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사람들의 이름을 곧잘 기억하는 편이다. 초중고 반 친구들이나 이전 회사 동료들의 이름을 기억하고, 지난달 프로그램에 참여했던 아이의 이름을 기억해 불러주기도 한다. 친구들과 예전 일들을 이야기할 때 홀로 기억 조각이 빠져있다거나 읽었던 책의 내용을 홀라당 잊어버리기도 하는 걸 보면 특별히 기억력이 좋은 건 아닌 듯하다. 아마도 사람을 좋아하고 사람에 관심이 많은 천성 때문이 아닐까. 새로운 이를 만나면 궁금하고 알고 싶은 마음에 눈과 귀가 부지런히도 그를 좇으니 말이다. 이름이란 건 사람을 알아가는 첫 번째 문이라 할 수 있으니 그 문을 제법 적극적으로 두드리는 편인 것 같다.
아직 회사원이던 7년 전, 입사한 그날로 전 직원의 이름과 직책을 모두 외워버렸었다. 작은 회사라 전 직원이라 해도 스물다섯 명 남짓이었지만 얼굴과 이름, 직책을 모두 외우는 데에는 노력이 필요했다. 그 회사의 문화인지 새 직원이 입사하면 사장님과 동행하면서 모든 직원들의 자리로 찾아가 인사를 나누었는데, 명함과 얼굴을 연결하고 속으로 여러 번 불러보며 이름을 외웠다. 그리고 자리로 돌아와 틈틈이 명함을 넘겨보며 얼굴을 떠올렸다. 다음 날부터 동료들의 이름을 부르며 인사하고 말을 거니 다들 자못 놀라는 눈치였다. 크흐, 이 맛에 그렇게 달달 이름을 외운 거지! 나 한 명의 이름도 채 기억하지 못하는 직원들이 절반은 넘을 거라 넘겨짚으며 속으로 흡족한 미소를 띄웠더랬다.
이름과 얼굴을 잘 기억하는 재주는 여러모로 도움이 많이 된다. 이름을 기억하고 불러주는 것은 ‘당신은 나에게 중요한 사람입니다'라는 뜻을 은연중에 전해주므로 사람들의 주의를 끌고 마음을 얻는 데 조금 더 수월해지는 덕이다. 숲해설 일을 하면서도 제법 도움을 받고 있다.
여러 달 전이나 지난해에 만났던 아이의 이름을 불러주면 말갛게 밝아지는 얼굴을 만날 수 있다. 저번 달에 만났던 아이 엄마의 이름을 불러주면 어쩜, 선생님 제 이름도 기억하세요 하며 엄마 얼굴에 웃음꽃이 피어난다. 저도 잊고 있던, 지난번 만남에서 지었던 자연 이름을 불러주면 아이는 갸우뚱거리다가 이내 쑥스러워 엄마 품속이나 아빠 다리 사이를 파고들기도 한다. 이렇게 수업을 시작하면 그들은 고맙고 기쁜 마음으로 기꺼이 숲에서 만나는 것들에 집중하고 적극적으로 활동해 준다. 3학년이던 아이가 4학년이 되어 숲에 왔을 때, "너 3학년 때 선생님 만난 적 있지? 나는 너 기억이 나는데." 하고 슬며시 웃으며 말을 걸면 어리둥절해하면서도 입은 배시시 웃는다. 친구들의 관심과 부러움을 산 아이는 필시 수업 시간 내내 초롱초롱한 눈을 하고는 옆에 꼭 붙어 다니기 마련이다.
친구나 지인들의 별명이나 애칭을 만들어 부르기를 좋아하는 터라 한 번 만나는 아이들이라도 ‘저기야’, ‘얘야’, ‘친구야’라는 식으로 호칭하기보다는 이름으로 불러주고 싶다. 그래서 아이들에게도 자연 이름 짓기를 권한다. "저는 바퀴벌레라고 불러 주세요.", "저는 거미예요." 하고 즉석에서 이름을 만드는 아이들이 있는가 하면 선뜻 정하지 못하고 망설이는 아이들이 대부분이다. 그러면 직접 지어주기도 한다. 곤충이 무서워 높은음으로 소리를 지르던 아이에게는 '돌고래', 예쁜 보라색 옷을 입은 아이는 '보라돌이'라 이름 붙여주면 아이들은 "저는요? 저는요?" 하며 너도나도 눈빛을 반짝인다. "뭐라고 불러줄까? 어떤 이름으로 불리고 싶어?" 물으면 당사자는 웃으며 부끄러워하는데 친구들이 옆에서 조잘조잘 난리다. 평소 학교에서 불리는 별명(뚜비)이나 즉석에서 지은 별명(뽀로로, 키다리), 좋아하는 연예인과 관련된 별칭(이강인, 캐럿-아이돌 그룹 '세븐틴' 팬클럽 애칭이란다)이라든지 좋아하는 동물 이름을 대기도 한다. 아이들 한 명 한 명에게 한두 시간 동안만 쓸 시한부 이름을 모두 지어주고서는 수업 내내 틈틈이 불러준다. 설렘과 기대감으로 이름을 기다리고, 새로운 이름이 지어질 때마다 뭐가 그리 재밌는지 깔깔대며 웃어대는 아이들이 사랑스럽다. 수업 중에 이름을 불러주면 어색해하면서도 눈과 입에 웃음이 번져나가는 건 막을 수 없는지 웃어버리고 만다. 이름 하나로 우리는 여러 번 웃고 여러 번 행복하다.
가족이 프로그램에 참여할 때에도 가끔 자연 이름을 짓게 하곤 한다. 보통 3~5 가족을 한 팀으로 묶어 함께 활동하는데, 아이들에게 자연 이름을 짓도록 하고 그 이름으로 아이와 가족을 부른다. 이를테면 티라노사우르스를 좋아하는 5살 아이가 자기 이름을 '티라노'라 지었다면, 함께 온 가족을 '티라노 팀'이라 부르는 식이다. 자기가 붙인 이름을 불러주면 아이들은 헤죽헤죽 웃는다. 이 세상에 나왔더니 갖게 된, 누군가 지어준 이름이 아니라 직접 지은 이름을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 마냥 좋은 가보다. 그리고 자기 이름으로 가족을 대표한다는 기분도 제법 그럴싸할 거다. 아직 이 세상에 서툰 어린이들은 대체로 보호자의 그늘에서 그들이 정하는 대로 따라가기 마련이니 자기가 주체가 되는 경험을 열어주는 것도 좋겠다 싶었다.
청년들과 함께 숲을 다닐 때도 자연 이름을 만들도록 권했다. 2~30대의 청년들이 눈을 굴리며 어떤 이름으로 지을까 골똘히 고민하는 모습을 보니 참 흐뭇했다. 그렇게 지은 이름들 중에는 제법 기발하고 매력 있는 것들도 많았다. 잠자는 걸 좋아하고 뚱뚱하다며 '잠뚱이', 온수와 낙엽을 좋아한다고 '온낙', 본인 이름의 초성과 같아서 '이무기', 쓸데없는 짓을 많이 한다고 '쓸짓' 등. 어떻게 짧은 시간 안에 이렇게 재치 있는 이름을 지었는지 감탄스럽다. 그러고는 '선생님', '님', '씨' 같이 곁딸린 것들은 빼고 서로 이름으로만 부르게끔 호칭을 정했다. 요즘 회사에서도 '대리님', '과장님' 같은 직급을 없애고 'oo님'이라 부르는 것처럼 우리도 서로를 이름으로 불렀다. 나도 그저 '소림'이라 불러달라 했다. 그렇지만 아무리 또래여도 앞에 서서 이야기하고 있으면 선생님 같은지 자꾸 선생님, 강사님이라 불러대는 통에 쉽지는 않았다. 자유롭고 편한 분위기를 이끌어 내고자 머리를 굴려본 것이었는데, 어째 효과가 있었는지 모르겠다. 다가와서 장난치고, 농담도 건네고, 복도에서 만나면 하이파이브를 청하는 걸 보면 이름으로 부른 덕을 좀 본 것이려나?
이름을 기억하고 불러주는 것이 생각보다 작고 별 것 아닌 듯하지만 사람을 귀하게 여기고, 사람 사이의 관계를 소중히 하는 사람이라야 할 수 있는 일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그 사소한 정성들이 쌓이면 아주 단단한 기둥이 되어 나를 받쳐주리라 믿는다. 사람을 좋아하는 나는 새로운 이들을 만나 또 그 이름들을 마음에 새긴다. 하나의 이름을 입고 들어온 그들에게 기꺼이 마음 한 편을 내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