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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리책장 Apr 06. 2022

진짜 내 음성 만나고 싶어

<자유로운 음성을 위하여> 크리스틴 링크레이터 지음

이 나이를 먹을 줄 몰랐다. 먼 일이고, 남의 일이라고 생각했다. 서른이 되어서는 저만치 멀어져 간 이십 대를 아쉬워했고, 아이와 함께 시작한 삼십 대에서 바라본 사십 대는 무슨 재미로 다들 사실까? 이래 생각했다. 사십 대 중반을 달리고 있는 지금 더 이상 지나간 시간을 그리워하지 않는다. 잃어버린 상품권(지난달 마트에서 교환하자마자 흘려버렸다는^^::)에 미련을 두지 않는다. 지나간 시간을 아쉬워하지 않기로 한다. 지금 이런 얘기가 아니고요. 나의 음성에 대해서 생각하다 그리워하지 않는 지나간 나이 이야기가 나왔다. 유아 적부터 있었을 내 소리를 방해하는 부차적 충동들. 긴장감에 대해서 생각해 본다. 마흔 중반을 

달리는 동안 자유로운 음성을 막는 경험치가 얼마나 많았을까? 원인을 찾아보고 방해 요소를 제거하기까지 얼마간의 시간이 필요할까? 아무리 100세를 넘어 사는 시대라고 하지만 살아온 세월만큼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말은 하지 말길. 


하지만, 상상력을 이용해서 호흡이 골반 바닥, 혹은 다리나 발바닥 아래까지 내려간다고 상상한다면, 폐가 이 상상력에 반응해서 실제로 폐활량이 늘어납니다. 더 중요한 것은, 들숨이 들어오면서 골반 바닥, 골번 관절, 그리고 허벅지에 있는 공간들을 채운다고 상상하면, 몸 깊숙한 곳에 있는 불수의(반사적) 호흡 근육들이 자극되고, 생각을 천골 신경 조식 안에 있는 원초적 에너지의 근원과 연결 시깁니다. 상상력의 힘을 올바르게 사용한다면, 호흡을 근본적인 차원에서 활성화시킬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음성의 기능을 향상하는데 최대의 효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자유로운 음성을 위하여> p34


음성은 어떻게 작용하는가?


1단계. 의사소통을 하고자 하는 욕구가 생깁니다.

2단계. 충동이 호흡을 몸 안으로 들어왔다 나가도록 자극합니다.

3단계. 나가는 호흡이 성대와 접촉하면서 떨림을 만듭니다. (호흡 관련 움직임과 후두부의 움직임은 동시에 일어난다.)

4단계. 그 떨림이 음파(진동)를 만듭니다.

5단계. 그 진동은 몸속의 울림판(울림 장치) 들에 의해 확대됩니다.

  표면이 딱딱하면 딱딱할수록 울림은 더 강해지고, 뼈는 최고의 울림 표면이고, 연골, 근육도 울림 표면이 될 수 있다. 하지만 늘어져 있고, 살이 많고, 저항성이 없는 부위는 진동을 흡수해 버린다. 음성은 인두, 입, 코 등 터널 모양으로 생긴 공간이 있는 부위에서 가장 잘 울린다. 뼈들도 모두 울림소리에 기여하는 딱딱한 표면들이다.

 음높이와 울림소리의 관계는 적합한 틈새, 적당한 모양, 그리고 크고 작은 구명들과 관련이 있다. 인두와 입 안쪽의 근육이 긴장하고 이완하면서 미세하게 소리를 조율하기도 한다.

6단계. 그 울림소리가 입과 혀에 의해서 정확히 발음되면서 단어가 됩니다.

 윗입술과 아랫입술, 혀끝, 이, 혀 앞날, 경구개 앞 모서리, 혀 중간 부위, 입천장, 혀뿌리, 연구개의 움직임을 포함한 경구개 제일 안쪽. 이것 중에 두 개의 표면이 닿거나, 거의  닿게 되면 나오는 공기나 소리가 막히거나 방해를 받으면서 자음이 만들어집니다. 모음은 입수로 가 혀가 흘러나오는 진동을 여러 가지 다른 모양으로 만들면서 생깁니다.


이렇게 음성이 순서대로 아주 편안하게 즉흥성을 가지고 반사적으로 바로 나와야 하나 대부분의 사람들이 부차적인 충동에 의해 차단되고 있다. 부차적 충동은 일반적으로 보호하려는 성질, 생각할 시간을 가지도록  해 준다. 이런 부차적 충동이 지나치게 발달이 되면 반사적 충동을 억눌려 버리고, 이것이 습관이 된다는 것이다. 이런 정신적, 감정적 습관은 외부 요인으로 만들어지고 기본(본능적)인 충동에는 반응을 하지 못한다.


<소리내어 읽는 즐거움> 28p~46p





작은 파이 하나에 켜켜이 개어있는 수십의 결처럼 많은 것들을 안고 살아왔다. 살면서 겪은 좌절 등이 알게 모르게 쌓여있다. 그때그때 해결하고 왔으면 좋았겠지만. 문제가 있는지 조차 인지하지 않았다. 해결해야 내가 건강한 사람이 된다는 의식조차 하지 않은 것이다. 책을 읽다 보면 흑백사진의 배경에서 유난히 한 장면이 칼라로 선명하게 따라와 고통이 느껴질 때가 있다. 오늘 이 부분을 읽으면서 아주 오래전 내가 싫어하던 나의 목소리가 내 귀에 들려왔다. 아마 그날 이후 내가 의식하며 소리 내는 것이 두려웠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소리의 문제가 아니라 마음의 문제였겠지. 뭐가 불쑥 나왔다고 해서 이게 해결될 것 같지는 않다. 좀 더 가면 그것의 이름들을 분명하게 불러줄 수 있을까?

지금은 서두르지 않기다. 내가 의식하는 한 조금씩 제거하리라 보고, 또 간다. 자유로운 음성을 위해 의식의 끈을 놓지 말자. 그 의식에는 책이 있다. 이젠 제대로 읽기다. 글자만 읽는 사람이 아닌 책을 통해 말하는 저자의 음성을 듣고, 나를 돌아보는 작업을 꾸준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더욱 든다. 진짜 음성을 만나고 싶은 그런 새벽이다. 

(2022.0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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