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ori Aug 09. 2020

손가락 번호를 지키는 것부터가 시작

흑건에서 얻은 교훈을 영웅에 담다

20.08.04

쇼팽 폴로네즈 op.53 영웅 도전기 D+1.

레슨 후, 첫 번째 연습 "쇼팽 에튀드 '흑건'~ing+폴로네즈 시작 5마디 시작"


Chopin Etude Op.10 No.5 in G flat Major

폴로네즈(혹은 폴로네이즈) 영웅을 나가기 전, 약 두 달 전부터 연습하고 있는 곡은 쇼팽 에튀드 Op.10.no.5(내림 사장조), 일명 '흑건'이다. 처음에 피아노 학원을 등록하자마자, 뭣도 모르고 선생님께 들이밀었던 악보는 쇼팽 안단테 스피아나토 Op22 (+화려한 대 폴로네이즈 Eb 메이저) 이다. Grand Polonaise 도입부인 안단테 스피아나토는 '스피아나토 = 거침없이 평탄하다'라는 의미로 굉장히 서정적이고 맑은 곡이다. 왜 스피아나토를 골랐는지 지금 생각해도 의문이나, 어찌저찌 완곡하는 데까진 약 한 달이 걸렸다. 치면서 느낀 점은 지금의 나는 서정적인 곡을 치기엔 아직 숙련도가 매우 낮다고 판단했다. 서정적인 곡에서 살려야하는 시적감성을 살릴 수 없고, 템포가 낮으니 건반을 때리는 맛이 덜해 흥미도 떨어지는 것 같아 다음 곡으로는 템포가 빠른 곡을 치리라 다짐했다. 그래서 잠깐 모차르트 소나타를 치고자 했으나,내가 약간 재미없어 하는 낌새를 보이자 선생님은 쇼팽 에튀드, '흑건'을 권유하였다. 악보를 보고 칠까 말까 굉장히 망설였지만 어차피 못쳐도 go라는 생각으로 레슨을 나가기로 마음 먹었고 지금도 내가 원하는 수준의 연주가 되지 않아 계속 치고 있다. 어렸을 때 피아노 학원을 꽤 오래 다녀 쳐봤을 법도 한데, 난 흑건은 치지 않았다. 유년시절 피아노 치는 것을 싫어했지만 나름 음악적 취향이 있었던 나는 귀에 콕콕 박히는 친숙한 멜로디의 음이 웅장한 모차르트나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를 좋아했었다. 지금도 그런 취향이 곡 선택에 반영되는 것을 보아하니 듣는 귀는 그때나 지금이나 별반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유년시절 쳤던 쇼팽 중에 유일하게 기억나는 것은 녹턴 정도인데, 왜 그 때의 나는 쇼팽을 잘 치지 않았을까? 의문이다.


아주 잠시 ‘에튀드'에 대하여 이야기하자면 에튀드는 연습곡이라는 뜻으로 피아노를 연습함에 있어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필수적으로 쳐야 하는 코스이다. 쇼팽의 에튀드가 유독 유명한 이유는 단순 연습곡을 넘은 작품성 때문이다. 기존에 기계적으로 연습해야 했던 단순한 기교 곡을 넘어 음악적인 가치까지 부여한 작품으로 피아노 독주회에서 연주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아름다운 작품들이 많다. 대부분의 곡들은 그와 막역한 사이였던 프란츠 리스트에게 헌정되었다. 내가 치는 Op.10 No.5는 오른손의 정확한 타건을 위해 작곡된 곡이다. 플랫으로 도배되어있어 검은색 건반을 정확하게 쳐야하여 흑건이라는 별명이 붙은 작품이기도 하다. 쇼팽의 에튀드 중에서는 난이도가 낮은 편이나, 원 템포로 치게 되면 굉장히 빨라지기 때문에 어느 정도 숙련이 필요한 곡이다.


선생님이 나에게 흑건 악보를 건네주셨던 첫 레슨 날, 그 날은 나에게도 선생님에게도 충격과 공포였다. 너무 오랜만에 피아노를 치는 마당에 왼손 계이름을 사실 잘 숙지하지 못한 상태에서 (악보와의 전쟁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만) 내림 사장조..무려 플랫이 6개가 붙어 있는 그 악보를 보고 내 눈을 의심하였다. 첫 레슨은 오른손은 꽤나 나갔으나 왼손 8마디 나간 것이 전부였다. 선생님은 아직도 나를 보며 흑건 첫 레슨 때 내가 영원히 악보를 다 못 읽을 것 같아 '차주 레슨 때에는 기필코 레슨 곡을 바꿔야지'라고 말하기로 다짐하고, 다음 레슨시간만을 기다렸다고 했다. 그러나 웬걸, 나는 거의 16마디를 다 계이름을 보는 것은 물론, 오른손-왼손 붙여오기까지 하는 기적을 보여주었는데 선생님은 좋은 의미에서 경악을 금치 못했다. 약간 더하기 빼기도 못하던 친구가 괄호에 있는 수식까지 다 더하고 빼서 온 느낌이랄까. 집념과 노력의 결과였다. 지금의 나는 흑건의 악보는 진-작 다 봤고! 속도를 엄청나게 올리기 위한 그 기반을 열심히 다지고 있다. 연습 양이 많아질수록, 뼈저리게 느끼는 점들이 많다.


1) 손가락 번호를 지키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2) 오른손, 왼손 따로 연습하는 것 또한 매우 중요하다.

3) 손가락을 깊게 누르는 힘이 필요하고, 손목도 함께 써야 한다. (그래서 하농 열심히 연습하는 중)

4) 틀린 부분만 반복적으로 연습하는 노력이 꼭 필요하다.

5) 메트로놈을 켜고 칠 때에는 틀려도 주욱 쳐나가야 한다.

6) 빨리 치기 위해서는 손가락이 미리 다음 음에 가있어야 하는데, 그것은 외워서 해결해야 할 일이다.


어렸을 때 피아노 학원 선생님께 가장 많이 혼났던 것이 바로 1번 때문이었다. 손가락 번호를 잘 지키지 못했고, 내 마음대로 바꿔 치기 일수였다. 전체적으로 음만 맞으면 되지, 왜 지켜야 하지?라고 생각을 굉장히 많이 했는데 어렸을 때 잘못들인 습관 덕에 지금 '생'고생 중이다. 흑건은 손가락 번호 1개라도 잘못 치면 음이 이어지지 않기 때문에 올바른 번호 숙지가 필수이다. 이 곡을 치면서 손가락 번호만 완벽하게 익히는 데에만 무려 한 달이 걸렸고, 나름 혹독한 수행 끝에 다른 곡들을 연습할 때에도 정신 차리고 번호부터 똑바로 보려고 노력한다. 악보에 왜 번호가 있으랴.. 다 이유가 있어서인 것을..! 일할 때도 그렇다. 한 번 엇나가기 시작하면 뒷부분도 엉망징창이 되듯, 실수를 하더라도 다시 바로잡고 나아가야 마지막까지 순탄하게 풀린다. 아마추어라는 표현도 나에게 과분할 정도이나 지금의 나는 1~6번부터 꼭 지키며 '올바르게' 연습하기에 여념이 없다. 올바르게 연습을 해야만 자연스럽게 속도도 따라붙을 것이다. 언젠가 원 템포까진 아니지만 미스 없이 그냥 딱! 들어도 빠른 템포로 멋들어지게 치고 싶다!



선생님이 연필로 마크한 부분까지가 나에게 주어진 첫 과제

Chopin, Polonaise for piano No. 6 in A flat major, Op. 53

폴로네즈 연습 진도 나간 것을 말하기 위한 서론이 너무 길어졌으나, 결국 오늘! 폴로네즈 영웅 진도를 나간 5마디 처음 연습 한 날이었다. 연습의 결과는 처음 흑건 나갈 때와 매-우 비슷하였다. 흑건을 처음 연습했을 때처럼 미친 듯이 더듬고 건반 앞에서 헤매는 심각한 수준은 아니었으나, 내가 생각했던 그림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내림 가장조라 (또 플랫..) 플랫이 4개요, 도대체 여기저기 플랫, 샵은 왜 그려놓은 건지.. 악보와의 사투가 시작된 것이다. 왼손 계이름을 후다닥-칠 수 있는 정도는 아니라 정말 답답하다. 나만 이렇게 왼손 계이름 읽는 것이 힘들까? 속상하고 답답한 일이다. 분명 매일 아침, 조성진의 폴로네즈 영웅을 듣는데 왜 내가 치면 내 에어팟에서 흘러나오는 그 음악이 아닌 것이냐! 첫 술에 배부를 수 없지만 매우 흡족하지 못한 연습이었다. 뒤에 한 4마디도 치다가 결국 포기하였다. 욕심내지 말기로 했는데, 자꾸 치다 보면 욕심이 난다. 하지만 일단은 나이게 주어진 5마디부터 완벽하게 치도록 노력해야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이 폴로네즈는 상징이 되어야 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