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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자매 May 07. 2019

단독주택 활용법

날카롭던 첫 꽃장사의 추억


집을 찾아오는 단골손님들이 늘어나자 우리는 이들과 함께 뭔가 생산적인 일을 해보고 싶어졌다. 때마침 친한 친구가 꽃을 배우고 있어 같이 ‘1일 꽃장사’를 해보기로 했다. 우리의 구상은 밸런타인데이에 이태원 역에서 꽃다발을 파는 것이었다. 꽃다발을 만들기 위해서는 큰 작업대가 필요했는데 거실에 놓아둔 6인용 테이블이 그 역할을 했다(6인용 테이블은 모임을 하든, 작업을 하든 신의 한 수였다).


당시 친구는 8년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었고, 프리랜서인 나도 일이 없던 시절이었다. ‘미래 먹거리 창출’이 시급했기에 꽃장사 프로젝트는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하이리스크 하이리턴’이라고 하지만 나는 투자 성향으로 치면 ‘원금보장 추구형(다른 말로 쫄보)였으므로 인당 투자금은 5만 원으로 한정했다(그래도 내심 총 10만 원을 투자해 40만 원을 벌겠다고 생각했다).


장사는 하루였지만, 준비는 꼬박 며칠이 걸렸다.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양재 꽃시장에서 꽃을 사는 일이었다. 좋은 꽃을 사려면 새벽 세시에 가야 한다던데 우리는 무슨 배짱인지 맥모닝 세트까지 먹고 정오가 다 되어 방문했다.


우울한 감정이 든다면 꽃시장을 방문하는 걸 추천한다


난 꽃에 대해서는 1도 몰랐기 때문에 충실한 짐꾼 역할을 담당했다. 화보를 보면 꽃을 든 여자들이 참 예뻤던 것 같은데 꽃이 많아지니 무게가 상당했다. 상당한 정도를 넘어 나무기둥을 이고 오는 느낌이었다. 그러다 보니 두 팔에 안기보다는 자연스레 어깨로 짊어지는 형태가 되었다. 로망이 부서지는 순간이었다. 


힘들게 이고 온(?) 꽃들이었지만 모아놓으니 참 예뻤다


‘꽃집을 하려면 차를 사야겠다’는 허망한 결론을 내면서 꽃을 대중교통으로 집까지 운반하는 데 성공했다. 이제 이태원에 사람이 몰리는 시간대까지 약 네 시간. 이제 시간과의 싸움이었다. 웃으며 시작했지만 생각보다 고된 노동에 웃음기는 사라졌다.


그렇게 만들어진 생화 꽃다발, 총 스무 다발을 만들었다.
가격은 이만 원이었지만 원가도 거의 이만 원이었다.
이태원 초입에 자리를 잡았다. 생애 첫 노점이었다.


노점이라 자리싸움이 치열할 것으로 예상해서 나름 ‘환불 메이크업’도 하고 나갔는데 아무도 없어 무혈입성했다. 제일 좋은 이태원 초입에 판을 깔고, 촉촉한 눈으로 손님들을 기다리기 시작했다.


여기서 잠시 배경 설명이 필요한데 당시는 한 겨울, 기온은 영하 13도였다. 이태원은 매일 사람이 미어터지는 곳인 줄 알았더니 그 날만은 한가했다. 꽃은 아직 못 팔았지만 오들오들 떨어가며 꽃 파는 우리가 처량해 보였는지 따뜻한 음료수를 시크하게 주고 간 외국인도 있었다(알고 보니 이 외국인은 인스타에서 꽤 유명한 플로리스트였다).


칼바람에 생화는 눈에 띄게 싱싱함을 잃어갔다. 조급해진 우리는 전략을 바꿔 돌아가면서 손님 행세를 하기 시작했다. 꽃다발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이 있으면 밀착 영업도 해보고, 보든 말든 난 상관없다는 듯 시크한 사장 행세도했다.


삼십 분 정도 지났을까. 축구도 내가 안 볼 때 골이 들어가더니, 배고파서 빵 사러 갔다 온 사이에 첫 꽃다발이 팔렸다. 그리고 그 이후로 두 시간 동안 총 다섯 개의 꽃다발을 팔았다.


총수익 10만 5천 원

- 들어간 비용 10만 원(심지어 교통비 제외)

=순이익 5천 원(심지어 이걸 두 사람이 나눠야 함)


쥐꼬리만 한 수익이었다. 우리는 배가 고팠고 다시 못다 판 꽃들을 상자에 담아오면서 만두를 사 먹었다. 만두는 4천 원이었다.


이것이 우리의 첫 꽃장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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