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르베 Nov 02. 2020

감정에 서툰 내가 아이 마음을 키울 수 있을까?

<소피가 화나면, 정말 정말 화나면>

<소피가 화나면, 정말 정말 화나면> 글, 그림 몰리 뱅/ 책 읽는 곰


“에고, 잘 안되고 있어서 그래? 엄마가 도와줄까? 그래도 던지는 건 위험하니 던지지는 말자!”


아이가 4살쯤 되었을 때였다.

그즈음 아이는 장난감을 가지고 놀다가 마음대로 되지 않으면 손에 들고 있던 장난감을 던지곤 했었다. 당시 초보 엄마였던 나는 육아서를 탐독하며 엄마의 대응력을 배우려고 애썼다. 육아서에서는 공감해주고 던지는 건 위험하다고 알려줘야 한다고 했다. '그래야 하는구나.'라고 이해했지만 앞으로 아이가 화내는 일이 생길 때마다 그 화난 감정을 어떻게 도와주어야 할지에 대해서는 영 자신이 없었다.


난 왜 자신이 없었을까?

나도 감정에 서툰 어른이라는 이유를 떠올렸다. 그도 그럴 것이 나도 내 화난 마음을 어떻게 다루어야 할지, 화난 마음을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할지, 소리치지 않는 화난 마음이 과연 전해질지, 또 소리치지 않는 화난 마음이 과연 풀리긴 할지, 모든 게 의문이었고 모든 게 낯설고 어려웠기 때문이다.


아이는 올해 6살이 되었다. <소피가 화나면, 정말 정말 화나면>은 아이의 화난 감정에 대해 마무리 짓지 못한 나의 고민을 다시 상기시켜 준 그림책이다.


그림책을 다시 알게 되다.

마음을 키우는 육아를 한다고 했고, 하고 싶었지만 어떻게 해야 하나 방향을 못 잡고 어영부영하고 있을 때, 이 그림책을 만났다. <걱정 상자> 이후에 그림책에 더 푹 빠진 나였다. 왜 이전에는 그림책이 와닿지 않았을까 생각해보니 그동안 영어 소리에 노출시킨다는 열띤 의지 아래 텍스트에 집중한 다독의 습관 탓이라 결론지었다. 그러다 보니 그 안에 담긴 내용도, 나에게 주는 의미도 알지 못한 채 그저 권수만 채우며 넘긴 그림책이 잔뜩이었다.


그동안 놓친 시간과 기회가 아까워 마음이 바빠졌다. 이 흐름을 끊고 싶지 않아 꽤 애를 썼다. 도움이 될만한 책도 읽고 전문가도 찾으며 그림책을 조금씩 알아갔다. 새로운 그림책을 알게 될 때마다 내가 그동안 잘 모르겠다는 이유로 얼버무렸던 내 마음의 이야기가 조금씩 명료해졌다. 그러다 보니, 이렇게 쉬운 글과 그림이라면, 아이와 조금 자연스럽게 마음에 대한 이야기를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약간의 기대가 생겼다. <소피가 화나면, 정말 정말 화나면>을 보면서 화난 마음부터 시작해보기로 했다.


마음을 키우는 일, 그림책으로 시작해 볼까?

언니가 장난감을 빼앗았고, 그 과정에서 넘어졌고, 엄마는 내 편이 아닌 상황의 소피다. 누구든 화가 날 만한 상황.


화산이 폭발하듯 화를 내고 소리를 지르고 울며 집을 나가는 소피를 보다 보니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화가 날 만했고, 화를 냈는데, 어쩌라는 건지. 그림책이 주는 의도를 파악하기 어려웠다. 그림책에서 뭘 봐야 하는지 감이 오질 않았다.


그러다 문득, 지난날 내가 소피처럼 화산 터지 듯 화를 냈던 상황들이 떠올랐다.


'나도 저렇게 화낼 때 있었는데’


그리고 나니 이 그림책의 의도가 조금 보인다. 우리의 화난 모습도 소피와 다르지 않다는 것, 화난 마음이 정리되는 데에는 나름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말이다.

'이런 건가?'

이렇게 감정을 마주하는 이야기, 그 감정을 대하는 방법에 관한 이야기를 아이와 할 수 있을 것 같아 그림책 육아의 방향이 조금씩 잡혔다.


화날 때, 어떻게 하면 좋을까?

“우성아, 소피는 정말 정말 화가 났나 봐. 가지고 놀던 장난감을 언니가 말도 없이 가져갔잖아. 게다가 엄마는 언니 차례라면서 언니 편이 되어줬잖아. 엄마 같아도 화가 많이 날 것 같아."

“엄마! 나도 이럴 때 있어요. 정우는 맨날 내 장난감만 가져가요. 난 안 빌려주고 싶은데 엄마가 빌려주라고 할 때 진짜 화나요!”


아이에게서 나온 ‘나도 이럴 때 있다는 말’ 아이는 확실히 나보다 유연하게 받아들일 준비가 된 듯해 보였다. 이 전에 해 보지 못했던 감정에 대한 이야기를 한 번 해보기로 했다.


“그렇게 화날 때 우성이는 어떻게 해?”

“가져가지 마! 하고 소리를 질러요.”

“엄마도 화나면 소리 지를 때 있는데 엄마랑 똑같네? 그런데 우성이는 그렇게 소리를 지르는 화난 마음이 어때 보여?”

“보기 안 좋아요!”

“그럼 화내지 않으면 될까?”

“잘 모르겠어요”

“그러게. 어렵다. 사실 화난 마음은 나쁜 아이가 아니야. 오히려 우리 마음속에 꼭 필요한 친구 중 하나야. 때로는 나를 지킬 때 필요하고 때로는 위험에서 나를 구해줄 때도 필요하니까."


아이에게 화났을 때의 표정을 만들어보자고 했다.

아이가 나름 얼굴과 몸에 힘을 주었다. 나도 덩달아 얼굴과 몸에 힘을 잔뜩 주고 주먹을 꽉 쥐었다.

“화가 나면 이렇게 얼굴과 몸에 힘이 들어가고 표정도 바뀌어. 몸에서 불이 난 것처럼 열이 나고 폭발할 것 같은 느낌이 들 때도 있고. 그림책에 나오는 소피처럼 말이야. 어쩜 많은 사람들이 화가 나면 소피와 같은 모습일 수 있어. 이 폭발할 것 같은 마음은 크게 소리를 지르고 싶기도, 물건을 던지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할지도 몰라. 하지만 물건을 던지는 건 위험해. 다른 사람을 다치게 할 수 있거든."


“그럼 어떻게 해요?”

“그러게 어떻게 해야 할까? 화났어, 불편해, 기분이 안 좋아’ 이렇게 말로 표현하는 방법은 어떨까?"

“진짜 화나면 말하고 싶지 않은데요?”

“맞아! 그럴 때 있지. 말하고 싶지 않다면 화가 작아지기 위한 시간이 필요한 건지도 몰라. 소피가 한참을 울고, 뛰고 나서야 비로소 주변의 새소리와 바람이 느껴졌던 것처럼 화가 잔뜩 났을 때는 아무 생각도 안 나고 주변을 살피기 힘들어. 그럴 때는 잠시 기다려봐 봐. 화가 작아질 때까지.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작아지기도 하고 어떤 행동을 하면 더 쉽고 빨리 작아지기도 하니까.”


“뭘 하면 되는데요?”

“음...... 사람마다 다른 것 같아. 소피처럼 지칠 때까지 울거나 달리는 사람도 있고, 잠을 자는 사람, 목욕을 하는 사람. 맛있는 걸 먹는 사람도 있어. 산책을 하거나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는 사람도 있고, 아무것도 안 하고 가만히 기다리는 사람도 있을 걸?"


“엄마는 어떻게 하는데요?”

엄마는...... 주로 따뜻한 물에 목욕을 하기도 하고, 그냥  때도 있어. 우성이화가    하면서 기다려볼래?"

“우성이는 레고를 할래요. 레고 할 때 기분이 좋아지니까요. 목욕도 좋을 것 같아요”

“좋아! 그럼 우성이가 화가 나서 레고를 할 때는 아무도 방해 못하게 도와줄게!, 필요하다면 목욕 준비도 도와주고. 나중에 아빠에게도 화가 나면 어떤 행동을 하는지 물어보자.”

(퇴근해서 집에 온 아빠에게 물으니, 아빠는 화가 나면 잠을 자거나 운동을 한다고 했다.)


며칠 뒤, 첫째 아이가 동생이 장난감을 달라고 떼를 쓰는 바람에 화가 잔뜩 났다. 아이에게 물어봤다.

“우성아! 목욕할래? 레고 할래?”

아이가 화가 난 목소리로 대답한다.

“목욕이요!”

그날 밤 잠자리에서 아이가 말했다.

“엄마 말이 맞았어요. 목욕하니 기분이 좀 나아졌어요!”

“그래? 다행이다! 그럼 다음에는 진짜 기분 좋게 목욕할 수 있게 색깔 비누를 준비해줄까?”

아이가 웃는다.

화난 마음에서 시작된 그림책 육아가 조금씩 방향을 찾아가고 있었다.





 

작가의 이전글 다독을 쫒던 엄마표 영어를 잠시 미뤘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