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ori Aug 09. 2020

이 폴로네즈는 상징이 되어야 해

나에게 있어 폴로네즈는, "도전"의 상징

20.07.31

쇼팽 폴로네즈 op.53 영웅 도전기

시작이 반이다. 도전의 시작.


“Polonaise for piano No. 6 in A flat major ("Héroique"), Op. 53, CT. 155”

드디어! 언제부터 시작할까 고민만 하던 쇼팽의 폴로네이즈 op.53 영웅을 치기로 결심하고 행동에 옮긴 날이다. 7월의 마지막, 비가 엄청 오던 그날! 드디어 영웅 레슨을 나간 역사적인 순간! 너무 피곤한데도 불구하고 어떻게 서든 피아노 레슨을 받겠다고 무리해서 간 날이었다. 피아노 학원 쌤한테 계속 내 인생의 버킷 리스트는 쇼팽의 영웅을 완곡하는 것이다 라고 만난 날부터 되지도 않는 패기를 부렸었는데, 이제서야, 3개월만에 선생님이 응답하셨다. 내 악보집 맨 뒤에 폴로네즈 악보를 뽑아만 놓고 고이 모셔두고 있었는데.. 이 얼마나 영광스러운 순간인가. 선생님이 수락한 이유는 아마도 내가 나름 성실하게 피아노에 임하고, 내가 조성진을 좋아하는 진정성에 감탄하고(?), 이제서야 피아노 몇 곡을 치며 드디어 음을 독립적으로 칠 수 있어서이지 않을까.


피아노 학원을 등록한 날은 선거날인 20년 4월 15일이었다. 중간에 잠깐 연기한 날짜를 제외하면 딱 3개월 정도 나갔다. 일주일에 2~3번, 갈 때마다 3시간씩 피아노를 쳤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봐도 피아노 학원을 등록한 것은 정말 최고의 선택이었다. 피아노를 치는 시간만큼은 잡념이 사라지고, 악보와 내 손가락에만 온전히 집중할 수 있기 때문에 연습하는 시간이 좋다. 그보다 더 피아노가 좋은 근본적인 이유는, 내가 연습한 만큼 실력이 느는 것이 보여서다. 레슨 받아 연습을 하고 악보와의 사투 끝에 건반을 두드리면, 두드린 만큼 결과가 나온다. 모든 악기들이 그렇겠지만 (비단 악기뿐이겠는가) 피아노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Input과 output이 동일하다. 건반을 하나하나 제대로 눌러야 음이 살아나고 모든 음들이 조화로워지는 게 너무 매력적이다. 피아노 건반을 누르면 내가 생각한 음이 나오듯, 내 인생도 내가 생각한 대로 답이 나오면 참 좋으련만.


이왕 하는 덕질, 할 거면 제대로.


내가 폴로네즈 '영웅'을 인생곡이라 칭하는 이유는 처음 느껴본 감정 때문이었다. 누군가 피아노를 치는 영상을 보며 아름답다는 생각을, 그리고 전율이 느껴진다는 그 감정을 처음 맛보았다. 조성진이 쇼팽 콩쿠르 second stage에서 쳤던 영웅은 말그대로 나를 매료시켰다. 이렇게 웅장하면서도 아름다운 음악이 있었다니!라고 생각이 들 정도로 충격적이었고, 심장을 뛰게하였다. 그래서 '영웅'은 내 인생곡이 되었고, 유튜브 영상을 본 이후로 나는 조성진과 쇼팽에 대해서 미친 듯이 파기 시작했다.


어떤 분야던지 아는 만큼 보인다고, 나는 덕질을 할 때 철저하게 '앎'을 행하는 편이다. 그래서 서점에 달려가서 산 첫 번째 책은 리스트가 쓴 "내 친구 쇼팽"이다. 책을 읽으며 쇼팽에 대해서 (그리고 아주 조금의 리스트에 대해서도) 간접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시간이었는데 폴로네즈는 쇼팽과 떼어놓을 수 없는 부분이다. 쇼팽에 있어서 폴로네즈는 본인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한 필사적인 노력이었다. 그는 여러 나라를 떠돌았지만 폴란드인의 정신만큼은 잃고 싶어 하지 않아 했다. 그랬던 이유에서 일까? 쇼팽은 폴란드인의 정서를 고스란히 계승시키기 위해 폴란드의 민속적인 리듬과 악풍을 그의 음악색에 녹이고자 부단히 노력했고, 그것이 폴로네즈이다. 조성진이 한 인터뷰에서도 폴로네이즈 영웅을 칠 때 정말 "폴란드인이 된 것 같이 친다."라고 답 했을 만큼 폴로네즈를 이해하기 위해선, 폴로네즈에 담긴 정신과 역사를 알아야 하는 것이다. 폴로네즈에 담긴 그의 의도와 조성진이 연주할 때 마인드를 알았으니, 나도 꼭! 폴란드인처럼, 처음 느꼈던 그 특별함을 조금이라도 담아 진심으로 폴로네즈를 쳐야지!라고 굳게 다짐했다.


(P.S. 조쇼팽의 쇼팽 콩쿠르 실황 앨범과 신규앨범인 방랑자, 두 장을 샀는데 받자마자 너무 행복해서 피아노 학원까지 들고와버렸다! 방랑자 초판에는 무려 조성진 포토엽서도 있다고 해서 기뻐서 기념으로 한 컷..)


쇼팽이 폴로네즈를 썼던 자필 원본 악보



Polonaise for piano No. 6 in A flat major ("Héroique"), Op. 53, CT. 155

나의 인생곡인 폴로네즈 Op.53 내림가장조 (Op.53)는 프레데리크 쇼팽이 1842년에 작곡한 피아노 폴로네즈이다. 쇼팽은 본인의 음악에 묘사적인 이름을 붙이는 것을 꺼려했다고 하나, 그의 오랜 연인이자 동료였던 조르주 상드의 서신에서 별칭이 유래된다. 프랑스에서 1848년 혁명이 시작되었을 때 여자는 남자들보다 권리가 적었고, 쇼팽의 연인이었던 상드는 진보를 위해 필연적인 것이라고 믿었다. 이 시기 즈음, 상드는 노동조합 내에서 신문을 발간하였다. 이는 그녀가 더욱더 정치적인 에세이를 발간하고 강력한 신념을 표출하게끔 하였다. 예를 들어 그녀는 "프롤레티아를 죽여 혁명을 시작한 어떤 공화국도 나는 믿지 못 한다."라고 했다. 쇼팽의 폴로네즈를 듣자마자 상드는 그들의 사적인 서신 속에 쇼팽에게 전했던 깊은 감동을 남겼다. 그들의 편지 중에서 그녀는 열렬하게 다음과 같이 적었다.


"영감! 힘! 활기! 프랑스혁명에서 보여지는 영혼같이 의심의 여지가 없어. 지금부터 이 폴로네즈는 상징이 되어야 해, 영웅적인 상징"


이 서신이 쇼팽 폴로네즈가 "영웅"이라는 별칭을 얻게 된 가장 큰 이유이다.


또한, 리스트는 이 곡을 듣고 이렇게 말했다. “쇼팽의 폴로네즈를 들으면 운명이 가져다주는 온갖 부정한 것에 용감하고 대담하게 대항하는 확고한 발자국 소리를 듣는 것 같다.” 일설에 의하면 쇼팽이 막 완성한 이곡을 치고 있을 때 그는 갑자기 눈 앞에 투구를 쓰고 전투복을 입은 고대 폴란드 전사들의 행렬이 전진해오는 환각에 빠져 공포에 질린 나머지 방에서 뛰어나갔다고 한다.


폴로네즈 영웅을 친 다양한 피아노 아티스트들이 있지만, 단연 조성진이 연주한 폴로네즈가 압도적이라고 생각한다. 비단 내가 조성진을 좋아해서가 아니라, 실제로 그렇다.


1. Arthur Rubinstein - Chopin Polonaise in A flat Major, Op 53 - "Heroic"  

2. Seong-Jin Cho – Polonaise in A flat major Op. 53 (second stage)

3.  Lang Lang - Chopin Polonaise in A flat Op 53


쇼팽의 정석이라 불리는 루벤스타인의 연주는 정말 교과서와 다름없다. 깔끔하고, 정갈하다. 랑랑의 연주는 그가 가진 힘과 에너지가 느껴져 파워풀하며 스타카토를 많이 살려 역동적이다. 하지만 조성진의 연주는 스타카토를 많이 살리지는 않았으나 맺고 끊음이 정확하고, 강약이 확연히 달라 매우 드라마틱하다. 특히나 중간 부분 서정적인 도입부를 연주할 때 흡입력이 장난 아니다. 콩쿠르를 준비하기 위한 시간이 고통스러웠던 만큼 곡을 이해하고자 했던 노력이 그의 연주에 고스란히 녹아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다. 조성진 하면 떠오르는 대표곡이 영웅이니 만큼, 조성진이 어렸을 때 쳤던 영웅과 지금 치는 영웅도 확연히 다르게 느껴진다. 지금의 조성진이 연주하는 영웅이 더욱 성숙해졌고, 음도 웅장해졌다. 피아니스트들이 어떻게 곡을 해석하고, 치는지도 피아노를 듣고 치는 데 느껴지는 또 다른 묘미이다. 조성진은 곡의 강약을 기가 막히게 잘 살리는 피아니스트이다. 강약을 정말 살리지 못하는 내가 그의 연주를 좋아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영웅 레슨은 무리해서 나가지 않으려고 한다. 내 레슨 시간의 온 시간을 영웅에 쏟지도 않을 예정이다. 사실 지금 영웅을 나가는 건 내 실력에 비해 엄청난 도전이라는 것을 매우 잘 안다. 악보를 보는 데 한 나절이고, 한 마디 한 마디 마스터하는 데 너무나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라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웅을 시작한 이유는 연습을 정-말 많이 해야 할 것 같아서! 딱 한 가지 이유밖에 없다. 지금부터 부지런히 쳐야 내년에 완곡할 수 있을 것 같다. 내 버킷리스트를 조금 성급하게 시작하는 감이 없지 않아 있으나, 달성하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1년 장기 프로젝트로 생각하는 만큼! ( 레슨  5마디 나갔는데, 나가는 속도로 보아 1년도 빠듯하다고 느끼지만..) , 조급히 생각하지 말고 천천히 연습해나갈 예정이다. 21년 8월에는 영웅을 완곡한 내 모습을 영상으로 찍을 수 있겠지? 영웅 도전기를 조금씩 작성해나가며, 인생 버킷리스트를 해낸 진짜 HERO가 되고 싶다. 시작이 반이라고 했다. 영웅이 되어 보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