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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책

by 소래토드



로이는 켄트의 손에서 책을 받아 들었다. 그리고 배 한편으로 가서 쭈그리고 앉아 무릎 위에 책을 올려놓았다. 첫 장을 펼쳤다. 빼곡하게 무언가가 적혀있었다. 로이는 눈에 보이는 글자들을 하나씩 자신의 손가락으로 손바닥 위에 따라 그려가며 자신에게 익숙한 방식으로 글자를 감각해 나갔다. 한참을 그렇게 시각을 촉각으로 연결해 가며, 로이는 정말로 자신이 알고 있는 첫째 하늘의 말로 책이 쓰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때부터 로이는 눈으로 보고 읽는 것에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그 오래된 책의 첫 장은, 어느 아버지에 관한 이야기로 시작되고 있었다. 어쩌면 살아온 시간 동안 단 한 번도 내뱉지 못했을 한 단어를 로이는 눈으로 보았고, 소리내 보았다.


"아버지..."





로이에게는 자신의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거의 남아있지 않았다. 그 마저도 어머니에게서 듣던 이야기에 겹칠 해져 무엇이 아버지에 관한 실제이고 무엇이 상상인지 구분이 되지 않았다. 그의 어머니는 로이가 열세 살이 되던 해에 자신의 병을 이기지 못하고 사라졌다. 첫째 하늘에서의 죽음은 이와 같은 사라짐이었다. 어떠한 영향이나 흔적이 남아있지 않을 만큼 미세하게 분해되어 공중에 흩어져 버리는 것. 때문에 로이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한 조각도 간직하지 못했다. 그러나 로이는 그것을 고통으로 인식할 여유도 갖지 못했다. 로이는 홀로 남겨진 시간을 어떻게든 잘 견뎌야 했고, 그 시간을 통해 로이는 아버지와 어머니 둘 중 누구와도 닮지 않게 되었다.





늘 그의 안에 도사리고 있던 어느 막연한 감정이 '아버지'라는 단어를 말하는 순간 구체화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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