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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림 Aug 29. 2023

가짜 나무에 속는 우리들

정돈되지 않은 숲을 다니다 보면 쓰러져 있는 나무나 구석에 쌓여있는 통나무 더미를 만나곤 한다. 그런 나무들은 아주 흥미롭고 유용한 놀잇감이 되어준다. 죽어서도 이렇게 놀이 재료로써 제 몸을 내어주다니 정말이지 아낌없이 주는 나무가 아닐 수 없다. 그걸로 아이들과 다리를 만들기도 하고 오두막을 짓기도 한다. 다리든 집이든 원하는 걸 만들려면 나무를 들어 옮기는 게 첫 번째 단계인데, 이때 아이들은 당황하곤 한다. 생각했겠지만, 짐작도 했겠지만, 나무가 이 정도로 무거울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10월의 가을 숲, 그날은 열한 살 아이들과 골짜기에 나무다리를 놓기로 했다. 비탈과 이어진 골짜기에는 바람에 넘어간 건지 베어진 건지 가느다란 나무 여러 그루가 길게 누워 있었다. 골짜기로 내려간 기린(자연이름)이 다리 만들기에 좋은 나무를 찾았다. 2미터는 가뿐히 넘길 법한 나무의 끝을 잡고 기린은 번쩍, 들어서 끌어오려 했으나 살짝 들리기만 할 뿐 나무는 움직이지 않았다. 그 순간 '오잉?'하고 아이의 얼굴에 떠오른 머쓱한 미소. 학교에서는 이제 고학년에 든 열한 살 형아이니 당연히 통나무 하나쯤은 들 수 있을 거라 생각했나 보다. 길이가 제법 길긴 했지만 두께가 아이들 종아리나 허벅지만큼 밖에 되지 않는 가는 나무였으니 그럴 만도 하다.


이내 다른 아이들이 다가와 다 같이 나무를 들기로 했다. 축축한 골짜리에서 습기를 가득 머금은 나무는 무게가 만만치 않았다. 서너 명이 모여서야 나무는 비로소 이동을 허했다. 곧 아이들은 또 다른 난관에 봉착했는데, 기다란 나무를 들고서는 원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울퉁불퉁하고 좁은 골짜기 길에서 내 몸 하나 중심 잡기도 힘든데, 통나무까지 짊어지고 있으니. 게다가 함께 나무를 들고 있는 동지들과도 걸음을 맞춰 움직여야 했다. 해병대 캠프에서 훈련이라도 받는 양 아이들은 애를 써가며 길을 헤쳐나갔고 끝내 골짜기 사이에 나무다리를 놓는 데 성공했다. 그 후로 여러 길이의 나무를 더 가져와서 길고 짧은 다리 몇 개를 완성했다. 나무의 진짜 무게를 맛본 후라 그런지 아이들은 만만해 보이는 나무라도 힘을 합쳐 들고 요령 있게 옮겼다. 






우리는 하루에도 수 십 번씩 나무로 만들어진 것들을 마주한다. 의자와 테이블, 계단, 장판, 옷장처럼 큰 것들부터 쟁반, 펜, 빗과 같이 작은 용품들까지. 하나 조금만 관심을 갖고 살펴보면 그것들은 보이는 그대로의 나무가 아니라 나무 모양을 흉내 낸 플라스틱이거나 분쇄된 나무가루로 만들어진 것들이 대부분이다. 가짜 나무. 우리 일상에 넓고도 깊숙하게 파고든 가짜들은 진짜 나무의 질감과 무게, 무늬와 향을 숨김으로써 뜻하지 않게 우리를 속인다. 아이들은 나뭇결 모양 필름을 붙인 플라스틱 의자를 끌며 은연중에 그것이 나무의 무게라고 인식한다. 하루 중 긴 시간을, 나무를 본뜬 플라스틱 책상에 앉아 일하는 어른들의 무의식에도 나뭇결은 이렇게 매끄러운 것이라는 느낌이 새겨진다. 우리는 속는 줄도 모른  가짜 나무들에 속아 넘어간다.


내가 다닌 초등학교의 책상과 의자는 모두 나무였다. (내구성을 위해 다리는 쇠였지만) 당시 90년 역사를 자랑하는 시골 학교였으므로 교실 바닥도 짙은 색의 나무 마루였다. 대청소를 하는 날이면 의자를 책상 위에 올린 뒤 모든 책상을 교실 뒤편으로 몰았는데, 그때마다 낑낑 대며 의자를 들고 책상을 밀던 기억이 난다. 그 무게는 고학년이 되어도, 중학생이 되어도 여전히 무거웠다. 오래된 의자나 책상의 나뭇결이 일어나 손에 가시가 박히거나 다치는 건 일상다반사였다. 결 따라 일어난 의자 모서리에 걸려 올이 나간 스타킹만 해도 수 십 개일 거다. 하도 올이 나가니까 나중에는 애들이 갈아입지도 않고 구멍 난 스타킹을 신은 채 복도를 걸어 다니곤 했다.


지금도 나무 의자와 책상을 사용하는 학교가 많지만 점차 가볍고 저렴한 플라스틱으로 대체하고 있는 것 같다. 학교에서 아이들 손에 가시라도 박히게 되면, 예전보다는 여러모로 골치 아픈 일이 되어버렸기 때문이기도 할 테다. 아무래도 가볍고 모서리가 둥근 플라스틱이 무겁고 거친 나무보다는 안전할 테니. 그렇지만 나무를 흉내 낸 플라스틱을 볼 때면 못내 서운한 마음이 든다.


가짜 나무들의 활보에 속지 않으려면 진짜를 찾아 경험해야 한다고 믿는다. 영화 '매트릭스'의 네오가 빨간 알약을 골라 진짜 현실을 마주하는 것처럼 거창할 것까지는 아니더라도 가짜가 가짜라는 건 알아야 하지 않을까. 자연 속에서는 나무를 있는 그대로 보고, 냄새 맡고, 만지고, 무게를 느낄 수 있다. '진짜'를 만나는 경험을 한다. 필름을 씌우지 않은, 나무 무늬를 덧입히지 않은 진짜 나무를 만난다. 대상과 나 사이에 있던 막을 한 겹 벗겨내고 나무를 나무로, 돌을 돌로, 곤충을 모형이 아닌 생명체 그대로 만나는 것은 무척 중요하다. 진짜를 경험하고 나면 가짜를 만나더라도 분명하게 보고 판단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경험이 모이고 쌓이다 보면, 넘쳐나는 정보 속에서 희석되어 버리기 일쑤인 진실을, 우리는 조금 더 밝은 눈으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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