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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림 Oct 18. 2023

직업만족도 97%의 직업

사무실 모니터 앞에서 9 to 6, 주 5일 시간을 보내던 회사원이 숲해설가가 된 지도 어느덧 3년이 흘렀다. 자연이름인 ‘소림’이 마치 손이 자주 가는 옷을 툭 걸친 듯 이제는 본명만큼이나 편하고 자연스러워진 느낌이다. 그리하여, 새로운 직업이 마음에 드느냐 한다면! 그렇다. 100%까지는 아니어도 97% 정도는 만족한다 할 수 있겠다. 사람이든 뭐든 좋게 좋게 보려는 낙천적인 성격 덕도 있겠으나 이토록 만족도가 높은 직업군이 또 있으랴 싶다.


즐겁게 일할 수 있도록 어떤 것들이 알게 모르게 나를 돕고 있나 생각해 봤다. 네 가지가 단박에 떠올랐다. 일터, 사람, 동료, 그리고 일하는 방식. 어찌 보면 직업을 이루는 가장 중요한 요소라 할 수 있는 것들이다. 이 네 가지가 모두 만족스러우니 나는 얼마나 복 받은 사람인가. 그럼 어디, 숲해설 일이 어디가 그렇게 좋은지 하나하나 자세히 들여다 볼까나.






일터가 매우 만족스럽다.

답답한 사무실에서 엉덩이만 들썩이다 결국 박차고 나와 숲해설가가 되니 풀과 나무가 있는 모든 곳이 일터가 되었다. 사무실도 있으나 주 활동 무대가 공원과 산이다. 사무 업무도 해야 하지만 주 업무는 단연 자연에서 사람들을 만나 해설하는 일이다. 사방이 탁 트인 자연에서 어떤 곳이든 발길 닿는 대로 움직이며 일할 수 있다니 얼마나 자유로운지! 만물에 생기가 돋는 봄, 리듬감 있게 통통 튀는 여름, 깊고 넓은 하늘과 알록달록 단풍이 아름다운 가을, 맑고 시원한 겨울까지. 저마다 매력을 뽐내는 사계절을 몸과 마음으로 만끽한다. 무엇도 가두는 벽 없이 마음대로 활개 칠 수 있는 넓은 일터에서 해방감을 느끼며 일하고 있다.



사람들에게서 힘을 얻는다.

사람을 상대하는 일이다 보니 사람에게 실망하거나 지치는 날도 있지만 힘을 얻는 날도 많다. 어린아이들의 엉뚱한 상상력과 주의 깊은 관찰력에 놀라고, 청소년 아이들을 만나며 자세를 낮춰 어린이와 눈 맞추는 법을 배운다. 청년들과 사는 이야기를 나누며 숲길을 함께 걷고, 아이들보다 더 반짝이는 눈으로 풀과 나무와 곤충을 바라보는 엄마와 아빠의 맑은 순수함을 느끼기도 한다.

아이들을 주로 만나다 보니 온몸에서 끓어오르는 그들의 에너지에 전염되어 힘을 듬뿍 받곤 한다. 뭘 해도 웃겨 죽겠다는 듯 까르르 웃는 아이들을 보면 덩달아 방실 웃게 되고, "너무 재미있어요!", "너무 신나요!" 라며 마음이 느끼는 대로 솔직하게 감정을 표현하는 모습에 내 마음도 맑아진다. 한두 시간 만에 정이 들어서 헤어지기 전에 다리에 매달리거나 안기는 아이들의 머리를 쓸어주다 보면, 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또 만나서 같이 신나게 놀아주고 싶다. 그런 날은 내가 참 좋은 사람이 된 것만 같다.



함께 일하는 동료들에게 배운다.

숲에서 만나는 사람들 중 가장 좋은 사람들은 무엇보다 동료 숲해설가들이다. 동료가 아니더라도 우연히 숲해설가를 마주치면 반갑고 고마운 마음이 든다. 숲을 사랑해 숲을 닮아가는, 맑고, 밝고, 따뜻한 사람들. 그들과 함께 일하며 많이 배우고 성장하고 있다. 더 좋은 사람이, 더 멋진 어른이 되어감을 느낀다.

내가 만나 본 숲해설가들은 대체로 긍정적이고 부드러운 성정을 지니고 있다. 거기에다 나의 동료들은 모든 살아 숨 쉬는 것들을 향해 열려 있고, 받아들이며 배울 준비도 되어 있는 멋진 사람들이다. 그리고 자신의 주장과 의견을 강하게 내세워야 할 때와 한 발자국 물러나 상대방의 의견을 받아들일 때를 안다. 함께 일할 때 이 태도는 무척 중요하다. 숲해설가를 보면 혼자서 수업을 기획하고 이끌어 가는 것 같지만, 다른 직군들처럼 우리도 회의를 많이 한다. 한 팀으로서 기본적인 수업 내용이나 전반적인 틀을 맞추기 위해서다. 이처럼 개별성과 공통성의 영역이 공존하므로 의견을 관철시키기도 하고 물러나기도 하며 유연함을 발휘할 필요가 있다. 이게 정말 한 끗이라 모두가 배려하며 뜻을 잘 맞추면 잘 길든 맷돌처럼 부드럽게 돌아가지만, 욕심부리고 고집부리려 하면 한없이 삐그덕거리게 된다. 다 사람이 하는 일이라 그런 것 같다.


무엇보다 일을 함에 있어 동료들과 결이 맞는다. 같이 일하는 사람들과 결이 맞는다는 건 생각보다 많은 것들에 영향을 미친다. 특히 사람을 좋아하고 사람의 영향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나 같은 사람들에게는 더욱. 결이 맞는 사람들과 일하면 편하고, 즐겁고, 무엇보다 함께 성장할 수 있다. 우리는 플라스틱과 비닐로 예쁘게 만들어진 교구 대신 투박하더라도 자연에서 발견하고 만든 것들을 사용하고자 한다. 정해진 커리큘럼이나 스케줄을 밀고 나가기보다 그때그때 참여자들에 맞추어 바꾸는 것을 더 중히 여긴다. 숲해설의 중요성과 필요성에 대해 생각하고, 이제 발걸음을 뗀 이 분야를 어떻게 이끌어 나가면 좋을지 멀리 보려 한다. 안주하지 않고 개개인의 성장과 발전을 위해 노력한다. 우리가 하는 일에 가치와 자부심을 느끼면서 이 일을 더욱 가치롭게 만들기 위해 고민한다. 이런 동료들이 곁에 있는 한 나는 꺼지지 않는 불꽃이 될 수 있으리라. 그들이 있어 든든하고 항상 감사하다.



매일 새로운 일이라 좋다.

사무직으로 일할 때에는 어쩔 수 없이 매일 루틴처럼 해야 하는 일들이 꽤 있었다. 공장처럼 똑같은 걸 찍어내는 반복적인 업무까지는 아니더라도 판매를 위한 행사 상품 제안, 경쟁사 분석과 판매 동향, 거래처별 매출 현황 파악 등 생각만 해도 답답해지는 일들을 매일 했다. ―그렇다. 난 MD이면서도 숫자와 친하지 않아 이런 일들을 할 때면 힘이 빠지곤 했다. 

그런데 숲해설이라는 건 매번 새로운 일이었다. 숲해설, 숲체험을 진행하는 수많은 단체마다 상황과 목표에 따라 일하는 방식도 다양한데, 내가 일하는 곳에서는 만나는 대상도 매일 다르고, 활동 장소도 여러 군데이며 프로그램 주제도 매달 달라진다. 지자체에서 시민들에게 제공하는 생태체험 프로그램이라 유아부터 초등학생, 가족까지 그 대상이 다양하다. 오늘 5살 아이들을 만났다면 내일은 13살 청소년들과 수업을 하고, 그다음 날은 부모와 아이의 눈높이에 모두 맞춘 가족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식이다. 같은 수업 주제라도 대상별로 풀어나가는 방식이 다르고, 장소도 여러 곳이니 장소의 특성과 식생에 맞춰 프로그램을 변형해야 한다. 무엇보다 매 순간 달라지는 자연이 수업의 대주제이므로 오늘 있던 꽃이나 열매가 내일은 없을 수도 있고, 반대로 오늘은 못 봤던 곤충들이 다음 날에는 여기저기서 튀어나오기도 한다. 그만큼 변수가 많은 일의 특성상 그때그때 상황에 맞춰 유연하게 대처하는 순발력이 필요하다.


지난 3년 간 이러한 방식으로 일을 하면서 나라는 사람은 고정적이고 반복적인 일보다 유동적인 일을 더 좋아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 정해진 업무를 꾸준히 해나가는 일에서 오는 안정감과 성취감을 모르는 것은 아니나 그런 일이 나에게는 지루함과 안주함으로 더 크게 다가왔다. 매일 다른 사람들을 만나 새로운 수업을 준비해야 한다는 것은 그 자체로 부담은 있지만, 그 속에서 개성과 특성을 살려 수업을 만들어 간다는 자유로움과 보람이 더욱 크다.






가끔 생각해 본다. 회사에서 나오지 않았더라면 지금 뭘 하고 있을까? 아마도 숲해설가라는 직업을 가지지 못했거나 어쩌면 먼 미래의 일이 되었을 수도 있을 것 같다. 권고사직은 아픈 경험이었으나 인생사 새옹지마라 했던가, 그 덕분에 만족하며 일할 수 있는 직업을 찾았다. 숲해설가가 되기 전에는 이 일을 이렇게 즐겁게 하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그렇다고 해서 항상 좋은 점만 있다는 건 아니다. 불편하고 싫은 점도 물론 있다. 97%라는 직업만족도에서 볼 수 있듯 3%의 여지는 남아있다. 다만 모든 게 다 좋을 수 없듯이 죄다 싫을 수도 없다는 생각이다. 좋고 싫음이 양립하는 속에서 좋은 것은 계속 늘려가려 하고, 싫은 것은 개선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럼에도, 아무리 노력해도 싫음이 사라지지 않고 좋음보다 많은 날들이 계속된다면, 그때는 잠시 멈춰서 이 일이 하고 싶은지, 잘 할 수 있는지, 아니면 더 잘 맞는 다른 일이 있는지 살피는 것도 하나의 방법일 테다. 


좋아하는 일을 찾기 위한 가장 중요한 일은 나에 대한 고민이 아닐까 싶다. 다양한 경험에 나를 던져 보면서 내가 어떤 사람인지, 뭘 좋아하고 잘하는지를 그려보는 것이 시작점이다. 그 다음 거기에 맞는 일, 왠지 마음이 끌리는 일을 하나씩 해보면서 나에게 일을 맞추고, 일에 나를 맞춰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즐길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그리고 즐기는 일은 잘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어제는 여섯 살, 일곱 살 아이들과 쨍한 가을 햇살을 받으며 공원 잔디밭에서 뛰어놀았다. 내일은 12살 아이들과 산을 누비러 갈 거고, 그다음 날에는 사이좋게 손 잡고 올 가족들과 웃으며 인사를 나누겠지. 사람을 좋아하는 이가 사람들을 만나 좋아하는 공간에서 좋아하는 일을 한다. 삼박자를 고루 갖춘 나날들에 행복함이 솜사탕처럼 녹아든다. 달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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