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드릭>
글, 그림: 레오 리오니 / 옮김 : 최순희 / 시공주니어
첫째 아이가 태어난 날, 자존감이 높아졌다.
무통주사의 효과를 보지 못해 남편의 손을 쥐어짜며 출산한 고통만큼 자존감도 높아졌다. 아마 아이의 첫 울음소리를 들었던 순간, 그 아이가 내 품에 처음 안겨 따뜻한 체온이 전해졌던 그 순간부터였는지도 모르겠다.
인체의 신비에 대한 경의로움을 느끼며 한 동안 들떠 있었다. 또 아이는 얼마나 예쁜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다는 말을 체감하며 육아를 시작했다. 아이의 숙면을 위해 애를 썼고, 아이의 건강한 먹거리를 위해 애를 썼다. 서툰 요리 실력에 무슨 자신감이었는지, 아이 먹을 건 직접 해 먹이겠다는 의지로 3일에 한 번씩 이유식을 만든다고 손님상을 준비하듯 부엌을 뒤집었다.
밥하고 치우고, 아이와 놀고, 치우고, 밥하고, 치우고, 재우고. 아이를 위한 일들이 나의 24시간을 채우기 시작했다.
아이는 커가면서 점점 온 집을 놀이터 삼아 놀았다. 덕분에 청소로 하루 일과를 마무리하는 날도 많아졌다. 이렇게 아이 중심으로 하루를 보내는 날이 반복되다 보니 높아졌던 자존감은 조금씩 낮아지기 시작했다. 그 낮아진 자존감은 종종 나를 별 거 아닌 사람으로 만들었고 그 기분에서 벗어나고 싶어 '아이들이 크면 좀 낫겠지, 설마 평생 이러겠어' 하는 마음으로 틈틈이 나를 위로하는 상상을 했다.
‘아이 키우고 난 뒤에 난 뭘 하지? 그림을 그릴까? 무슨 그림 그리지? 작업실이 있으면 좋겠다. 동네 꼬마들 몇몇 모아 작업도 하고, 아이들 학교 끝나면 작업실에서 놀고. 아! 화분도 몇 개 가져다 놓아야지. 노란 튤립이 좋겠다. 작업실 입구 바닥은 분필로 그림을 그릴 수 있게 할까?, 주말에 아트파티도 열면 좋겠지? 작업실 이름은 뭐라고 지을까?……’
끝도 없이 내 마음대로 하는 상상은 언젠가 정말 그렇게 될 거라며 지금의 나도 괜찮다는 주문을 넣어주었고, 덕분에 바쁜 육아 속에서도 나는 정말 괜찮았다.
첫째 아이가 자라 여유가 생기던 때에 둘째 아이가 태어났다. 조금 나아지려나 했던 육아가 다시 처음으로 되돌아갔다.
또다시 먹이고, 치우고, 재우고, 놀고......
그즈음에, 첫째 아이와 비슷한 또래 아이 엄마들 몇몇이 일을 시작했다며 소식을 전해왔다. 그 소식을 듣고 나서 그런지 온라인 속에도 일하는 엄마들의 모습들이 자주 눈에 띄었다. 핸드폰의 작은 화면에서 보이는 그들의 모습은 육아도, 일도 척척하는 슈퍼우먼, 슈퍼맘 같았다.
‘나도 저렇게 일을 할 때가 있었는데.’
워킹맘들의 모습들을 보니 내가 나를 위로하는 지금의 상상들이 손에 명확하게 쥐어지는 일이 아니라는 이유, 분명한 성과가 보이는 일이 아니라는 이유로 하찮은 일 같기도 해 의기소침해 질 때도 있었다. 진짜 그림을 다시 그릴 수 있을지, 진짜 작업실을 가질 수 있을지, 미래에 대한 확실하고 구체적인 계획은 없었지만 정말 될 것 같은 기분으로 즐겼던 나만의 상상인데. 그 상상에서 빠져나오면 나는 그저 ‘전업주부’였다.
‘전업주부인 나도 다시 나의 이야기를 시작할 수 있을까?’
'언제? 10년 뒤? 20년 뒤?'
‘너무 늦진 않을까?’
현실과 상상의 괴리 사이에서 의기소침해져 있을 때, <프레드릭>이라는 그림책을 만났다. 이 그림책을 보고 난 뒤에 두 손으로 그림책을 품고 큰 숨을 내쉬며 슬쩍 입꼬리를 올리며 웃었던 기억이 난다.
프레드릭은 회색빛이 도는 들쥐의 이름이다. 다른 들쥐들이 겨울 식량을 모으려고 바쁘게 애를 쓰고 있지만, 프레드릭은 좀 다르다. 그저 눈을 감고 생각하는 게 전부인 프레드릭.
-프레드릭, 넌 왜 일을 안 하니?
이 질문이 ‘왜 일을 하지 않으세요?’ 라며 사회가 나에게 보내는 질문 같았다. 이솝우화 ‘개미와 베짱이’처럼 설마 프레드릭도 지금 일을 하지 않은 탓에 베짱이처럼 허기진 배를 움켜쥐고 추위에 떨며 개미를 찾아가는 초라한 모습이 된다는 이야기려나 했는데 프레드릭에게 뜻밖의 대답을 들었다.
-나도 일하고 있어. 난 춥고 어두운 겨울날들을 위해 햇살을 모으는 중이야.
-색깔을 모으고 있어. 겨울엔 온통 잿빛이잖아.
-난 이야기를 모으고 있어. 기나긴 겨울에 얘깃거리가 동이 나잖아.
햇살을 모으고, 색깔을 모으고, 이야기를 모으고 있다는 말, 그것이 나의 일이라는 프레드릭의 대답이 용기가 없어 꺼내지 못했던 내 마음을 대신해주었다.
전업주부이긴 하지만, 육아 이외의 다른 일을 하고 있진 않지만, 내 생활이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언젠가는 현실이 될 수도 있는 나의 상상을 키우는 일이 지금 내가 하고 있는, 할 수 있는 나의 일이라는 것.
나에게만 적당하고 당당할 것 같아 쉽게 드러내지 못했던 마음이 프레드릭의 말을 듣고 힘이 세졌다.
넉넉하게 모아 둔 식량으로 행복하고 느긋한 겨울을 보낼 것 같았던 들쥐 가족들이 먹이가 동이 나자 삶의 의욕도 함께 가라앉았다. 그리고 그제야 햇살, 색깔, 이야기를 모은다고 했던 프레드릭을 돌아본다.
-네 양식들은 어떻게 되었니?
그 말에 프레드릭은 그동안 자신이 모아 둔 이야기를 꺼낸다. 찬란한 금빛 햇살, 파란 덩굴 꽃, 노란 밀짚 속 붉은 양귀비 꽃, 초록빛 딸기 덤불 얘기. 그리고 이번에는 프레드릭이 아닌 다른 들쥐들이 프레드릭의 이야기를 들으며 상상하기 위해 눈을 감는다. 들쥐들이 그 이야기에 감탄하며 프레드릭을 시인이라 칭찬하니 늘 그림책 화면 구석에서 눈을 감고 있던 프레드릭이 이제야 화면 가운데 우뚝 서서 얼굴을 붉히며 웃는다.
-나도 알아.
프레드릭의 수줍은 웃음과 눈이 맞았다. 그 눈빛이 나를 위로하며 말을 건넨다. 육아를 하며 보내는 시간 속에서 나의 이야기도 함께 모여지고 있다고, 그러니 전업주부라도 괜찮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