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과 허세의 관계에 대하여
얼마 전 브라질 리우 근처의 일랴 그란지라는 섬을 다녀왔다. 오랜만에 호스텔에 묵으면서 여행자들을 만났다. 그런데 이게 웬걸. 같은 방에 묵는 남자 둘의 여행 허세에 숨이 막힐 것 같았다.
그러니까, 내가 느끼기에 그들은 너무 허세스러웠다. 벨기에에서 왔다는 그 남자는 호스텔에 대해 불평불만을 늘어놓기 시작하더니, 여태까지 여행하면서 얼마나 좋은 곳, 좋은 호텔을 다녔는지 자랑하기 시작했다. 내가 대화를 피하고 도망가자 새로 들어온 아르헨티나 여자 둘에게 똑같은 얘기를 하기 시작했다. 으악. 그녀들이 본인 이야기를 잘 들어주자 자신의 여행 이야기를 자랑스럽게 더 늘어놓기 시작했다.
독일에서 왔다는 한 남자는 본인의 여행 방식에 대해 자랑을 하기 시작했다. 리우에 사는 브라질 여자 친구가 있고, 브라질을 여행한 지 6개월이 넘었다면서. 여행은 천천히 해야지, 빨리해서는 아무것도 느낄 수 없다면서. 호스텔에서 하루 종일 맥주를 마시면서 핸드폰만 보고 있더니... 새해를 맞이할 때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맥주만 한 박스 사다가 호스텔에 쟁여놓고 있었다며, 바쁜 여행에 대해 험담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이제 남미에 12번쯤 와본 것 같다. 혼자 여행했던 6개월과 11번 출장을 왔으니까, 약 17개월 정도 남미를 떠돌았다. 그래도 아직 모르는 게 많다. 그런 사실을 모르고 남미에 대해 다 아는 듯 내게 이야기하는 여행자들을 보면.. 그저 웃음이 나온다. 한 달 동안의 남미 여행은 너무 짧고 빠르다며 본인의 여행을 우월한 듯이 이야기하는 태도는 헛웃음이 나온다.
여행의 가치는 주관적으로 평가될 수밖에 없다. 타인의 여행을 열등하게 생각하는 이유는 아마도 내 여행이 더 우월하다고 생각하고 싶은 욕구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결코 타인의 여행이 내 여행보다 열등할 수는 없다. 타인의 것을 열등하다고 생각함으로써 본인을 우월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반대로 본인이 ‘빈수레’이기 때문이 아닐까.
‘허세’라는 단어는 허장성세(虛張聲勢)라는 고사성어에서 왔다고 한다. 두산백과에 따르면 옛 중국의 진나라 장수가 위나라 오록성을 쳐들어 갈 때, 진나라 군대의 깃발을 가는 곳마다 세워놓았다. 몰래 위나라를 치지 않고 이렇게 깃발을 꽂고 다니는 것을 궁금해한 한 사람이 그에게 이유를 물으니 이는 위나라 사람들을 겁먹게 하기 위한 전략이었다고 대답했다. 결과적으로 많은 깃발을 본 위나라 백성들은 군대가 들어오기도 전에 도망을 가버렸고, 진나라 장수는 아주 쉽게 오록성을 함락시킬 수 있었다. 이 에피소드의 허세는 매우 긍정적이며 효과적인 전략의 허세다.
그러나 요즘 우리가 쓰는 ‘허세’라는 단어의 뜻은 본래 의미와 많이 다르다. 허세에 대한 나의 정의는 '개풀 없으면서 있는 척하는 것’이다. 여행을 하다 보면 본인의 여행을 허세의 도구로 삼는 사람들을 가끔 만난다. 예를 들면 자신의 여행 방식이 타인의 것에 비해 우월하다던가, 단지 먼저 가봤다는 이유만으로 모든 것을 가르치듯이 얘기하는 태도가 그렇다. 세상엔 너님보다 여행 많이 하고, 많이 아시는 분들이 생각보다 많이 존재한다.
결국 빈수레가 요란한 것은 어딜 가나 똑같다. 심지어 그게 우리가 즐기는 여행일지라도. 그들은 공허하게 비어있는 본인의 여행을 더 요란하게 포장하면서 스스로를 위로한다. 마치 뭐라도 되는 것처럼. 그러다 착하고 순수한 친구들의 관심이라도 받으면 신이 나서 증세는 더 심해지고 만다. 불치병이 되고 마는 것이다.
그러니까 결국 여행에는 답이 없다. 고등학교 기말고사 보듯 맞는 답을 찾으려 하지 말자. 아니 스스로 답을 찾는 것은 본인 자유다. 하지만 타인에게 본인의 답이 맞다고 강요하지는 말자. 제-발. 너님에게 부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