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르베 Oct 30. 2020

다독을 쫒던 엄마표 영어를 잠시 미뤘다

프롤로그

<걱정 상자> 

글, 그림 : 조미자/ 봄 개울


 아이가 드러낸 속내

“엄마, 이거 보세요. 걱정 주머니예요.”

어느 날 아이가 A4 종이를 꼬깃하게 꾸겨 주머니를 만들어 왔다. 걱정 주머니라며 <걱정 상자> 그림책을 보고 만들었다고 했다.

“우성이도 담고 싶은 걱정이 있어? 그럼 이 주머니에 걱정을 담아볼래?” 하니 아이는 1도 고민 않고 “동생 케어하기 너무 힘들어!”라고 크게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 이내 내 눈치를 살폈다. 힘들다고 말해도 되는 건가 하는 눈치였다.


'아 정말? 그 정도로? 그렇게 큰 소리를 지를 만큼?'


그 모습을 보니 아이의 힘듦을 그동안 이렇게 살피지 못했었나, 힘듦을 말하지 못하는 분위기를 설마 내가 만든 건가 하는 여러 가지 생각에 마음이 무거워졌다.


아이의 걱정이 담긴 걱정주머니를 보면서 그 걱정이 빠져나오지 못하도록 냉큼 하고 있던 머리끈을 풀러 주머니 입구를 꼭 묶었다. 묶여진 걱정주머니를 아이에게 주었다.

“동생 보는 게 이 정도로 힘들었어? 엄마가 알아채지 못해서 미안해.”

아이를 안아주며 물었다.

“우리 이 주머니 어떻게 할까?”

“그림책에서처럼 뻥 차 버릴래요.”

“좋아!”

그렇게 아이와 나는 한참 동안 그 걱정주머니를 손으로 치고 발로 차며 놀았다. 분명 걱정을 담은 상자였는데 아이는 내내 깔깔대며 웃고 있었다. 자신의 힘듦을 가지고 노는 아이의 모습이라니. 신선했다. 그리고 신기했다.

“이제 이 주머니 어떻게 할까? 버릴까?”

“아니요. 여기에 다시 ‘우리 가족 사랑해’를 넣어둘래요.”

아이는 끈을 풀러 걱정주머니를 다시 열더니 그 안에 ‘우리 가족 사랑해!’를 외치고는 다시 묶어달라며 걱정주머니를 나에게 건넸다. 그리고는 그 묶인 주머니를 자기가 가지고 있겠단다. 가지고 노는 동안 너덜너덜 해진 종이 주머니를 보는 아이의 표정이 달라져 있었다.

'어? 이건 뭐지?'

고민으로 시작한 정말 사소한 활동이었는데 아이가 스스로 우리 가족 사랑한다라는 말을 내뱉은 상황이었다. 우연히 읽은 그림책 한 권이었는데 속내를 보인 후 달라진 아이의 표정이었다. 편해진 아이의 표정이 좋았다. 더 자주 보고 싶었다.


이런 기회를 자주 만들어주면 어떨까? 그럼 어떻게?


다독을 쫒던 엄마표 영어를 잠시 미뤘다.

그동안 나는 엄마표 영어에 몰입하고 있었다. 큰 아이 18개월부터 시작한 일이었다. 한국어보다는 영어위주로 책을 읽어주고 영어 소리에 노출해주기 위해 다독을 쫓았다. 아이가 좋아하는 흥밋거리 위주로 영어책을 사 모으고 뜻을 모르더라도 영어 텍스트에 집중해서 읽어주기에 몰두했다. 일상에서도 영어로 생활하기를 유도했고 미술을 전공했기에 각종 미술활동들을 영어로 하며 아이와 놀았다.


<걱정 상자>를 읽던 즈음에 아이는 첫 기관 생활을 시작했다. 6세가 되던 해였다. 단체생활의 경험이 없었기에 첫 기관 생활은 아이에게도, 나에게도 낯선 일 투성이었다. 집에서 엄마랑 미술 놀이할 때에는 색종이를 마음껏 쓸 수 있었는데 원에서는 쓸 수 있는 색종이가 제한될 때, 같이 놀던 친구가 갑자기 같이 놀지 않겠다고 말했을 때, 반 친구들이 모두 하는 놀이를 아이는 안 하고 싶을 때, 하고 싶지 않은 수업을 해야 할 때 등 불편한 상황들이 쏟아졌다. 어떤 상황들은 시간이 지나며 해결될 수도 있을 거라 믿었지만 모르는 척할 수는 없는 상황들도 있었다.


이제 막 사회생활을 시작한 아이는 앞으로 점점 더 불편한 상황들을 많이 겪을 테고, 그 속에서 좌절, 걱정, 갈등, 외로움 등 다양한 감정들도 경험하게 될 텐데 그 과정을 어떻게 스스로 건강하게 해쳐나가도록 도와줄 수 있을까 고민하던 중 <걱정 상자>를 만났다.


그림책이라면, 이렇게 쉬운 말과 그림으로 된 도구라면, 게다가 아이의 흥미를 끌기 충분하다면, 조금 자연스럽게 아이의 마음을 살필 수 있을 것 같았다. 영어 텍스트에 집중하며 다독하던 탓에 아이 마음을 들여다볼 여유가 없었다 생각하니 지나친 것들에 대한 아쉬움에 마음이 바빠졌다.


그 날로 엄마표 영어를 잠시 미뤘다. 영어보다 아이의 마음관리가 먼저였다. 영어를 잘하는 아이보다 건강한 마음을 가진 아이로 자라길 바랬다. 그림책으로 마음이 끌린 날 나와 아이의 마음을 키워줄 수 있는 그림책 육아에 대한 고민이 시작되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