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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르베 Nov 14. 2020

너에게 중요한 사실은 넌 소중하다는거야.

[그림책 활동]: 자연스러움 찾기

<중요한 사실> 글-마거렛 와이즈 브라운, 그림-최재은/ 보림

: 우리 주변의 사소한 것들의 ‘중요한 사실’들을 하나씩 짚어가면서 나의 '중요한 사실'까지 생각해 볼 수 있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숟가락에 관한 중요한 사실은

숟가락으로 밥을 먹는다는 거야.

숟가락은 작은 삽처럼 생겼고,

손에 쥐는 것이고, 입에 넣을 수 있고,

숟가락은 납작하지 않고, 숟가락은 오목하고

그리고 숟가락으로 뭐든지 뜨지.

하지만 숟가락에 관한 중요한 사실은

숟가락으로 밥을 먹는다는 거야’


이렇게 다소 허무한 문장들이 가득이다. 숟가락으로 시작해 데이지 꽃, 비, 풀, 눈, 사과, 바람, 하늘, 신발, 그리고 나에 대함까지 각각의 중요한 사실에 대해 살피고 있다.


중요한 사실 찾기

이 책을 읽기 시작하자마자 아이의 웃음보가 터졌다. 그 허무한 문장이 유머가 되었기 때문이다. 나지막이 ‘숟가락의 중요한 사실은......’이라 운을 뗀 뒤, 한참 뒤에 ‘숟가락으로 밥을 먹을 수 있다는 거야’라고 급하게 정리하는 톤으로 읽어주니 아이가 소리 내어 웃었다. 당연한 걸 왜 굳이 이야기하느냐는 웃음이었다. 아이와 함께 주변을 살펴봤다.

“우성이 베개의 중요한 사실은 우성이를 편안하게 해 준다는 거야.”

라고 운을 뗐다. 아이도 따라 했다.

“이불의 중요한 사실은 따뜻하게 해 준다는 거예요.”

“시계의 중요한 사실은 시간을 알려준다는 거예요.”

“어? 엄마에게 거실 시계는 좀 달라.”

“왜요?”

“사실 거실 시계 뒤에 커다란 구멍이 있거든. 엄마에게 거실 시계의 중요한 사실은 구멍을 몰래 숨기기 위한 트릭이야”

거실 시계 뒤에 숨겨진 구멍

아이에게 시계가 가려놓은 구멍을 보여주고 난 뒤, 우리는 서로의 중요한 사실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아이의 중요한 사실

“우성이에게 중요한 사실은 뭘까?

"음...... 우성이가 소중하고 중요한 사람이라는 거예요!"

"오! 그걸 알고 있어? 그럼 엄마의 중요한 사실은?"

"당연히 엄마 아빠 모두 소중하고 중요한 사람이라는 거죠!"

여섯 살 남자아이의 대답에 괜히 마음이 몽글몽글 해졌다.

“엄마가 생각하는 우성이의 중요한 사실은, 우성이는 우주에서 하나밖에 없는 엄마의 보물이라는 거야. 우주에서 하나밖에 없으니 얼마나 소중하겠어. 게다가 돈으로 살 수 있는 것도 아니니 아무도 못 가지지. 근데 그 보물이 엄마한테 있으니 엄마가 얼마나 행복한지 모르지?”

아이가 배시시 웃는다.

“엄마의 중요한 사실은 요즘 엄마 스스로 어떤 사람인지를 아는 일이 중요하다는 거야. 엄마가 어떤 사람인지 다시 알아가는 중이거든.”

“엄마는 엄마잖아요.”

아이의 당연한 말이었다.

“사실 진짜 엄마 모습이 아니었던 적이 있었거든. 그래서 지금도 엄마를 알아가는 훈련을 하고 있어. 이 친구는 잠깐 관심 못 받는다 생각하면 어딘가 숨어버리더라고. 그동안 모르는 척했더니 꼭꼭 숨어버렸나 봐. 살살 달래서 찾아내고 있는 중이야. 우성이도 진짜 우성이가 어디 숨지 못하게 많이 사랑하고 아껴주도록 해봐! 좋아하는 일을 하면 숨지 않는데!”

아이와 함께 '중요한 사실'에 대해 이야기하는 동안 무거운 칭찬에 끌려 오랫동안 나를 돌보지 못했던 내 모습이 생각났다. 아이는 어떨까? 앞으로 수많은 자극을 만날 텐데 나를 잃어버리지 않고 잘 지킬 수 있을까? 나는 어떤 역할을 해야 할까? 생각이 많아졌다.


육아의 중요한 사실

육아를 하다 보면 내 아이를 위한 육아서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 수많은 육아서 중 내 아이에 대한 이야기는 없었다.

첫째를 낳기도 전에 프랑스 육아부터 시작해 머리가 좋아지는 0세 교육 등 육아서를 태교 삼아 읽던 나는 아이가 태어난 뒤에도 시중의 육아서를 애써 찾아 읽던 엄마였다. 나의 아이를 잘 키우는 팁을 얻을 수 있을까 하는 간절함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아이가 어렸을 때는 또래 엄마들을 만나면 아이가 언제 말을 시작하는지, 언제 기저귀를 떼는지, 이유식에서 언제 밥으로 넘어가면 되는지 등 사소한 질문을 쏟아내고 공유하는 일이 자연스러웠던 때가 있었다. 그러다 한 아이가 대소변을 가렸다거나, 말을 하기 시작했다고 하기라도 하면 내 아이가 늦은 건 아닌지 걱정을 하며 늦어도 괜찮다는 이야기를 찾기 위해 육아서와 블로그를 뒤적거렸다.


몇 개의 육아의 결정적 고비들을 겪고 나니 나와 아이에게 어울리는 육아에 대해 소신이 새겼다.

'자연스럽게'

나와 내 아이를 위한 육아의 ‘중요한 사실’이다.


첫째 아이는 또래보다 신체적 발달이 빨랐다. 그에 비하면 많은 것들이 느렸다. 침을 덜 흘리는 시기, 기저귀 떼는 시기, 처음 말을 하게 되는 시기 모두 또래보다 한참 늦었다. 킥보드는 다섯 살이 되어서야 겨우 제대로 타고 자전거는 여섯 살이 되어서야 제대로 타고 있다. 하나 둘 겪어보니 아이에게 나름의 속도가 있었다. 아기 때에는 음식을 주면 조금 먹어본 뒤에 안심하고 먹고, 낯선 장소에서도 안전한지 확인한 뒤에 다니던 아이였다. 탐색하는 시간이 긴 아이라 생각했다. 그 속도를 알고 나니 조금 마음이 편해졌다. 아이를 키우다 보면 주변의 따가운 조언도 많았다. 그럴 때면 내 아이를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의 조언이라 생각하며 더욱 아이의 속도에 집중했다.


결국 하게 될 것들에는 억지로 마음 쓰지 않았다.

기저귀 떼기도 '설마 어른이 되어서도 기저귀를 차겠어?’라는 마음으로 기다렸다. 그러던 아이가 네 살쯤 스스로 기저귀를 뗐다. 밤 기저귀는 좀 더 오래 걸렸다. 여섯 살이 넘어서도 밤 기저귀를 하다 보니 주변에서는 이제는 떼라며 재촉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이는 한두 번 하기 싫다고 하더니 그렇게 밤 기저귀와도 뚝딱! 작별했다. 아직 쌓아놓은 주니어 밤 기저귀가 두팩이나 남아있었지만 기쁜 마음으로 필요한 분께 드렸다. 말이 늦던 아이는 이제 자기 생각과 느낌을 꽤 정확하게 말할 줄 안다. 나의 표정을 보고 ‘엄마 지금 우성이 말 안 듣고 있으면서 듣는 척하는 것 같은데요?’라고 멍 때리는 날 깨우는 날카로움도 서슴없다.


배움에 있어서는 자연스러움을 특히 애쓰고 있다.

우리말을 배우는 일이나 시계를 보는 일, 영어를 배우는 일 등과 같은 배움에서 모두 급하지 않고 자연스럽기를 원하기에 나름의 환경을 만들어가고 있다. 사실 일곱 살을 준비하는 아이의 주변 환경은 꽤 어수선하다. 수많은 자극이 있고 무언가를 남들보다 빠르게 선택해야 할 것 같은 압박을 느낄 때도 있다. 누군가를 만나고 온 날을 특히 그렇다. 그런 바쁜 마음을 느낄 때 내가 선택하는 방법은 지금 아이에게 가장 중요한 게 무엇이고, 가장 필요한 게 무엇인지를 고민해보는 것이다. 그럼 선택이 좀 쉽다.


너에게도 자연스럽기를

아이는 올해 우리말을 읽고 쓸 줄 알게 되었다. 가나다를 어떻게 알려줄까 고민하다 ‘가나다’ 글자의 원리를 알려준 뒤, 집 곳곳에 아이가 좋아할 만한 단어들이나 기분 좋아지는 문구들을 써 붙였다. 가방, 나비, 다람쥐, 라디오 등에서 시작하는 우리말보다 아이에게 익숙한 말들로 시작하는 배움이 더 효과가 좋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단어가 어려워 보여도 아이는 그 단어를 익숙하다 여겼다. 특히 어벤저스 이름이나 아이가 좋아하는 간식 이름은 어려운 글자를 알려주기 충분했다.

아이는 식탁에 앉을 때마다 좋아하는 말을 자연스럽게 찾는다.

집 안 곳곳에 아이에게 해주고 싶은 말들을 붙여놓았다. 글을 제법 읽기 시작한 아이에게 가장 먼저 알려주고 싶은 말들이었다. 읽어보고 기분 좋아지는 느낌을 기억하며 일상에서 자연스럽게 읽어볼 수 있기를 바라며 말이다. 글을 배운 기억 속에 마음이 따뜻해진 기억도 함께 기억되면 얼마나 좋을까.

집 안 곳곳에 붙여진 문구들. 아이는 오며 가며 좋은 말을 배운다.


아이에게는 동영상을 시청하는 시간이 정해져 있다. 밥 먹고 30분씩 하루 2번. 매번 언제까지 보면 된다라는 시간을 알려주다 여섯 살이 되면서 스스로 시간을 체크하도록 했다. 시계에 적힌 숫자 한 칸이 5분이라는 걸 알려주려다 보니 구구단 5단을 알게 되면 좋을 것 같아 5단만 써써 아이가 화장실에서 볼 수 있도록 붙여두었다. 봐도 그만. 안 봐도 그만이다. 그 모습을 슬쩍 기억되도록 하는 게 목표다. 이후에 구구단을 제대로 만날 때 덜 낯설기를 기대하며 선택한 방법이다. 요즘은 아이가 동영상을 시작하기 전에 물어본다.

“언제까지 보면 되는 거야?”

화장실 벽에 붙여진 5단 구구단


영어는 큰 아이 18개월부터 시작했다. 언어를 배움에 있어서 자연스럽기를 바랐기에 영어도 우리말처럼 배우길 원했다. 영어책을 읽어주고, 영어노래를 불러주고, 영어로 놀아주고, 아이가 노는 중에도 흘려듣기를 하게 하며 엄마표 영어를 몰입했다. 기관을 늦게 보낸 탓에 아이랑 집에 있는 시간이 많다 보니 여유 있게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다행히 아이는 좋아했고 현재 아이는 우리말 배우는 속도와 순서대로 영어도 하고 있다. 듣고 말하기가 익숙한 아이는 요즘 제법 글자가 작은 마블 영어책 읽기가 한창이다.

일곱 살이 되니 아이의 유치원 선택부터, 각종 학습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 팔랑거리는 귀를 갖고 다니지만 의연한 척한다. 그리고 ‘중요한 사실’이 뭔지 생각한다.


왜 책을 읽어야 하는지, 읽은 책의 권수가 중요한 건지.

눌러서 소리 나는 펜이 정말 필요한 건지, 누르는 행동이 재미있는 건 아닌지.

패드를 사용해 영어단어 맞추는 일이 정말 필요한 건지, 생각해서 단어를 맞추는 건지, 손의 움직임이 먼저가 되진 않는지.

아이가 어떤 사람이 되기를 기대하는지.

지금 아이가 가장 중요하게 배워야 하는 일은 무엇인지.


단단한 마음 연습하기

아이와 마음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그림책 한 권을 늘어지게 보며 온갖 이야기를 하는 것도 단단한 마음을 위한 연습이 중요하단 생각에서 시작된 선택이었다. 어떻게 책을 읽어주어야 하나 고민하던 시기에 아이는 ‘물어보지 말고 그냥 읽어주세요!’라는 말을 하곤 했었다. 엄마가 그림책을 어떻게 읽어주는 지를 몰라 헤매는 마음이 전해졌을 거다. 그러던 아이가 요즘은 그림책 구석에 그려진 그림 하나로도 자기 이야기를 만들 줄 알고 자신의 기분을 이야기하는 것뿐 아니라 나의 기분을 살필 줄도 알게 되었다. 마음을 알게 된 아이의 새로운 변화다.


아이가 미로 찾기를 하다 짜증이 난 적이 있었다. 만만치 않은 미로를 만났는지 짜증이 잔뜩이다.

“짜증이의 '중요한 사실'은 실수하게 부축인다는 거야.”

라고 쓱 지나가며 말하니, 아이가 자신의 한쪽 귀를 꾹! 누르더니 말한다.

“나오지 마! 우성이가 짜증이 못 나오게 막았어요!”

아이의 재치에 또 한 번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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