번다는 것이 제게는 큰 의미가 있어요. 그 돈으로 먹고 싶은 것 먹고, 가고 싶은 곳 가고. 사실 일이 곧 저예요. 일과 제가 일체화되고 있어요.(웃음) 일이 떳떳해야 저도 떳떳해요. 일이 잘 안되면 저도 기분이 좋지 않아요. 분리가 잘 안돼요. 자아에서 일이 차지하는 부분이 정말 커요. 그게 나를 설명할 수 있는 길인 것 같아요. 창작도 일, 그러니까 노동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더 책임감을 갖고 임하게 되는 것 같아요. 저에겐 창작이 취미가 아니라 일이니까요. 나를 갈아서 내가 되는 일을 하고 싶어요. 결국 사람은 자기 자신을 갈아야 창작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가장 좋아하는 한 문장을 알려주세요.

: 최근에 트위터에서 좋은 문장 하나를 발견했어요. “타고난 재능은 당연히 중요하지만, 열심히 하는 천재는 이기지 못한다. 하지만 세상은 넓어서 열심히 하는 천재가 배 터지게 먹어도 항상 남는 파이가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 어느 인터뷰에서 나온 내용이에요. 저는 항상 부담감이 있었어요. 진짜 잘하고 싶어서 너무 힘들었어요. 하지만 이제 보니 모든 작업물이 최고였으면 하는 마음이 저를 더 힘들게 했더라고요. 그런데 이 문장을 보고 나서, '1등이 아니더라도 괜찮다. 남는 파이 먹고살면 되지 않겠나.' 싶더라고요.


앞으로의 계획을 알려주세요!

: 내년에는 꼭 계간지를 낼 거예요. 시리즈를 만들고 싶어요. 그리고 내년부터는 1월 1일마다 유언장을 쓸 거예요. 저에게 몇 장의 유언장이 생길지 궁금해요. 매년 초, 내가 죽을 수 있는 몸이라는 것을 스스로에게 각인시키고 시작하는 한 해가 어떨지도 궁금해요.

사실 제가 학교를 다닐 때 상처가 많았어요. 그 상처가 너무 아파서 그림일기를 쓰기 시작했거든요. 그런데 우연하게 올린 그림일기를 보고 인터넷에서 저를 좋아해 주시는 분들이 많이 생겼어요. 지켜봐 주시고, 선물도 보내주시고 아주 많은 호의를 받았죠.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저는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에 의해서 성장했던 것 같아요. 이제는 제가 그때 받은 호의를 돌려주고 싶어요. 언젠가 개인 작업실이 생긴다면 중고등학생에게는 무료로 열어주고 싶어요. 그저 편하게 와서 이야기를 나누고 그림을 그리는 곳. 그 시기의 아이들에게 마음 아픈 것들이 있어서요. 그게 제가 장기적으로 준비하는 계획이에요. 그 나이의 저를 지켜봐 줄 어른이 없었다는 것이 억울했거든요. 그러니까 이제는 제가 그런 아이들 곁에 있는 어른이 되고 싶어요.



상처 받은 영혼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싶다는 사랑스러운 그녀.


그녀의 이야기가 더 궁금하신 분은

그녀의 책 '혼자 있기 싫은 날' 또는 인스타그램/ 산그림의 포트폴리오를 참고해주세요 :)

http://www.picturebook-illust.com/san_kr/popup_gallery.asp?mem_id=hong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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