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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림 Oct 30. 2023

스스로 만드는 놀이가 가장 재미있는 법

며칠 전 숲에서 만난 3학년 아이들 열두 명, 아주 에너지가 넘쳐나는 아이들이었다. 인계를 마친 담임 선생님이 떠난 후로는 너른 풀밭을 만난 망아지처럼 산을 휘젓는다. 같이 뭘 좀 보고 이야기 나누려 해도 한자리에 모으기가 쉽지 않다. 집중력은 30초 정도, 길어야 2분 남짓. 두더지 굴을 발견하고 두더지의 생태에 대해 이야기해주려 했건만 옆에 있는 개미, 벌레집, 버섯 등에 정신이 팔려 흩어진 탓에 앞에는 서너 명만 겨우 서 있기 일쑤였다.


솔직히 말하자면, 이렇게 자유분방한 아이들과 수업을 하면 힘이 더 들긴 하다. 아이들을 부르기 위해 목소리도 한 번 더 내야 하고, 안전에도 좀 더 신경 써야 하며, 수업의 흐름이 자꾸 끊기니 빠른 전환을 해야 할 때가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수업이, 이런 망아지 같은 아이들이 싫지 않다. 이게 아이들의 자연스러운 모습인 것 같다. 그리고 아이들이 자연 속에서 자연스럽고 자유롭게 몸과 마음을 풀어낼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나의 역할 중 하나라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조금 어수선하고 정신없긴 했어도 그만큼 아이들과 신나게 논 시간이었다. 우리가 활동하던 산에는 칡덩굴이 많아서 우리는 다 같이 칡을 채집하기로 했다. 뚝뚝 끊어지는 여름 칡과 달리 가을 칡은 적당히 질겨서 아주 좋은 놀잇감이 되어준다. 아이들은 나무를 감고 올라 간 칡덩굴을 신나게 당겨댔다. 나무와 씨름이라도 하듯 온몸에 힘껏 힘을 주고 덩굴과 밀당을 했다. 아이들이 분출하는 에너지와 생기로 덩굴숲이 가득 차고, 맑게 웃는 얼굴들이 가을 햇살에 반짝반짝 빛이 났다.


하나 둘 아이들이 채집해 온 칡덩굴을 꼬아서 줄넘기 줄을 만들고 있었는데, 길게 뜯어 온 긴 덩굴로 아이들이 먼저 “꼬마야 꼬마야” 줄넘기를 하며 놀기 시작했다. 번갈아서 줄을 돌리고 돌려주며, 그 사이 저들끼리 규칙도 만들어 가며 놀았다. 칡덩굴로 뭘 할 건지 말해주지 않은 상황이었는데, 놀잇감을 손에 쥐자 아이들끼리 알아서 놀이를 만들었다.

'아, 우리가 애써 놀이를 이끌지 않아도 아이들 스스로 충분히 재미있게 놀 수 있구나!'

짝꿍 선생님과 눈빛을 주고받고는 만들던 칡덩굴을 한쪽으로 치우고 우리는 아이들이 주도하는 놀이 속으로 풍덩 뛰어들었다. 몇몇 아이들은 숲 속에서 신나게 칡덩굴과 씨름하고, 다른 아이들은 칡덩굴에 달린 잎을 따면서 정리를 하고, 또 다른 몇몇은 꼬마야 꼬마야를 하고, 내 옆에서 칡덩굴로 줄넘기에 쌩쌩이까지 선보이는 애들도 있었다. 각자 자기가 가장 재미있어하는 것들을 하며 남은 시간을 보냈다.


그렇지, 이게 놀이지!

이거 하자, 저거 하자 하면서 모두가 똑같은 활동을 하는 건, 장소만 바깥일뿐 아이들에게는 또 다른 공부일 수 있다. 놀이를 스스로 주도하고, 진행하면서, 확장하고 참여하는 것이 진정한 놀이인 것을. 밝게 웃으며 뛰노는, 천방지축 아이들을 보며 다시금 깨달았다.






그 자리에서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만드는 놀이만큼 즐겁고, 신나고, 아이들을 자라게 하는 것은 없다. 그래서 이런 때엔 준비해 둔 커리큘럼과 활동들을 접어두고, 아이들이 이 순간에 온전히 집중하고 흠뻑 빠져들 수 있도록 도우려 한다. 숲에 오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니까! 유치원이나 학교가 정해진 교과과정을 착실히 따라가는 곳이라면, 숲에서는 자유롭게 몸과 마음을 움직이며 스스로 새로운 것을 찾고, 연결하고, 창조하는 ‘나’를 키우는 곳이라 생각한다.


그때그때 아이들의 관심과 흥미가 집중되는 것에 초점을 맞춰 유연하게 이끌어가면, 나도 조금 덜 힘들고 아이들도 더 재미있게 참여할 수 있다. 숲에 와서도 질서 정연하게 줄을 맞춰 서고, 조용히 집중하는 아이들을 만나면 고맙고 대견한 한편 조금 씁쓸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숲에서는 줄 서지 않고 자유롭게 걷고 관찰해도 된다 말해주어도 내가 앞이었네, 네가 새치기를 했네, "선생님! 얘 줄 안 지켜요!" 하고 학교에서 정한 규칙을 꼭 지키려는 아이들이 있다. 그럼에도, 아이들이 정해진 길로만 걷지 않고 자유분방하게 움직일 수 있는 경험을 열어주고 싶은 마음이다. 숲에서는 어디든 길이 될 수 있기에. 아이들이 자연 속에서 마음껏 몸을 움직이고 마음을 열어낼 수 있도록 내가 어떠한 계기가 되어줄 수 있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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