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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르베 Nov 04. 2020

나는 나를 잘 돌보는 중일까?

<나는 나의 주인>

<나는 나의 주인> 글-채인선, 그림-안은진/ 토토북

: 내가 나의 주인이기에 가져야 하는 마음가짐, 해야 하는 행동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아이의 주인인 척 했던 나

“엄마, 이거 먹어도 돼요?”


일주일에 한 번 가는 아이의 외부 수업이 있는 날이었다. 수업이 마칠 때 쯤, 같은 반 아이의 엄마가 아이들 먹을 간식을 나눠주었다. 평소에 잘 사주지 않는 종류의 간식이었지만 다른 엄마들과 함께 담당 선생님의 수업 리뷰를 듣고 있는 중이라 급하게 ‘응’이라 대답하고는 리뷰를 듣기 위해 고개를 돌렸다. 그런데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같은 반 아이 6명 중에 어떤 아이는 간식을 먹고, 어떤 아이는 간식을 먹지 않고 다른 일에 몰두하고 있는데 왜 내 아이만 나에게 물어보는 걸까. 의아했다. 내가 너무 아이를 통제했나, 선택권이 없는 아이로 키우고 있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나의 주인>은 글밥이 길고 설명적인 내용이 많아 좀 지루할 수 있어 보이지만 실제로 읽어보면 꽤 울림이 큰 그림책이다. 아이에게 왜 양치를 해야 하고, 왜 몸가짐을 단정히 해야 하는지, 내 감정을 알아차려야 하고 관리해야 함을 ‘내가 나의 주인’이라는 이유로 설명하고 있다.


아이의 주인은 아이

“우성아, 우성이가 우성이의 주인이래. 엄마는 엄마가 주인이고, 아빠는 아빠가 주인이래. 알고 있었어?."

지극히 당연한 질문인데 왜 물어보냐는 아이의 얼굴이었다.

"당연히 알지요."

"그렇구나. 사실 얼마 전에 OO 수업 마치고 간식 먹어도 되냐고 물어볼 때 좀 놀랐거든. 우성이가 제법 컸는데 그동안 엄마 위주로 생각해 왔던 것 같아. 엄마가 우성이의 주인인 것처럼 말이야."

아이에게 이야기를 시작하면서 생각해보니 꽤 많았다. 밥 먹을 양도 정해주고, 먹을 반찬도 정해주고, 읽을 책도 골라주고, 입을 옷도 정해주던 일상이었다. 엄마이기에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라 생각했었는데 이면에는 아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혹은 내가 더 잘 결정할 수 있다는 생각에 하게 된 행동은 아닌가 싶었다.

책을 읽으며 아이에 대해 알아볼 수 있는 시간을 함께 가져보면 좋을 것 같았다.

“우리도 책에서처럼 거울 보며 이야기해보자. 거울 속에 우성이가 어떤 모습인지 같이 보고 싶은데 어때?”

좋다는 아이와 함께 전신 거울 앞에 섰다. 거울에 비친 아이 모습을 구석구석 함께 살펴봤다.

“우성이는 팔, 다리가 길구나. 귀도 크고. 입술에 점도 있고. 오른쪽 검지 손가락에 점도 있어. 팔이 다쳐 생긴 흉터도 여기 있고. 눈은 엄마를 닮았네. 이제 미용실을 갈 때가 된 것 같기도 하고.”

아이를 살펴본 뒤 물었다.

“엄마도 한번 봐줘. 엄마는 어때 보여?”

“엄마는 머리가 짧아요. 목에 점이 있어요. 손이 작아요. 얼마 있으면 내 손이 더 커질 것 같아요. 그리고 예전에는 여자 목소리였는데, 지금은 남자목소리예요.”

예상치 못한 답변이다.

“엄마 목소리가 남자 같아? 예전에는 여자 같았는데?.”

아이가 어릴 적에는 좀 더 나긋한 목소리였나 보다. 아이 말을 듣고 보니 나도 아들 키우는 엄마가 되긴 되었구나 하는 생각에 그 표현이 적절해 웃음이 났다.

이야기를 이어갔다.

“우성이는 기분이 좋을 때 어떻게 해?”

“점프를 해요. 이렇게!.”

아이가 갑자기 점프를 하니 옆에서 보던 동생도 덩달아 점프를 한다. 몇 분의 에너지 넘치는 점프를 한 뒤에 다시 책으로 돌아왔다.

“점프를 하니 기분이 더 좋아지는 것 같은데? 엄마는 기분이 좋을 때 박수를 치는데 우성이는 점프를 하는구나. 그럼 슬플 때는?”

“화를 내기도 하고, 울기도 하고, 우성이 방에 들어가기도 해요.”

“언제 슬픈데?”

“동생이 장난감 망가뜨렸을 때 슬퍼요. 엄마가 우성이를 사랑해줄 때도 슬픈 느낌이 들어요.”

“어? 엄마가 우성이를 사랑해주는데 슬픈 느낌이 들어?”

“왜냐면, 눈물이 나고 울고 싶은 기분이 들거든요.”

어떤 기분인지 알 것 같았다.

“눈물이 날 것 같은 기분을 슬픈 거라 생각하고 있구나. 눈물이 나고 울고 싶은 기분은 종종 나타나. 엄청 화가 날 때, 엄청 기분이 좋을 때, 엄청 무서울 때, 엄청 크게 웃을 때도 우리는 울고 싶은 기분이 들고 눈물도 나. 정말 큰 마음의 기분을 느낄 때 나타나는 모습이거든. 엄마는 예전에 롤러코스터 한번 타고 엄청 울었어. 또 정말 잘하고 싶은 테스트가 있었는데 결과가 좋았을 때 친구랑 끌어안고 운 적도 있어.”

아이가 이해하는 눈치다.

“우리 마음에는 여러 가지 모습이 있데. 언제 어떤 마음의 모습이 커지는지 잘 알아차려야겠다. 그래야 마음을 즐기기도 하고 마음을 나아지게도 하는 방법을 찾을 수 있을 테니까 말이야.”

마음 육아에서 원하는 모습이었다. 아이가 다양한 마음의 모습과 크기를 스스로 알아차리면서 '나'에 대해 잘 알게 되기를 바랐다. 오늘 기회가 좋았다.

“우성이가 가장 잘하는 건 뭘까?”

“당연히 만들기죠. 우성이는 뭐든 다 만들 수 있거든요.”

“그럼 가장 못하는 건?”

한참 생각하던 아이가 대답했다.

“버섯 먹기요! 아직 용기가 없어요.”

아이가 버섯 먹을 때 표정이 생각났다.

“꼭 먹어야 하는 건 아니니까 천천히 해도 괜찮아. 사실 엄마도 아직 못 먹는 음식 많아. 할머니는 장어를 못 드시고. 아빠는 홍어라는 생선을 안 좋아해.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먹기 싫은 음식 한 가지씩 있을걸? 그러니까 굳이 애쓰지 않아도 돼.”

버섯이 있으면 종종 먹어보라 권했는데 그 상황이 버섯을 꼭 먹어야 한다라고 느끼게 했나 보다.

“우성이가 요새 조금씩 배우고 있는 것들도 있는 거 알아? 처음에는 잘하지 못했는데 점점 배우고 있는 것들 말이야.”

“뭔데요?”

이때다 싶어 속사포로 쏟아냈다.

“엄청 많지. 이불 정리, 유치원 다녀와서 숟가락 통이랑 물통 내어 놓기, 옷 벗어서 세탁바구니에 넣어두기, 혼자서 옷 입기, 혼자서 밥 먹기, 레고 맞추기, 한글 쓰기, 시계 보기... 아! 연근 먹기도 있다.”

“앞으로 더 많아질걸요?” 아이가 으쓱해하며 말했다

"맞아! 엄마도 당연히 그럴 거라 생각해! 이렇게 말로 하니까 마치 보물찾기 하는 기분이 든다. 우성이에 대해 더 잘 알게 된 기분이 들어.”


그림책에서는 마침 싫어하는 것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마음의 크기를 잘 알아야 하는 일 중에는 조금 더 용기가 필요한 일들이 있어. 나를 불편하게 하는 사람과 불편한 상황들이야. 그럴 때 '싫어! 하지 마! 그만해!’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해.”

“유치원에서 친구가 새치기를 했을 때 ‘끼어들지 마’라고 말한 적 있는데, 이런 거요?”

“그렇지! 누군가 우성이 물건을 말도 없이 가져가거나, 우성이를 다치게 하거나, 또 우성이를 불안하게 하거나 하는 등의 여러 상황들이 있을 거야. 말하기 어려울 수도 있지만 나를 지키기 위해 꼭 필요한 말이니 잘 기억해두는 게 좋아.”

말을 이었다.

“우성이는 정말 소중하고 특별해. 그냥 특별해. 블록을 잘해서도 아니고, 밥을 잘 먹어서도 아니야. 그냥 특별한 거야. 그래서 잘 보듬고, 잘 가꾸어야 해. 정원사가 정원를 관리하는 것처럼 내가 나의 주인이니 치카치카를 하며 이를 관리하는 거고, 밥을 잘 먹고 잠을 잘 자면서 몸을 관리하는 거고, 마음도 다치지 않고 잘 자랄 수 있도록 들여다보는거라 생각해 봐. 그럼 우리가 당연하게 해야하는 여러가지 일들을 편하게 할 수 있는 마음이 생길지도 몰라. 앞으로 엄마도 우성이가 우성이의 주인이라는 사실을 확실하게 알고 있을게. 가끔 엄마가 우성이를 잘 모르는 것 같으면 알려줄래?”

긴 스토리타임이 끝났다.


난 나의 주인으로 날 대하고 있을까?

그리고 예상치 못한 반전을 마주했다.

아이에게 너의 주인은 너니까 스스로를 잘 알아야 하고, 잘 지켜야 하고......를 한참 그럴싸하게 떠들었는데 그날 밤 옷을 갈아입다 문득 거울을 보니 거친 발을 가진 초췌한 내 모습이 보였다.

‘발이 언제 저렇게 거칠어졌지?’

거칠어진 발이 일상에 지친 내 마음 같았다. 남자아이 둘을 케어하면서 정작 나 스스로를 돌보지 못한 모습이 보였다. 내가 나의 주인인 것도 잊은 채, 되려 아이들의 주인인 것처럼 지내고 있었다 생각하니 거울에 비친 내가 작게 느껴졌다. 책을 읽으며 아이에게 해 준 말들이 그대로 내 머릿속에 맴돌았다.

‘내가 좋아하는 건 뭐지?, 내가 싫어하는 건?, 내가 배우고 있는 건?, 내가 불편할 때 나는 당당히 나를 지킬 수 있나?’

우습게도 아이에게 읽어 줄 좋은 그림책을 고르고, 어떻게 멋있게 이야기해줄까 고민하면서도 정작 나는 나에 대해 잘 모른 채 지내왔다는 사실을 마주했다.


나의 몸과 마음을 돌아볼 차례

책의 좋은 글귀를 읽어주는 마음 육아 말고 나의 온전함이 전달되는 육아를 하고 싶었다. 내가 편안하고 진솔해야 제대로 할 수 있는 것이라 여겼다.

내가 양치질을 미루면서 아이에게 양치질을 권하는 엄마가 되고 싶진 않은 것처럼 말이다. 잔소리가 될 게 뻔하니.

아이에게 다정한 마음을 전달하고 단단한 마음을 알려주기 전에 나의 몸과 마음을 회복할 필요가 있었다.

마음을 키우는 그림책 육아에 나를 위한 일정이 더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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