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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자매 Jan 10. 2021

새로운 입주민을 소개합니다

폭우, 침수, 그리고 고양이

지난여름, 축사가 침수되어 그 안에 있던 소들이 수영해서 축사 옥상으로 대피했다는 뉴스가 나오던, 정말 말도 안 되는 폭우가 쏟아졌던 밤이었다. 우리는 2층 통창으로 퍼붓는 비를 감상하고 있었다(같은 시간 지하에서 ‘그 일’이 일어나고 있는 줄은 상상도 못 한 채).


그때, 지하방 최측근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다급한 목소리였다.

- 고양이가 죽을 것 같아(비고 : 고양이 안 키움)

- 무슨 고양이???


들어보니 상황은 이랬다. 최측근이 운영하는 식당 근처에서 한 학생이 아기 고양이를 안고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다고 한다. 폭우에 몸이 반쯤 물에 잠겨 죽어가는 길냥이를 발견해 일단 구하긴 했는데, 데려갈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보다 못한 최측근이 자기가 고양이를 닦아 주겠다고 가게로 데려왔다고 했다. 화상통화로 본 고양이는 손바닥만 한 크기의 새하얀 고양이였다. 수건으로 감싸진 채, 축 늘어져 움직이지 않았다.

- 곧 죽을 것 같아. 어쩌지?!

- 일단 우리 집으로 데려오자!

나는 동생의 과감한 말에 흠칫 놀라 쳐다보았다. 단호한 말투와는 달리, 동생의 눈빛은 흔들리고 있었다.


여기서 잠시 우리의 고양이 사랑을 소개하자면, 둘의 단톡방은 온통 고양이 사진들로 도배되어 있다. 인스타에서 발견한 귀여운 고양이 영상을 분주하게 서로에게 퍼 나르면서도, 고양이는 절대 키우지 말자고 합의한 상태였다. 초등학교 때 치와와를 한 마리 키우다가 잃어버렸는데, 그 상실감이 너무도 커서 다시 동물을 키울 엄두가 나지 않는 것이 가장 큰 이유였다. 우리가 일 년에 한두 번씩 한 달 이상의 긴 여행을 가는 것 역시 걸림돌이었다. 개인적으로는 사료비, 병원비 등 돈 걱정이 컸다. 이러한 이유들로 우리는 인스타에서 남의 집 고양이를 구경하는 정도로 만족하고 있었다.


고양이를 키우지 말아야 하는 이유는 넘쳐났지만, 휴대폰 너머로 죽어가는 아기 고양이를 본 순간 그 많던 합리적 이유들이 무력해지는 느낌이었다. 무작정 최측근에게 집으로 데려오라고 하고, 집 근처 야간 동물병원에 전화를 걸었다. 길냥이를 구조했는데 진료비가 얼마 정도인지 물었더니, 검사비만 30만 원이 넘는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내 건강진단비도 18만 원이었는데 고양이가 30만 원이라니, 기가 막혔다(심지어 올해는 코로나로 수입이 줄어 그마저도 건너뛴 상태였는데 말이다). 죽어가는 고양이를 그대로 놔둘 수도, 그렇다고 덜컥 그 큰돈을 쓸 수도 없었다. 우물쭈물 하고 있는데 최측근이 집에 도착했다는 연락을 받았다. 최측근이 사는 지하방으로 쏜살같이 내려가면서도 마음은 복잡했다.


- 고양이는?!

큰 소리로 고양이를 찾으며 지하 문을 열어젖힌 순간, 고양이보다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이 있었다. 지하 거실 전체가 물바다였다. 집이 족욕탕도 아닌데 물이 발목 높이까지 찰랑거렸다. 최근에 최측근이 고심해서 샀던 가구들과 카펫은 물에 잠긴 지 오래였다. 우리가 2층에서 넋 놓고 폭우를 구경하던 그 시간, 지하는 물에 잠기고 있었던 것이다.


너무도 황망하여 거의 사고가 멈춘 상태였지만, 그 와중에도 고양이 상태는 확인해야 했다. 고양이는 휴대폰으로 본 것보다 더 작았고, 잔뜩 웅크린 채 만져도 거의 반응하지 않았다. 고양이는 병원에 데려가야 했고, 물난리가 난 집도 수습해야 했다. 결국 동생이 고양이를 동물병원에 데려가고, 나와 최측근이 집을 수습하기로 했다.


얼핏 본 시계는 밤 12시를 넘기고 있었다. 양말을 벗고, 바지를 무릎까지 걷어 올렸다. 최측근이 바가지로 물을 퍼내면, 나는 기계처럼 그 물을 받아 싱크대에 버렸다. 퍼내고, 버리기를 수십 번 반복하면서도 둘 다 거의 말을 하지 않았다. 뭔가를 말하기에는 이 모든 상황이 너무 현실감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물난리가 난 지하. 지금 봐도 막막하다.

마른 수건으로 바닥을 닦기까지 꼬박 두 시간이 걸렸다. 시계는 새벽 두 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너덜거리는 정신과 체력을 이끌고 2층으로 올라와 한숨 돌리려 하자 동생이 고양이를 안고 집에 도착했다. 의사 선생님 말로는 저체온증으로 죽을 뻔했지만 응급처치로 지금은 괜찮아졌다고 했다. 간단한 외관 검사만 진행했는데 크게 이상은 없어 보이며, 나이는 3개월 정도로 추정된다고 했다. 한 가지 놀라운 사실은 3개월 정도 되면 보통 엄마 고양이로부터 독립하기 때문에 엄마를 잃어버린 건 아닐 것이라는 점이었다(나는 서른 살에도 엄마가 싸준 도시락을 들고 대학원을 다녔는데 말이다).


고양이를 라탄 바구니에 넣고 수건을 덮어주고, 드라이기로 젖은 털을 말려주었다. 어디선가 고양이는 드라이기 소리를 질색한다고 들었는데, 기력이 없어서인지 시끄러운 드라이기 소리에도 움직이지 않았다. 병원에서 사 온 참치 사료도 넣어주었는데 역시 먹지 않았다. 미동도 않는 고양이가 걱정이 되어 병원에 전화해 의사 선생님께 고양이 상태를 문의하는 동안 고양이가 처음으로 꿈틀 하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때 처음으로 고양이와 눈이 마주쳤는데 그 까맣고 동그란 눈에 어찌나 경계심이 가득한지. 혼자 후들거리며 바구니에서 나와 처음 한 일도 서랍장 밑 구석으로 숨어 들어가는 것이었다. 우리 손이 쉽사리 닿지 않는 곳에 자리를 잡으니 그제야 안심이 되는 듯 사료를 먹기 시작했다. 찹찹 거리는 소리가 경쾌했다.


- 그나저나 고양이 이름은 뭘로 하지?

- 드라이(Dry) 어때. 물에 젖어서 죽을 뻔했으니까 잘 말리고 살라고 드라이.

- 오, 좋다. 그럼 성은 드, 이름은 라이로 하자. 라이라고 부르면 되겠다.

그렇게 일사천리로 고양이의 이름이 결정되었다. 우리는 거실에 커다란 플라스틱 상자를 놓고 보드라운 담요를 깔아준 후 조심스럽게 '라이'를 넣었다. 안도감이 들면서 그제야 잠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무심한 시계는 새벽 네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그 날 라이는 밤새 신생아처럼 애처롭게 울었고, 처음 엄마가 된 우리는 하염없이 서툴렀다. 침대에 몸을 뉘이면 라이가 울어서, 우리는 30분 간격으로 라이를 돌봤다가 침대로 들어가기를 반복했다. 말도 안 되는 일들이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한 오늘 하루는 결국 동이 틀 때까지 쉽사리 우리를 놓아주지 않았다. 나는 라이의 애옹애옹 소리를 들으면서 내일은 반드시 입양을 보내겠다고 다짐했다.


이것이 우리가 맞은 첫 폭우였다.


책장 틈으로 숨은 이 녀석이 바로 '라이'이다. 눈빛이 거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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