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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르베 Jan 10. 2021

나도 긴 머리칼을 자를 준비를 해야겠다.

[그림책 활동] 아이에게 건네는 응원

<메듀사 엄마> 글, 그림 : 키티 크라우더 / 옮김 : 김영미

: 메두사 엄마는 머리칼이 긴 엄마다. 태어난 아이가 너무 예쁘고 소중하다. 다른 사람이 만지는 것도, 쳐다보는 것도 싫은 엄마는 자신의 긴 머리칼로 아이를 감싼다. 머리칼로 아이를 높이 올려 세상 구경을 시켜주며 머리칼의 갖가지 능력으로 아이를 케어한다. 어느 날, 아이는 학교에 가고 싶어 하지만 메두사 엄마는 아이에게 엄마가 해 줄 수 있다는 말로 아이의 변화를 거부한다. 하지만 아이를 위해 유치원에 보내기로 결정한 메두사 엄마는 다른 사람들 엄마를 무서워한다라는 이유로 데리러 오지 않아도 된다라는 아이말에 마침내 긴 머리를 싹둑 자르고 아이를 데리러 간다.



메듀사 엄마였던 나.

“엄마, 그냥 제가 할게요.”

아이가 얼굴을 찡그리며 말했다.

유치원 수업이 금지되면서 다음 주부터 온라인 수업을 하게 되었다는 연락을 받았다. 사실 유치원 수업이 금지가 되기 이전부터 유치원을 쉬고 있었던 터라 얼떨결에 교재도 교구도 준비가 안된 상태에서 온라인 수업을 시작하게 되었다. 수업 시작 첫날. 시작과 함께 아이 옆에 앉았다. 수업 준비가 충분치 않은 아이를 도와주기 위함이었다. 둘째가 엄마를 찾으니 이 수업을 우리가 할 수 있을지 걱정이 되었다. 역시 교재가 없으니 아이는 수업을 따라가기 어려워했다. 그런 아이를 도와주어야 할 것 같아 이렇게 저렇게 알려주었는데 이상하게도 아이도 나도 점점 마음이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결국 아이는 짜증이 잔뜩 난 얼굴로 스스로 하겠다는 말을 꺼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정신이 번뜩 들었다. 선을 넘은 엄마 같아 낯이 뜨거워졌다. 수업이 끝난 뒤, 조용히 아이에게 말을 꺼냈다.

"엄마가 엄마 수업도 아닌데 옆에서 이래저래 말을 하니 불편했겠다. 엄마가 잘못 생각했던 것 같아. 수업 준비물이 없어서 엄마가 도와줘야 한다고 생각했거든.”

"선생님 말도 들어야 하고 엄마 말도 들어야 하니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어요."

아이 말을 들으니 상황이 명확히 정리되어 더 미안해졌다.

"에고. 그랬구나. 미안해. 그럼 내일부터는 방에서 혼자 해 볼래? 엄마 도움이 필요하면 말하고. 어때?"

아이가 고개를 끄덕인다.


그냥 응원해주면 되는 거구나.

다음 날. 지난밤 아빠가 퇴근길에 받아 온 교재를 들고 아이가 온라인 수업을 위해 방으로 들어갔다. 아이가 들어가고 나서 애써 태연한 척을 해 보지만 나도 모르게 아이방 쪽으로 귀가 커졌다. 당장 들어가 보고 싶은 마음을 애써 누르며 기다리던 때였다. 아이가 나왔다. 무슨 일인가 놀라서 쳐다보니 쉬는 시간이란다. 엄마를 부르지 않고 지나간 수업이 신기해할 만하냐 물으니 그렇다고 했다. 아이가 다시 들어가서 수업을 하고 다시 쉬는 시간에 나오고 수업을 다시 시작하는 모습을 보니 그동안의 긴장감이 작아지면서 붕-띄워진 기분이 들었다.

'이건 뭐지?'

아이가 많이 컸다는 사실을 체감하는 순간이었다. 혼자서 할 수 있는 아이를 내가 그동안 아무것도 모르는, 그래서 엄마의 손을 많이 타야 하는 어린아이로 생각했었나 보다. 모르는 사이 부쩍 자란 아이였다. 자신의 방이 인터넷이 약해 자주 끊긴다며 거실 식탁에 자리 잡은 아이를 보니 더욱 실감했다. 제법 의젓한 모습이 마냥 신기해 눈길이 멈추지 않았다.

수업이 끝날 무렵, 아이가 힘이 드는지 식탁에 몸을 기댔다. 아이에게 쪽지를 조용히 건넸다.

간단한 응원이면 될 것을.

아이가 글을 보더니 웃는다. 그러더니 꽉 쥔 주먹을 내보인다.

드디어 수업이 끝났다. 수업을 마친 아이가 웃으며 다가왔다. 키가 부쩍 크고 제법 무거워진 아이를 아기 안듯이 안고 머쓱하게 말을 건넸다.

"수고했어. 힘들었지? 이렇게 혼자 잘하는데 어제는 괜히 엄마가 끼어들었네.”

"내일도 오늘처럼 말해줄 수 있어요?"

"응? 어떻게?"

"'잘하고 있어. 힘내!' 이렇게요."

그 짧은 말에 아이가 힘을 냈다니. 너무 간단하고 효과 좋은 방법을 몰라 직접 해주려고 허둥지둥, 조마조마했던 모습이 다시 생각났다. 그냥 응원이면 되는 거였는데 말이다.

지금까지 아이는 여전히 온라인 수업을 혼자 하는 중이다. 지나가다 슬쩍 보니, 어느 날은 책상 밑, 어느 날은 직접 만든 아지트에서 수업을 하며 나름 편한 자리를 여기저기 찾는 모습이 보인다. 그 사이 엄마인 내가 할 일은 중간에 먹을 간식과 응원하는 말 한마디를 준비하는 정도다.


나도 긴 머리칼을 자를 준비를 해야겠다. 이왕이면 시원하게!

<메두사 엄마> 그림책을 보니 내 모습이 보였다.

메두사 엄마가 머리칼로 아이를 재우고 먹이고 걸음마를 알려주는 모습은 먹고 입고 자는 것 등의 모든 것들이 내 손을 거쳐야 했던 육아의 시기를 떠올리게 했고,


이리제(메두사 엄마의 아이)가 학교에 가고 싶다고 했을 때 엄마가 할 수 있다며 직접 글을 알려주고 책을 읽어주며 애쓰는 메두사 엄마의 모습에서 유치원 온라인 수업을 통솔하려고 했던 내 모습이 보였다.


마지막 장면은 이 그림책의 하이라이트다.

이리제를 학교에 보내기로 결심하고 난 뒤 긴 머리칼을 '싹둑' 자르고 학교에 나타난 메두사 엄마, 그리고 그런 엄마를 반기다 모자가 벗겨져 엄마와 같은 색의 머리칼이 드러난 이리제. 엄마의 짧은 머리칼과 아이의 짧은 머리칼이 서로 엉키지 않은 채 바람에 날리는 모습. 몸을 맞대고 안아주는 모습 등 장면 구석구석이 마음에 남았다.

.  

“이것 봐. 이리제 모자가 벗겨졌어. 내내 모자를 쓴 모습이었는데 말이야.”

“봐요. 봐요. 우와! 진짜다. 메두사 엄마랑 머리색이 똑같아요.”

“이제는 엄마의 머리칼이 이리제에게 닿지 않네. 이리제는 어떤 기분일까?”

“행복할 것 같아요.”

“왜?”

“무서운 모습도 아니고 예쁜 얼굴도 보이고 꼭 안아주니까요.”

“메두사 엄마 보니까, 며칠 전에 엄마가 유치원 수업 참견했을 때 생각난다. 엄마가 긴 머리칼로 제법 참견을 했잖아. 그다음 날 엄마 없이 혼자 유치원 수업할 때 꽤 표정이 좋았던 거 알아? 지금 이리제의 모습처럼 말이야.”

“엄마가 응원해 줄 때는 더 좋았어요.”

아이의 말에 마음이 녹는다. 짧게 자른 메두사 엄마의 모습에 개운함도 느껴지니 나도 슬슬 긴 머리칼을 자를 준비를 해야겠다. 이왕이면 시원하게!


일곱 살을 준비하는 아이

아이에게 엄마의 말이 곧이 받아들여지지 않는 일이 종종 생겼다. 약국, 마트, 문방구 등에서 사고 싶은 것들을 매번 사지 못할 때가 특히 그렇다. 아이는 사지 못하는 타당한 이유를 더 필요로 했다. 언제는 사주고 언제는 안 사주는 상황이 아이는 이해가 되지 않는 듯했다. 아이의 기분을 충분히 알기에 신랑과 상의한 끝에 아이에게 용돈을 주기로 했다. 매 달 1일에 만 원씩.

"이제 매 달 1일에 우성이만의 돈을 주려고 해. 이 돈으로 우성이는 사고 싶은 것을 살 수 있어. 약국, 마트, 문방구에서 원하는 것을 살 수 있어. 엄마에게 물어보지 않고 말이야. 어때?"

"다 사도 돼요?"

"그럼! 돈이 있다면."

들뜬 아이는 할아버지께서 선물해주신 지갑에 첫 용돈을 넣었다.

어느 날 빵을 사러 가는 길에 아이가 옆에 보이는 문방구에 들어가 보고 싶다고 했다. 마침 용돈을 쓰는 것도 해보기를 원했던 터라 흔쾌히 아이를 따라갔다.

아이가 호기롭게 문방구로 들어가더니 냉큼 어림잡아 문방구에서 제일 큰 로봇 조립 박스를 집어 들었다.

"이거 살래요!”

"그래 좋아. 얼마지?"

오 만원이었다.

"만원 밖에 없는데?"

"음...... 그럼 다른 것 골라볼게요."

이후, 아이는 문방구 사장님께 가격을 물어가며 만 원으로 살 수 있는 물건들을 찾기 시작했다. 문방구 구석구석을 돌던 아이가 입구 쪽에 진열되어 있는 자잘한 상품들 앞까지 오게 되었다. 아이는 그곳에서 한참 동안 구경을 하더니 물건을 하나 골랐다. 오천 원짜리 색점토였다.

생각했던 것보다 문방구 물건들이 값이 나가기에 용돈을 더 주어야 할까 고민하다 아이에게 물었다.

“원래 사고 싶었던 것은 로봇 조립하는 것이었는데 살 수 없었잖아. 왜 못 샀지?”

“돈이 부족했었요.”

“아쉽지 않았어?”

“괜찮아요. 돈을 더 모아서 사면돼요.”

첫 용돈으로 좋은 경험을 했다. 아이에게 주도권을 넘기니 원하는 물건을 사지 못했을 때의 불만 대신 기다림을 알게 된 날이었다. 아이의 용돈의 조금씩 모이고 있다. 그리고 아이는 그 용돈으로 엄마의 생일 선물을 준비하고 정말 원하는 것을 사기 위해 아끼기도 한다. 진작 아이를 믿어볼 걸 그랬다.


얼마 전, 아이 양치를 봐주다가 흔들리는 아랫니 하나를 발견했다. 처음 흔들리는 유치였다. 매일 비슷한 모습이라 아이가 자라고 있는 일이 실감 나지 않았는데 흔들리는 유치를 보니 아이의 성장이 와 닿았다. 아이에게 나타난 지난 불만들도, 흔들리는 유치도 일곱 살을 준비하는 아이의 모습 같았다. 이제 짧아진 머리칼로 아이의 일곱 살을 맞이할 준비를 해야 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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