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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르베 Nov 08. 2020

날 지키고 싶은 마음, 어떻게 전달할까?

<곰씨의 의자>

<곰씨의 의자> 글, 그림 노인경 / 문학동네

:곰씨는 자기가 좋아하는 의자에 앉아 휴식을 취하는 걸 좋아한다. 하지만 토끼와 친구가 된 뒤, 토끼의 변한 일상들로 곰씨의 생활이 불편해지기 시작한다. 결국 곰씨는 자신의 불편함을 알리기로 마음먹는데 쉽지만은 않다.


내 영역이 주는 안정감

첫 페이지에 곰씨가 평화롭게 의자에 앉아있다. 시집이 있고, 차를 마시기 위해 티팟까지 대동했다. 덮을 수 있는 담요도 잊지 않고 챙긴 거 보니 단단히 즐길 준비를 한 듯하다.

"우성아, 곰씨 표정 좀 봐봐. 곰씨는 이 의자가 정말 편안한가 봐. 우리도 저런 표정 따라 해 보자! 어때? 비슷해?"

나름 곰씨의 표정을 따라 하며 아이에게 보여주었다.

"비슷해요. 저도 해볼래요."

곰씨의 얼굴을 따라 해 보니 곰씨의 기분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이런 표정은 언제 나오는 걸까? 우성이는 이런 표정이 나올 때가 있어?"

"음...... 엄마가 안아줄 때요."

"정말? 그럼 한 번 해보자! 정말 그런 표정 나오는지."

아이를 힘껏 안아주며 표정을 살피니 곰씨의 표정을 따라 하려고 제법 애를 쓴다.

"엄마도 이런 곳이 있으면 좋겠다. 힘들 때 쉬고 기분 안 좋을 때도 좋아질 수 있는 곳 말이야. 우성이에게는 이런 의자 같은 곳이 있어?"

"우성이 방이요! 우성이 방에는 우성이가 좋아하는 것들이 다 있거든요."


아이의 방 입구

둘째가 태어난 이후, 큰 아이의 방 입구에는 펜스가 생겼다. 둘째가 수시로 큰 아이 방에 들어가 만들어 놓은 것들을 만지다 망가지는 일이 잦았기 때문이다. 방문에는 방 사용 수칙이 적힌 페이퍼도 붙여져 있다. 이 집에서 공식적으로 네 방을 지켜주겠다는 선언 같은 의미기도 했다. 아이가 자기 영역을 지키고 싶은 욕구가 높았을 때 붙여놓은 터라 다소 단호하게 쓰여있다. 사실 지금 첫째 아이가 쓰고 있는 방은 서재로 사용했던 방이었다. 동생이 예고 없이 수시로 불쑥 들어와 예민해진 큰 아이가 자기 물건들을 하나둘씩 서재로 옮기면서 방이 분리되었다. 처음에는 동생 때문에 자기 물건을 옮기는 아이의 모습이 얄궂게 보여 화가 난 적도 있었다. 그러나 아이가 자기의 영역을 지키고 싶어 하는 당연한 모습이라 생각되어 도와주기로 포지션을 바꿨다.

큰 아이의 방 입구


내 영역을 지키는 방법

곰씨에게도 자신의 평화가 깨지는 일들이 생겼다. 바로 토끼가 가족이 생긴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아이들이 자꾸 늘어난다.

“우성아! 이것 봐! 아이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어! 세어보자!”

“하나, 둘... 열아홉이에요!”

“대단하다. 보기만 해도 시끌시끌한데? 그런데 곰씨 괜찮을까?”

“슬플 것 같아요. 앉을 곳이 없잖아요. 하고 싶은 것도 못하고."

“우성이라면 어떻게 할 것 같아?”

“비켜주세요. 내 의자예요! 라고 말할 거예요.”

동생으로부터 자기의 영역을 방해받은 경험이 있는 여섯 살의 대답이었다.

“그런데 왜 곰씨는 말을 하지 않을까?” 하니 아이가 외친다.

“곰씨 아저씨, 어서 말해요!"

아이는 그 상황이 꽤 답답한가 보다.

“곰씨는 말하기가 어려운가 봐. 그래서 말을 못 하고 혼자 오랫동안 고민하고 있어. 왜 그럴까? 우성이처럼 쉽게 말하면 되는데 왜 말하지 못하지?”

아이가 대답이 없었다.

“곰씨가 토끼들을 싫어하는 걸까? 우성이는 어때? 정우가 싫어서 방에 못 들어오게 하는 거야?"

"싫은 건 아니에요."

"아마 곰씨도 그런 건 아닐까? 싫은 건 아닌데 어떻게 말해야 할지를 모르는 거야. 토끼의 마음도 지켜주고 자신의 마음도 지키는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것 같아. 가끔 엄마도 이럴 때 있어. 불편한데 어떻게 말해야 하는지 모르고 마음에 담아두고 있을 때가 있어. 내가 불편하다 말하면 다른 사람이 불편해질 것 같고 그러다 보면 엄마가 나쁜 사람이 되는 것 같았거든." 아마 곰씨도 그런 것 같아."

<곰씨의 의자>의 한 장면

말을 이었다.

"내 영역을 지키는 일은 아주 중요해. 소리치지 않아도 울지 않아도 지킬 수 있어. 속마음을 천천히 전달하면 생각보다 쉽게 내 영역을 지킬 수 있을지도 몰라. '비켜줘! ' 하고 단호하게 말할 수도 있지만 자칫하면 다른 사람은 나를 싫어하는구나라고 오해하거나 기분 나쁜 마음이 먼저 생길 수 있어."

곰씨의 말을 조금 바꾸어 다시 읽어줬다.

"정우야, 형은 정우가 좋아. 하지만 그동안  마음이 힘들었어. 물론 우리가 함께 하는 시간은 소중해. 하지만 가끔은 혼자 있고 싶어. 나는 조용히 블록을 하고 만들기를 할 시간이 필요해. 앞으로 펜스가 닫혀 있을 때는 혼자 있고 싶다는 뜻이니 다른 시간에 같이 놀자. 그리고 무엇보다 소중한 내 장난감을 살살 다뤄줄래?"


아이가 꽤 길고 어려운 이 말을 하기 쉽지 않을 것이라는 걸 안다. 그리고 한다고 해도 두 돌도 안된 동생이 이해하지도 못할 것이다. 하지만 어떤 분위기로 말을 하는 것이 좋은지, 어떤 마음을 갖고 내 것을 지켜야 하는지 조금이라도 이해했다면 충분하단 생각이다.


책을 다 본 아이가 이야기한다.

"엄마 이 책에 곰씨의 마음꽃이 있는 거 알아요?"

"그래? 어디 있는데?" 아이가 알려주는 곳을 보니 정말 그렇다. 아이가 찾아낸 작은 부분. 이 또한 아이랑 그림책을 읽으면서 얻을 수 있는 또 다른 재미다.

아이가 발견한 곰씨의 화분. 곰씨의 기분에 따라 모습이 다르다.

아이들과 함께 하는 일상에서는 자연스럽게 제 영역이 없어져요. 제 공간도 제 물건도 점점 아이들 것이 되어가지요. 아이 키우다 보면 어쩔 수 없는 일이겠지만 요즘 아이들로부터 제 시간, 제 물건, 제 공간을 조금은 지키려고 해요. 엄마도 소중한 영역임이 있음을 알리고 아이들에게도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 들었거든요.


사실 평소에는 다른 사람들에게도 제 영역을 지키기 어려울 때가 많았어요. 집 밖에서는 불편한 소리를 하기 어려워하는 편이라 제 영역이 불편해졌음에도 말하지 못한 채 집으로 가지고 온 일이 많았어요. 그러고는 한동안 불편해하죠. 하지만 마음일기를 한 뒤부터는 그런 행동이 나를 지키지 못한다는 걸 알았어요. 예전에 한 친구가 저에게 저의 행동이 자신을 불편하게 만들었다며 말한 적이 있었어요. 어렵게 말을 꺼낸 그 친구의 모습은 정말 멋있었어요. 제가 잘하지 못하는 행동이라 그저 신기하고 신선했거든요. 최근에 그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그때 정말 멋있었다. 어떻게 하는 거냐, 나도 그렇게 하고 싶다며 불편함을 말하는 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죠.


이런 책을 읽다 보면 아이랑 고민해요.

너라면 어떻게 할래? 어떻게 마음을 전달할 수 있을까? 하면서요. 그리곤 생각하죠. 여섯 살인 아이가 어른이 되어가면서 겪을 갖가지 불편함에서 스스로를 잘 지킬 수 있으면 좋겠다고요. 그러면서 저를 돌아봐요. 나는 그런 어른인가 하고요. 물론 부족한 어른입니다. 그러다 보니 아이에게는 그런 힘을 더 키워주고 싶은 마음이 들어요.


첫째 아이가 한참 첫 사회생활을 적응하고 있는 중입니다. 집이 아닌 곳에서 사소한 불편함을 늘 겪고 있죠. 때로는 제 마음에 들지 않아 적극적으로 개입하여 해결하고 싶은 마음도 들어요. 하지만 당장은 편해질 수는 있겠지만 결국 한 번은 경험하게 될 상황이라 여기고 아이에게 맡겨보기로 그리고 좀 지켜보기로 결정했어요. 마음을 누르고 제가 할 일은 아이가 돌아오면 릴렉스 할 시간을 주는 것, 그리고 그림책으로 여러 가지 간접경험의 기회를 주는 것이라 생각해요. 오늘은 곰씨의 도움을 받았네요. 아이도 저도 내 영역을 지키기 위한 단단한 마음이 자라기를 기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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