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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르베 Jan 19. 2021

집콕 중인 아이를 위한 상상여행

[그림책 활동] : 그림책과 음악

<이렇게 멋진 날>

글: 리처드 잭슨/ 그림, 옮김 : 이수지/ 비룡소


상상만으로도 멋진 여행

“바-바바 밤! 바-바바 밤!”

자기 전 스토리타임을 시작하면서 베토벤의 <운명교향곡 5번, 운명 1악장>을 틀었다. 특유의 웅장한 연주의 인트로에 아이들의 귀가 쫑긋해졌다.


유치원에서 온라인 수업을 시작하기 전부터 첫째 아이는 유치원을 가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다른 아이들보다 조금 더 집에 있는 시간이 길어진 상황이다. 요즘은 날이 추워 간단한 외출도 쉽지 않으니 집에만 있는 아이들의 모습에 안쓰러운 마음이 커진다.

이수지 작가의 <파도야, 놀자>가 좋아 작가의 다른 그림책을 알아보다 <이렇게 멋진 날>을 알게 되었다. 그런데 이 그림책이 요즘 우리 집 아이들이 좋아하는 책 중 하나가 되었다. 특히, 첫째 아이에게. 무엇이 아이들의 마음에 닿았을까?

장대같이 쏟아지는 비가 요즘을 닮았다.

첫 장부터 가득히 채운 검은 구름 사이로 장대같이 거센 비가 내리고 있다. 쉽게 외출할 수 없는 상황이 요즘의 우리 상황과 닮아 보였다.

날씨 덕분에 나가 놀지 못하는 아이들이 지루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그림도 그려보고 박스 안에도 들어가 보지만 역시 재미있지 않은가 보다. 요즘 아이들의 모습 같아 안쓰러운 마음에 저절로 말이 내뱉어진다.

‘에고! 얼마나 나가 놀고 싶을까?’

그때 남자아이가 라디오를 틀었다.

“지지직!”

소리가 났다.

멋진 날이 되는 순간. 멋진 날을 위한 소품들이 등장했다.

그러더니 물을 가득 머금은 높은음자리표가 라디오에서 떠올랐다. 음악의 시작이었다. 그에 맞는 남자아이의 포즈도 제법이다. 덕분에 방 안의 분위기가 바뀌었다. 옆의 두 아이가 음악을 듣고 몸을 일으켜 세우고, 잠자던 강아지가 기지개를 켜니 지루하고 심심한 시간이 멋진 날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모자, 목걸이, 우산, 장화 등 멋진 날을 위한 소품들도 나타나니 슬슬 놀아볼 준비가 된 듯 쫄깃한 긴장이 느껴졌다. 라디오에서는 어떤 음악이 나왔을까?


음악적 소견이 짧은 나의 플레이리스트에서 베토벤의 <운명교향곡 5번 : 운명 1악장>이 선택되었다.

“바-바바 밤! 바-바바 밤!”


남자아이의 멋진 포즈에 특유의 웅장한 인트로가 어울리니 그림책을 함께 보던 우리 집 아이들도 금세 조용해졌다.

출처 : 베토벤 <운명교향곡 5번, 운명 전악장>@박인준의 음악살롱

음악이 빨라졌다. 아이들이 음악에 맞추어 춤을 추기 시작하더니 라디오에서 나온 높은 음자리표가 부유하여 여자아이가 들고 있는 긴 우산 끝에 닿았다. 여자아이의 움직임에 따라 우산 끝에 매달린 음악이 방에 가득 채워졌다. <운명 교향곡>의 빨라진 템포 덕분에 정적인 그림책에 점점 생기가 도니 몸치인 나도 점점 흥이 올랐다. 나의 움직임이 재미있을수록 날 바라보는 두 아이의 즐거움이 커질 거라 여기며 리듬에 몸을 맡기니 두 아들이 역시나 신이 났다.

춤을 추던 그림책 속 아이들이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우산은 흥은 거들뿐 비를 막아주기 위한 용도는 아닌가 보다. 물 위를 참방참방 뛰며 신발이 젖거나 옷이 더럽혀지는 것 따위는 신경 쓰지 않는 모습에 비 오는 날 조심조심하며 물웅덩이를 지나던 나의 모습이 무장해제되었다.

‘아! 얼마나 신이 날까?’  

우리 집 두 아이들도 나와 다르지 않아 보였다. 숨죽인 채 보며 웃고 있으니 말이다.

이내 비가 그쳤다. 곳곳에서 놀던 친구들이 모였다. 분위기가 바뀌니 다른 음악이 좋을 듯 해 아침에 자주 듣는 시즈코 모리의 <토토의 즐거운 하루>를 틀었다. 톡톡 튀는 피아노 소리가 깊게 고민하지 않고 고른 음악 치고는 그림에 제법 잘 어울렸다. 물에 젖은 풀 냄새, 흙냄새가 나는 듯하더니 음악 덕분에 비가 끝난 뒤 똑! 똑! 물이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은 분위기가 더해졌다.

출처: 시즈코 모리 <토토의 즐거운 하루>@필나로

친구들이 모여 같이 놀러 가자며 비가 갠 하늘을 향해 우산을 높게 뛰운다. 바람에 우산이 둥둥 날아가니 ‘톡톡톡’ 튀는 피아노 소리에 손가락으로 우산도 ‘톡톡톡’ 짚어주고, 또다시 ‘톡톡톡’ 튀는 피아노 소리에 점프하는 친구들도 하나씩 짚어주니 음악과 그림이 제법 잘 어울리는 궁합이 되었다. 우산을 쫒아 들판을 달리는 아이들을 손으로 쓸어내리고, 음악에 따라 그림책 속 그림을 하나하나 짚어가니 말보다 손이 바빠진 스토리타임이 되었다.

아이들이 던진 우산이 커다란 나무에 걸렸다. 아이들은 그 우산을 챙기기 위해 자주 해 본 듯 거침없이 나무에 오르고 매달렸다.


‘짝짝짝! 손바닥을 마주쳐. 우리는 이렇게 반짝반짝 빛나!’


음악에 따라 노랫말처럼 그림책 글을 따라 부르고 박수도 곁들이니 오늘이 전부인 것처럼 노는 아이들의 모습이 더욱 돋보이는 순간이다.

각자의 우산을 챙긴 아이들이 망설임도 없이 하늘을 향해 점프를 한다. 중력이나 아이들의 무게 따위는 상관없이 아이들이 우산과 함께 공기 중에 흔들흔들 떠 올랐다. 이 와중에 모자를 챙긴 강아지까지 신이 나 보이니 멋진 날을 만든 작가의 섬세함이 돋보였다.


이처럼 그림책 한 장 한 장에 멋진 오늘을 즐기는 아이들의 모습이 가득하니 읽다 보면 마치 그곳에 함께 있는 듯한 기분이 든다. 집콕 중인 우리 집 아이들에게도 이런 '상상'의 힘이 닿았을 거란 생각이다.


'상상'속에서 아이들의 힘은 더욱 세진다. 밖에 나가도 되는지, 빗 속에서 놀아도 되는지, 우산을 하늘 높이 던져도 되는지, 나무 위로 올라가도 되는지, 높은 곳에서 점프를 해도 되는지에 대해 엄마의 허락 따위는 필요 없기 때문이다. 엄마의 허락이 필요 없는 사실만으로도 짜릿한 기분일 텐데 옷이 더럽혀질까 걱정하지도 않아도 되고, 다칠까 봐 조심하지도 않아도 되고, 누가 먼저 가나 신경 쓰지 않고 오로지 즐거움에만 몰두할 수 있으니 그 짜릿함이 배가 될 수 있다. ‘상상’이 커질수록 설렘도 커지니 요즘 같이 집콕이 익숙한 시기에 집 밖에서의 즐거움을 상상할 수 있는 이런 그림책이 아이들에게는 더욱 애틋하게 느껴지는 듯하다.

하늘을 날던 아이들의 멋진 날이 끝나간다. 다른 친구들과 공중에서 인사를 하는 것 보니 우산을 가지고 각자의 집으로 갈 수 있는 재주까지 겸비한 듯하다. 우산을 갖고 도착한 곳에 엄마가 기다리고 있다. 아이스크림과 함께. 먼저 도착한 아이는 벌써 엄마 품에서 잠이 들었다. 실컷 놀고 난 뒤에 먹는 아이스크림이 얼마나 맛있는지 알기에, 놀이가 끝난 뒤의 낮잠이 얼마나 달콤한 지 알기에 보기만 해도 즐거워진다. 우중충한 날씨조차 멋진 날로 만든 아이들이 모자를 던지며 ‘얏호!’를 외치더니 그 모자를 쫒아 다시 달린다. 아이들의 즐거운 놀이가 또 이어지려나보다.


그리운 어느 멋진 날

둘째 아이 임신 중에 제주도를 다녀온 적이 있었다. 그때 아이는 바닷가에서 파도와 대결을 하며 숨이 찰 때까지 웃으며 놀았다. 당시에 찍은 비디오를 다시 보니 동영상 속에서 첫째 아이의 웃음소리가 끊이질 않는다. 정말 신이 나서 웃는 웃음소리라 듣기만 해도 덩달아 같이 웃을 수밖에 없는 그런 웃음이었다. 밀려오는 파도에 한 줌 움켜쥔 모래를 던지며 '저리 가!'를 외치며 깔깔대며 웃고, 부서지는 파도에 옷이 젖으면서 재미있다 웃던 그 모습이 이 그림책을 보니 많이 생각난다.

언제쯤 아이들이 편하게 웃고 땀 흘리며 놀 수 있는 날이 올 지. 유난히 그리운 어느 멋진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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