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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ri Sep 21. 2022

한 여름밤의 쇼팽

비 온 뒤 맑게 갠 그날의 쇼팽과 드비쉬, 그리고 조성진.


 올해 8월은 유달리 종잡을 수 없는 날씨였다. 비가 왔다, 맑아졌다, 추웠다가, 더웠다가. 종잡을 수 없는 날씨로 인해 내 기분도 같이 널뛰었다. 8월의 가장 큰 이벤트인 조성진 공연으로 인해 컨디션 관리에 만전을 기했다. 물론 내가 공연하는 것은 아니지만, 야외 공연은 나의 컨디션과 날씨에 가장 큰 영향을 받기에 주말에 잡혀있던 모든 약속을 취소하고 컨디션 관리를 시작했다. 하지만 이런 내 준비가 무색하게도 공연 예정일 이틀 전부터 비가 줄기차게 내렸다. 마음이 한없이 무거워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기다리던 공연이었으나 음악을 듣는 설레는 마음보다 날씨에 대한 걱정이 앞서는 마음 탓에 공연 당일까지도 그리 유쾌한 기분은 아니었다.

세상 날씨 좋았던 노천극장. 쇼팽을 즐기던 수많은 관중들.

 일하는 사무실에서도 창 밖을 몇 번이나 쳐다봤을까. 창문을 뚫어지게 쳐다보다 조기 퇴근을 하고 앉아가는 지하철 안에서 다시 한번 하늘을 바라보았는데 운명같이 하늘이 개어있었다. 창 밖에 스치는 티 없이 푸르른 하늘에 햇빛이 내리쬐는 광경을 보며 가슴 벅차기 시작했다. 살다 보면 운명 같은 순간들이 찾아오는데 이 날의 공연은 그런 운명 같은 순간들의 연속이었다. 거짓말같이 맑게 갠 푸른 하늘, 공연장으로 가는 가벼운 발걸음, 공연을 기대하는 설레는 마음,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공연을 보러 가는 길. 이 모든 것들이 완벽하게 맞아떨어져 버렸다. 이 완벽한 4박자로 내 마음은 이내 풍족해지고, 온몸에 감성 세포들이 모두 깨어나 그 어느 때보다도 공연을 300% 즐길 수 있는 전투태세를 갖출 수 있게 된 것이다.


연주자가 피아노에 손을 올리는 순간, 모두가 침묵하는 순간의 집중력.


 이번 공연은 가족과 가장 친한 친구가 함께 즐긴 개인적으로는 굉장히 뜻깊은 공연이었다. 가족들과 함께 하기 위해 티켓팅을 하러 반차 아닌 반차를 쓰고 PC방으로 향하여 표를 구했고, (기적처럼 한 번에 표를 구했고) 친한 친구도  티켓팅을 도와주다 본인 티켓도 함께 결제를 하여 나의 취미를 함께 즐겨주었다. 모든 사람들이 광장에 옹기종기 모여 클래식을 즐기는 포럼에 가장 걸맞은 동행자들이었다. 항상 혼자 가던 클래식 공연장을,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과 공연장으로 향하게 되어 더더욱 잊지 못할 순간이 되었던  같다. 이번 오케스트라 협연에서는 지휘자가 없었는데  장면이 굉장히 신선하였다. 연주자가 오케스트라의 음들에 집중하여 리드하는 모습이 더욱 몰입감을 높였고 자유로워 보였다. 쇼팽 피아노 협주곡 1,2번을  번에 모두 듣는 진귀한 경험을 노천극장에서 듣다니.  얼마나 꿈같은 시간이었던가. 수없이 들었던 쇼팽 피아노 협주곡 1번인데도 묘하게 달랐다. 물론 야외라 사운드가 실내보다  웅장하게 다가오진 않았지만, 그를 뛰어넘는 감동이 있었다.  감동은 바로 시공간의 결합으로 만들어낸 것이라 생각한다. 모든 음악엔 나의 감정과 추억이 깃든다. 그날의 쇼팽도 마찬가지였다. 유튜브로 수없이 보고, 듣던 음악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날의 행복했던  감정과 완벽한 날씨가 더해져 연주자와 나만이 공유하는 추억이 생기게  것이다.  ,   더더욱 집중해서 듣게 되었고 쇼팽 피아노 협주곡 2 클라이맥스에 이르러 조성진이 마지막 음을 피아노에서  순간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게 되었다. 수많은 벌레들과 싸운 오케스트라 단원들과 조성진에 리스펙 하는 마음을 담아,  순간이 끝남이 아쉬워 못내 보내지 못하는 마음을 담아 손바닥이 새빨개지도록 박수를 쳤다. 항상  공연보다 더욱 기다리게 되는 앙코르에서 조성진이 선택한 곡이 무엇일지 발을 동동 구르며 기다리던 찰나, 드뷔시의 달빛이 흘러나왔다..!


조성진과 너무나 잘 어울리는 드뷔시.

 모두가 숨죽이던 그 찰나, 드뷔시 달빛의 첫 음이 노천극장에 퍼졌을 때 그 황홀함을 잊지 못한다. 관중들도 모두 나와 같은 마음이었나 보다. 찰나의 탄식과 탄성이 여기저기서 짧게 퍼졌고 나는 눈을 감고 달빛을 즐겼다. 어두운 밤, 선선한 날씨에 노천극장에 울려 퍼졌던 조성진의 달빛은 최고의 앙코르였다. 손발 오그라들어 쓰지 못했던 이 표현은 이 순간을 위해 써야만 하는 말이었다.

이 날씨, 이 습도, 이 노래 모두 완벽했다.

어떤 공연이 되었건,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꼭 공연장으로 가 온몸으로 감성이 충만해지는 경험을 해볼 것을 진심으로 권유하고 싶다. 그 황홀함은 내 일상을 풍요롭게 채워주는 감정들로 더욱 발전시켜주며 내 안의 예술성을 일깨워 조금 더 풍성한 감정을 가진 사람으로 거듭나게 해 준다. 더불어 직장인으로서 더더욱 돈을 벌어야만 하는 이유를 만들어주기도 하니, 꼭 한 번 이런 감정을 모두 느껴보았으면. 난 22년 8월 마지막 날의 쇼팽과 드뷔시를 살아가며 절대 잊지 못할 것이다. 행복했던 한 여름밤의 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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