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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르베 Dec 01. 2020

엄마도 예쁜 옷을 입고 다닐 때가 있었어

[그림책 활동]: 나의 색깔 손님 찾기

<색깔 손님> : 글, 그림 : 안트예 담, 유혜자 옮김 / 한울림 어린이

할머니는 겁이 많은 사람이다. 그래서 집 밖으로 나오지를 못한다. 그런 할머니에게 어느 날 소년이 찾아온다. 할머니 집 창문으로 날아들어온 종이비행기를 찾기 위해서다. 소년이 들어오면서부터 할머니의 어두운 집 곳곳에 색깔이 채워진다.


엄마도 예쁜 옷을 입고 다닐 때가 있었어.

“언니, 우리에게도 이럴 때가 있었어.”

동생이 지난 사진첩을 정리하다 찾았다며 10   함께 미국 여행을 갔을 당시 찍었던 사진  장을 보내줬다. 한참을 들여다봤다. 당시 한국에서의 일상이 무거워 짊어지고 있던 것들을  던지고 튕기듯이 다녀온 여행이었다. 그곳에서 나는 걸어서 골목 구석구석을 돌아다녔고 아무 곳이나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서툰 그림도 그렸었다. 햇빛이 좋아  자리에 털썩 누워도 아무도 눈치 주는 사람이 없는 곳이었다보니 사진만 봐도 당시의 자유롭던 기분이 생각나 개운하고 통쾌한 기분이 들었다. 동생도 그랬나 보다. 동생과 나는   아들을 키우는 엄마로서 서로에게  말도,   위로도 많은 사이라    되는 사진들은 우리의 대리만족을 충족시키기 충분했다.


우리는 지난날의 풋풋함, 대범함, 당당한 실수에 대해 이야기했다.   때는 밥을  먹어도 배가 고프지 않았을까, 우리가 저런 멋을 언제 다시    있을까? 다시 저렇게 홀가분한 여행을   있을까?  때는 외출하려면 준비하는 시간도 길었는데 지금은 그냥 나간다, 어쩜 그때 그런 실수를 하고도 능청스럽게 웃을  있었을까 라는 .  여행이라 짐을 줄인다고 옷도 현지에서 비싸지 않은 옷들로  뒤에 동생과 번갈아 입었음에도 지금은 입기 어려운  옷과 신발이 예뻐 보였다.


동생이 찾아 준 10년 전 사진들

<색깔 손님>이란 책을 읽으면서 유독 마음에 가는 부분이 있다. 할머니의 집을 구경하던 아이가 벽에 걸린 사진을 보며 할머니에게 묻는 장면이다.


이건 누구예요?” 벽에 걸린 액자를 보며 아이가 묻는다. 사진을 한참 보던 할머니가 대답한다.
내가 젊었을  찍은 사진이야. 파티에 초대를 받아 예쁜 옷을 입었지.”

 질문에 대답하며 할머니의 모습이 달라졌다. 겁이 많은 할머니가 사람들 많은 파티에 다니던 때라니. 아마 지금과 다른  날의 용기와 기분이 생각났나 보다.  


지난 여행의 사진을 보면서, ‘그땐 그랬네.’ 하며 마음이 두근두근 해진 나처럼 말이다. <색깔 손님> 그림책을 보다 마침 며칠 전에 동생이 보내  사진들이 생각나 아이에게  사진들을 보여주었다.

"이 사진들 같이 볼래? 누군지 알 것 같아?."

"엄마 친구예요? 엄마예요?”

"사진 속에 있는 사람이 다 엄마야. 얼마 전에 이모가 보내 준 사진들인데 엄마도 이렇게 예쁜 옷을 입고 다닐 때가 있었더라고. 사진을 보니 엄마도 이 할머니처럼 예전의 엄마가 생각나 기분이 좋았거든. 그래서 너에게도 보여주고 싶었어. 엄마의 새로운 모습도 보여주고 싶어서.”

"어디에서 찍은 거예요? 우성이는 어디 있어요?"

아이는 본인이 없는 엄마가 있었다는 것을 이해 못하기에 자기 없이 여행   모습을 신기한 듯 쳐다봤다.


할머니는 왜 겁이 많아졌을까?

이렇게 파티에 다니고 누군가 찍어주는 사진에도 밝게 웃던 할머니였는데 왜 겁이 많아졌을까? 사람도 두렵고 거미도 두렵고 나무도 두렵다며 집에만 있는 할머니의 사연이 궁금해졌다. 책에서는 나오지 않는 이야기를 아이와 나눠보기로 했다.

“할머니는 왜 겁이 많아졌을까? 예전에는 파티에도 다녔는데 말이야. 우성이는 ‘겁이 난다’라는 말이 뭔지 알아?

“그럼, 알지요. ‘겁이 난다’는 건 무섭다는 거예요.”

“그렇지, 무섭고, 가까이 가고 싶지 않고, 떨려서 몸이 얼어버리거나 피하고 싶은 느낌이야. 우성이는 겁이 날 때가 있어?"

“우성이는 없어요. 다 이길 수 있거든요.”

히어로물에 한창 빠진 아이의 대답이다.

엄마는  달라. 사실 겁이 많은 사람이었는데 우성이를 만나고 나서 많이 용감해진 거야.”


정말 그랬다. 어렸을 때부터 겁이 많아 혼자 화장실 가는 일이 어려워 화장실 입구에 의자를 갖다 두고 어린 동생을 앉혀놨다거나, 기어 다녔을 적에도 아기들이 가지고 노는 동물 인형 장난감을 눈 앞에 세워놓으면 그곳을 돌아서 기어 다녔다는 등의 이야기들을 친정엄마는 아직도 하신다. 그런 겁 많던 내가 아이를 낳고 정말 용감해졌다. 아이 덕분에 용감해진 엄마의 이야기를 해주었다.


“엄마는 강아지를 무서워했어. 어렸을 때 쫓겼던 기억이 있거든. 그리고 깜깜한 걸 무서워했어. 우성이 태어나고 나서 병원에 혼자 잘 때가 있었는데 그때 불을 끄지 못한 채 잤던 기억이 나. 그런데 지금은 안 그래. 무서운 강아지가 나타나면 엄마가 우성이랑 정우를 지켜줘야 한다 생각하니까 강아지가 무섭지 않아 졌어. 깜깜한 것도 신기하게 무섭지 않아 졌어. 깜깜해도 너희들을 지켜줘야 하니까 더 용감해졌나 봐. 그러고 보니 어쩌면 할머니도 엄마가 강아지에게 쫓긴 기억처럼 안 좋은 기억이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사람이랑 거미랑 나무랑 관련된 ‘수상한 사건’이 있었던 건 아닐까?”

“어떤 사람이 나무 뒤에 있다가 거미로 할머니를 놀라게 했나 봐요.”

“어쩜 친구랑 나무 위를 올라갔는데 거기서 거미를 보고 놀라 떨어졌는데 친구가 많이 다쳤을지도 모르고.”

“맞아요!”

그렇게 우리는 그림책에서 보이지 않는 이야기를 킥킥대며 만들어냈다. 그리고 문득 ‘사람, 거미, 나무’ 가 등장하는 이야기를 만들어봐도 재미있겠다 생각이 들었다.

“어쩜 겁이 많아 집안을 깨끗하게 청소하는 건 아닐까? 겁이 날 만한 것들을 다 치운다는 생각으로 말이야.”

이야기를 듣던 아이가 말했다.

“그런데 할머니는 나무가 무섭다면서 집에는 화분이 있네요?”

“어? 진짜 그렇네. 그럼 저건 진짜 화분이 아닌가? 나무는 무서운데 화분은 괜찮은가?”

아이의 예리한 지적에 웃음이 났다.


네가 엄마의 색깔 손님이야.

"여기 나온 할머니는 엄마 같아. 할머니를 찾아온 아이는 너 같고. 엄마도 우성이를 만나기 전에 이런 모습이 있었거든. 널 처음 만나기 전에는 엄마도 엄마가 처음인데 좋은 엄마가 될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도 있었고, 엄마 때문에 잘못되지는 않을까 걱정이 되어 겁도 났었거든.


그러던 어느  정말  그림책처럼 네가 엄마 집에 ‘하고 나타난 거야. 그러더니 조용했던 집이 갑자기 어수선해지고 바빠졌어. 엄마 혼자서는 요리도  못하는데  먹이고 싶어서 준비하다 보니 부엌은  엉망이었고, 엄마가 치우는 속도보다 네가 꺼내는 속도가 빨라서 언제부턴간 치우지도 않았어. 조용했던 집이 들썩들썩 해졌지. 집은 어수선해졌지만 기분은 좋았어. 용감해졌고 씩씩해졌어.  만나고 그림책도 많이 읽게 되고 처음 해보는 놀이도 많아졌지. 당연히 웃음도 많아졌고. 그래서 엄마는 네가 엄마를 찾아온 색깔 손님 같아. 조용했던 엄마 , 그리고 엄마에게 네가 진짜 많은 색을 가져다주었거든."

색을 채우는 할머니


아이의 색깔 손님

"우성이에게도 색깔 손님이 있어?”

아이는 한참을 생각하더니 대답했다.

"우성이의 색깔 손님은 햇빛이에요."

"햇빛? 왜?"

"햇빛이 우성이 방에 색을 가져다주거든요."

자기 방에 유독 햇빛이 잘 들어 떠오른 생각 같기도 해 아이다운 생각 같다 느끼며 넘겼다.

아이가 말한 색깔손님

며칠 뒤. 깜깜한 새벽에 시작한 일기가 마무리될 때쯤이었다. 문득 손등이 따뜻해지는 것을 느껴졌다. 손등에 햇빛이 내려앉은 탓이었다. 손등에 햇빛이 차올라 그림자가 생겼다. 창문 밖을 보니 아침해가 유독 밝게 빛나고 있었다. 창문에 가까운 한쪽 어깨가 따뜻해졌다. 몸이 따뜻해지는 기분이 좋아 눈이 부시지만, 또 기미가 생길까 신경은 좀 쓰였지만 잠시 눈을 감고 햇살을 몸으로 받았다. 그러다 아이가 말한 ‘색깔 손님’ 이 생각났다. 그동안 매일 아침, 내가 일기에 몰두해 있는 동안 날 비추고 있었다고 생각하니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그제서야 주변이 보인다


그렇게 시선을 돌려 창문 아래를 보니 나뭇잎 끝이 유독 빨갛게 물들기 시작한 나무가 눈에 띄었다. 그 옆의 나무도, 나무 뒤의 숲도 각자의 속도대로 색이 변하고 있었다. 가을이 오고 있었다. 그동안 나에게 몰두하느라 알아차리지 못했는데 햇빛을 알아차리고 나니 그제야 주변이 보인다. 아이가 말한 ‘색깔 손님’ 같았다. 그 날 아침 일어난 아이에게 네가 말한 ‘색깔 손님’이 있다고 이야기해 주었다.

“조금 전에 마음 일기를 할 때 말이야, 분명히 깜깜했는데 어느 순간 햇빛이 엄마 몸에 스며들면서 몸이 따뜻해지는 거야. 그 햇빛이 우성이가 말한 ‘색깔 손님’ 같았어.”

“맞아요! 나도 그 느낌이 들어서 말한 거예요. 우성이 방에는 더 많아요.”

이야기를 마친 뒤 창문 밖에 아직 남아있는 우리 집 ‘색깔 손님’을 아이와 함께 지켜봤다. 가을 나무들도 함께.


아이가 말한 ‘색깔 손님’
달라진 할머니의 집, 그리고 달라진 나의 집.
아이가 들어오기 전의 할머니 집(왼)과 아이가 다녀간 뒤의 할머니 집(오른)

아이가 돌아가고 난 할머니의 집이 달라졌다. 여기저기 색이 가득하다. 온기일지도, 생기일지도 모르겠다.

아이가 태어나기 전 신랑과 둘이 살던 집도 비슷했다. 청소에 재능이 있는 신랑 덕에 집은 늘 깨끗했다. 요리가 서툰 탓에 외식도 잦았다. 그렇게 신랑과 나는 매일 정돈된 곳에서 비슷한 생활을 하며 지내다 어느 날 서툰 부모 생활을 시작했다. 늘 정신없었고 둘만의 시간도 없는 하루가 이어졌지만 그 어수선함이 좋았다. 지금은 한 명의 아이가 더 생겨 예전보다 훨씬 더 어수선하고 훨씬 더 정신없지만 지금 우리 집에 색깔이 가득하다 생각하니 나에게 주는 온기같아 부쩍 든든한 마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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