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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르베 Nov 03. 2020

실수를 대하는 느긋한 마음이 필요한 이유

<문제가 생겼어요!>, <검피 아저씨의 뱃놀이>

<문제가 생겼어요> 글, 그림 이보나 흐미엘레프스카/ 논장

: 엄마의 소중한 식탁보를 망가뜨린 아이가 엄마에게 들킬까 봐 마음을 졸이다 엄마의 말 한마디에 안도하게 된다.

<검피 아저씨의 뱃놀이> 글, 그림 존 버닝햄/ 시공주니어

: 아저씨의 당부를 듣고 배를 탄 아이들과 동물들. 하지만 결국 배가 뒤집히게 되는데, 마지막 아저씨의 말 한마디가 인상적이다.


그림책 속 어른, 진짜 있을까?

그림책을 읽다 보면 우리나라 그림책과 외국의 그림책에 등장하는 엄마(혹은 어른)의 모습에서 차이를 느낄 때가 많다. 우리나라 그림책에 나온 엄마들은 대체로 바쁘고 아이들의 실수에 화를 낸다. 아이들은 엄마에게 혼이 날까 전전긍긍하거나 소심한 복수를 하는 모습으로 그려진다. 외국의 그림책에 나온 엄마(혹은 어른)들은 대체로 아이가 저지른 크고 작은 실수에 관대하다. 어떤 책에서는 그 실수에 관대하다 못해 잔소리는커녕 조심하자라는 말 한마디 없기도 한다. 외국 영화나 드라마에서도 종종 볼 수 있는 장면이었다. 화가 나 방문을 닫고 들어간 아이의 방 앞에서 기다려 주는 모습이나 공원에서 우연히 만난 꼬마 아이의 고민에 깊이 있는 대화를 이어나가는 어른들의 모습도 함께 떠올랐다.


신기했다. 어떻게 일상에서 아이들을 지혜롭게 대할 수 있을까? 연출인가? 현실인가? 저런 엄마의 모습이 가능한가? 저런 어른의 모습이 가능하긴 한가? 나에게는 바쁜 엄마의 모습이 익숙하지만 지혜로운 어른의 모습을 닮고 싶었다.


엄마의 반응을 기억하는 아이

<문제가 생겼어요>는 큰 아이가 애정 하는 그림책이다. 책 속의 아이는 엄마의 식탁보를 망가뜨려 마음이 조마조마하다. 다행히 그 아이의 엄마는 아이의 실수를 알아차리는 순간 세상에서 가장 온화하고 현명한 엄마가 되어 금세 아이 마음을 불안하지 않게 해 주었다. 아이랑 책을 읽으며 말했다.

“이 책에 나온 친구는 우성이보다 나이가 많은가 보다. 혼자서 다리미를 사용할 수 있으니 말이야. 형이나 누나들도 실수를 하면 마음이 조마조마 하구나. 우성이도 그래?”

그렇다는 아이의 대답을 듣고 말했다.

“사실 엄마도 그래. 엄마도 실수하면 아직도 할머니 할아버지 생각날 때 있어. 마음이 조마조마해서.”

"다 그런가 봐요."

아이가 웃는다. 책장을 넘겼다. 읽을수록 그림책 속 아이의 마음이 느껴져 꽤 긴장되는 기분을 느꼈다. 과연 마지막에 엄마가 어떻게 대응할지도 점점 궁금해졌다. 그리고는 엄마의 예상 밖의 태도를 확인하고는 감탄하며 아이에게 말했다.

“이 엄마 정말 대단하다! 어떻게 화를 안 낼 수가 있지? 실수를 감싸주는 아이디어도 정말 멋지다.”

“맞아요! 이 책 너무 좋아요. 엄마도 이렇게 해주세요.”

“엄마도? 한번 생각해보자. 음...... 만약에 우성이가 엄마 소중한 옷을 망가뜨렸다면 어떨 것 같은지 상상해볼게."

잠시 생각해보지만, 나의 소중한 물건이 아이의 실수로 망가뜨렸는데 과연 어떤 엄마가 태연하게 대응할 수 있을까 생각이 들어 그림책 속 엄마의 모습에 공감하기 어려웠다.

“엄마는 속상하긴 할 것 같아. 그리고 태연하게 넘어가면 아이는 엄마가 괜찮은 줄 알고 다른 실수에서도 괜찮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아닐걸요. 그래도 조심해야 하는 건 알걸요. 그리고 예전에 엄마가 아끼는 화병을 우성이가 깨뜨렸을 때 꽃병보다 우성이가 중요하다 말해줘서 좋았거든요.”

아이가 네 살 되던 때, 마음에 쏙 들어 구입한 화병을 아이가 깨뜨린 적이 있었다. 매장에 하나 남은 것을 구입한 터라 귀하게 여기며 갖고 있었는데 아이가 집 안에서 놀다 건드려 깨뜨린 것이다. 아쉬운 마음, 아까운 마음에 화를 내려다가 놀란 아이 표정을 보고 얼떨결에 ‘깨진 화병보다 우성이가 안 다친 게 더 중요해.’라고 말했는데 그 말을 아이가 기억하고 있었다. 아이는 본인이 한 실수보다 나의 반응을 더 잘 기억하고 있나보다.


실수 좀 하면 어때

우리는 살면서 수많은 실수를 한다. 아이도 그렇다. 블록을 쌓다가 너무 쉽게 무너질 때도 있을 거고, 어쩌면 책에서처럼 누군가의 소중한 물건을 망가뜨리는 일도 생길지 모른다. 만약, 쌓던 블록이 무너졌을 때 엄마가 실망하는 모습을 보인다면, 아이들은 다음 블록을 쌓을 때 엄마를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 조마조마한 마음을 갖게 될 것 같았다. 자신의 실수에 대응하는 엄마의 반응을 기억하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면 어떤 아이는 자신의 실수에 울어버릴지도 모르고, 어떤 아이는 주변의 눈치를 보게 될 수 있겠다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은 자라면서 실수에 반응하는 태도가 제각각일 거다. 앞으로 어른이 되어 가면서 블록이 아니라, 인간관계에서, 과제에서, 시험에서, 진로 결정에서 등 당연히 수많은 실수를 하게 될 텐데 그럴 때마다 내 아이가 주변의 눈치를 본다거나, 주저앉는 것보다 ‘다음에는 어떻게 하면 되지?’라는 의연한 생각을 하기를 원한다면 나부터 아이의 실수에 적극적으로 관대해질 필요가 있었다. 오히려 실수를 했을 때 무엇인가 배울 것이라는 점에서는 오버해서 박수라도 쳐야 할지도 모른다.


그제야 <검피 아저씨의 뱃놀이>라는 책이 조금 이해가 된다. 배를 타는 아저씨에게 아이들과 동물들이 태워달라고 하니 아저씨는 조건을 내건다. 하지만 기대와 달리 결국 배는 뒤집히고 아이들은 물에 빠진다. 책장을 넘기기 전에 자동적으로 든 생각이 ‘이 아저씨 엄청 화나겠네.’였다. 하지만 이 아저씨 또 세상 온화하다. 게다가 아무렇지 않게 차를 마시러 가자고 하더니 다음에 또 배를 타러 가잔다. ‘어떻게 또 배를 타러 가자고 할 수 있지? 또 배가 뒤짚히면 어쩌려고.’ 예전에는 이해가 되지 않는 아저씨의 태도였는데 이제 알 듯하다. 수많은 실수 중 한 번이고 그 실수를 아저씨는 당연하게 받아들였을 거다. 그리고는 ‘괜찮다. 다음에 또 해보면 된단다. 언젠가 물에 빠지지 않고 배를 탈 수 있을 거야.'라는 묵언의 메시지를 아이들과 동물들에게 준 것이라 느꼈다. ‘다음부터는 실수하지 말자’라는 것보다 ‘실수하면 어때? 다시 하면 되지’라는 단단한 마음이다. 그러고 다시 보니 아저씨와 차와 케이크를 먹는 아이들과 동물들의 표정들이 제법 당당하다. 덩달아 마음이 으쓱해진다.


실수해도 넌 소중하고 중요한 사람이야.
설겆이하다 또 컵을 깼다.

어른인 나도 매일 실수를 하면서 아이들의 실수에는 관대하지 못한 적이 많았다. 큰 아이가 <문제가 생겼어요>를 애정 하는 이유는 실수를 대하는 다정한 마음에 본능적으로 끌린 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이런 생각으로 앞으로 아이의 실수에 관대해지려고 애쓰겠다라 다짐하지만 정작 나도 종종 실수할까 봐 한 발자국 내딛는 게 어려운 나름의 스몰 마인드가 있다. 브런치에 작가 신청하기 위해 글을 쓰고도 신청 버튼을 누르기까지 한 달이 걸렸다. 잘못하면 어떡하지라는 불안감이 있었나 보다. 아마 지금 쓰는 글도 ‘발행’ 버튼을 누르기까지 꽤 오래 걸릴지도 모른다. ‘실수하면 어때’라는 마음으로 나에게도 용기를 주기로 했다. 그림책 속 어른처럼. 그리고 '실수해도, 잘하지 못해도 괜찮아. 그래도 넌 소중하고 중요한 사람이야!’라는 말까지 함께 덧붙여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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