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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자매 May 14. 2019

단독주택, 누구와 살 것인가

원대한 꿈의 시작


초등학교 6학년 이후로 글쓰기는 처음이다.

뭔가를 시작하면 잘해야만 한다는 쓸데없는 강박감 때문에 소재가 넘치다 못해 줄줄 새는데도 글 쓸 엄두를 내지 못했다. 그러다 같은 상황에 있던 동생이 먼저 브런치를 시작했고, 따라쟁이인 나도 '딱 세 줄만 쓰자'라는 생각으로 브런치에 입성했다. 그렇게 끄적댄 첫 번째 글이 말도 안 되게 다음 뉴스 메인에 떴다. 세상에.


조회수가 1,000을 돌파했습니다.

조회수가 2,000을 돌파했습니다.

... 조회수가 30,000을 돌파했습니다...

이런 식이었다. 무슨 비트코인도 아니고.


그랬더니 '대충이라도 세 줄만 쓰자'던 대범한 나는 숨어버리고 '잘해야 돼'를 외치는 강박적인 나가 나타났다. 그래서 다시 아무것도 쓰지 못했다.


하지만 다행히 조회수 폭등은 삼일천하로 끝났고, 다시 '대범한 나'가 돌아와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다.

오늘의 주제는 '단독주택, 누구와 살 것인가'이다. 이쯤에서 정자매 단독주택의 구조를 살펴보면,

옥상(작은 옥탑방이 있음)

2층(14.5평)

1층(14.5평)

지하(21평)

그리고 작은 마당으로 이루어져 있다.


원래 단독주택을 구하던 이유도 언젠가 동생과 층을 나눠 살기 위해서였는데 당장은 그럴 필요성이 없었다. 우리는 프라이버시와 옥상을 사용하기 위해 2층에 살기로 했다. 그래서 1층과 지하가 남게 되었다. '이 공간을 어떻게 하면 좋을까' 즐거운 고민이 시작되었다. 동생이 제안했다.


언니, 1층에 우리 독서모임을 오라고 하면 어때?


여기서 말하는 독서모임은 N독서모임을 말한다(실명은 임대차 계약서에 도장 찍은 후에ㅎㅎ). 동생은 6년째, 나도 잠시 쉬고 있지만 4년을 꼬박 다닌 모임이다. 고전을 함께 읽고 이야기를 나누는 진짜 책모임이다.  


'책은 내 마음속의 언 바다를 깨는 도끼와도 같다'던 말은 옳았다. 독서모임에 처음 쭈뼛거리고 들어갔을 때 나는 삶에 정답이 있다고 믿었다. '좋은 직장, 좋은 남편, 좋은 아파트'가 좋은 삶의 콤보메뉴라고 생각했다. 당시 '여기가 정답'이라고 모두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가고 있었지만 정작 그 속은 불만족스러웠다. 왜인지 영문을 알 수 없었다.


그러다 독서모임을 통해 접한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은 결혼관을, '동물농장'과 '달과 6펜스'는 직장관을, '월든'은 내 경제관에 미세하게 가있던 균열을 도끼로 찍듯 파고들었고 나는 거기에 완전히 항복했다. 결국 독서모임을 다니고 일 년쯤 지났을 때 회사를 그만두었고, 비혼주의를 선언했으며, '좋아하는 일하면서 조금 벌고 조금 쓰는' 안빈낙도의 삶으로 완전히 돌아섰다.


이런 이유로 N독서모임은 나에게 특별한 곳이고, 동생에게도 마찬가지이다. N독서모임은 우리 같은 단골 회원들이 많았지만 그래도 높은 임대료는 주인장에게 부담이었다. 어차피 우리도 일주일에 한 번씩 가는 곳이므로 만약 독서모임이 1층에 들어와 주면 우리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물론 독서모임에게는 파격적인 임대료를 제시할 생각이었다.


동생이 슬쩍 독서모임 주인장에게 이 제안을 했더니 당일 밤에 이런 문자가 도착했다.

"마음 감사히 잘 받겠습니다. 그리고 집도 감사히 잘 받겠습니다. 늘 방범순찰도 잘 돌겠습니다.

기대가 되네요. 차차. 어떤 새로운 일들이 벌어질지 -세입자 드림"

그리고 한 통 더 도착했다.

"내일 가서 정 씨로 성 바꾸고 연락드리겠습니다. 누님들 제가 잘 모시겠습니다."


집 구조를 결정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이 공간에 누가 살 것인가?'였다.


이렇게 N독서모임이 입주에 긍정적인 답변을 해주니(리모델링을 통해 독서모임을 할만한 공간이 제대로 나와야 최종 결정되겠지만) 우리 집 공간을 활용할 수 있는 새로운 방향이 열렸다. 단순한 세입자가 아니라 우리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같이 살 수 있는 기회가 생긴 것이다.


더불어 N독서모임은 저녁에만 운영하므로, 낮에만 운영하는 B심리상담소와 같이 공간을 공유했으면 한다는 의사를 표시해왔고 우리는 흔쾌히 수락했다. 


만약 리모델링이 잘 끝나 N독서모임과 B심리상담소가 들어온다면, 그리고 여기에 더해 우리 집에서 3년째 진행하고 있는 '마음 챙김 모임'도 다시 열린다면 우리 집은 '어른들의 심리 놀이터'가 된다(참고로 B심리상담소와 마음 챙김 모임은 각각 프로이트와 부처의 말씀에 따라 상담을 진행한다는 차이가 있다).


N독서모임 주인장이든, B심리상담소이든, 마음 챙김 모임이든 모두 정자매가 몇 년간 지켜본 너무 애정 하는 사람들이다. 이렇게 우리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위아래 같은 공간을 공유하는 상상만으로도 즐거워진다.


머릿속에서 나는 이미 이들과 함께 요리를 하고, 서늘한 여름밤 옥상에 둘러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함께 영화를 보고, 같이 삶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이 상상이 현실이 되기까지

이제 두 달도 채 남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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