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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림 Aug 26. 2023

산신령과 숲해설가 - 지렁이와 새 그리고 거북

어느 봄날 한 숲해설가가 산을 오르고 있었습니다. 며칠 뒤 그곳에서 수업이 있어 미리 둘러보러 온 것이었지요. 숲길에 막 들어서자 숲해설가는 뜨거운 햇볕 아래 말라가는 지렁이 한 마리를 만났습니다. 지렁이는 탈 듯한 괴로움에 몸부림치고 있었습니다. 숲해설가는 주변에서 넓은 나뭇잎을 주워 와 조심스럽게 지렁이를 그 위에 올렸습니다. 그늘에 땅을 파고 구멍 속에 지렁이를 넣은 다음 흙으로 덮어주었지요. 시원한 흙 속에서 지렁이는 천천히 숨을 골랐습니다.


좀 더 깊은 숲으로 들어간 숲해설가가 이번에는 땅에 떨어진 새끼 박새를 발견했습니다. 비행 연습을 하다 불시착했는지 새끼 새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지요. 근처에는 엄마 박새가 새끼 새를 부르며 안절부절못하고 있었습니다. 숲해설가는 새끼 새가 당황하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손으로 감싸 안은 뒤, 키 작은 나무의 가지 위에 살며시 올려주고 다시 길을 떠났습니다. 엄마 새가 날아와 새끼 새가 다친 곳은 없는지 이리저리 살핀 다음 한동안 숲해설가의 뒷모습을 지켜보았습니다.


숲으로 더 깊이 들어가니 작은 연못이 나왔습니다. 마침 목이 말랐던 숲해설가는 목도 축이고 그늘에서 잠시 쉬다 갈 겸 연못으로 향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숲해설가의 발에 뭔가가 걸렸습니다. 저런, 거북이 뒤집어진 채 발버둥 치고 있네요. 한참을 그러고 있었는지 거북은 지친 듯 네 다리를 쭉 늘어뜨렸습니다. "읏차!" 숲해설가는 거북을 안아 들고 연못가에 놓아주었습니다. 물 만난 거북은 이내 기운을 차려 엉금엉금 물속으로 기어 들어갔습니다.


그때였습니다. “펑!” 하는 소리와 함께 연못 한가운데에서 뭔가 불쑥 솟아나더니 연기가 자욱하게 퍼졌습니다. 연기 사이로 사람의 형상 같은 것이 흐릿하게 보였어요. 연기가 걷히자 그곳에는 요즘 유행하는 통 넓고 긴 청바지에 크롭 티셔츠를 입고, 머리엔 캡을 깊게 눌러쓴 사람이 서 있었습니다. 너무 놀라 입을 쩍 벌리고 어리둥절 서 있던 숲해설가에게 그가 이마를 긁적이며 말했습니다.


“어.. 놀랐지? 나 산신령인데, 네가 이 숲에서 동물 세 마리를 도왔다는 제보를 받았거든. 그 상으로 소원 세 가지를 들어줄 테니까 하나씩 말해봐.”


짝다리를 짚고 껄렁껄렁 몸을 흔들며 말하는 산신령이 못 미더웠지만 숲해설가는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에 소원을 하나씩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감사합니다. 산신령님. 지금부터 제가 간절히 원하는 소원 세 가지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첫 번째 소원은 가족의 건강과 행복이에요. (산신령이 '그럼 그렇지' 하는 표정을 짓습니다.) 네, 저도 인간인지라 사랑하는 이들이 건강하고 행복하게 사는 것이 가장 큰 원입니다. 건강과 행복은 한 가지가 아니라 두 가지라고요? 아이참. 건강해야 행복하고, 행복하면 건강하니까 결국 한 가지 소원이지요. 산신령님 재량으로 원 플러스 원 해주세요. (산신령이 마지못해 끄덕입니다.) 네, 감사합니다. 이 건강에는 마음 건강, 몸 건강 모두 포함됩니다. 저와 가족의 연으로 묶인 모든 이들이 거북처럼 건강한 몸과 마음을 갖고 행복하게, 오래오래, 저와 함께 살 수 있도록 해주세요. 거북이 인간 세상에서는 십장생에 포함되는 거 아시지요? 산신령님께서는 만물을 살피시는 분이니 잘 아실 거라 생각합니다. 제 가족이 거북처럼 오래오래 튼튼하게 살 수 있게 해 주세요. 아, 물론 저도 기본으로 포함되고요.


두 번째 소원을 말씀드릴게요. 저의 앞길에 어떤 일이 닥친대도 제가 바라는 것을 포기하지 않을 용기와 삶을 주체적이고 주도적으로 살 수 있는 자유를 주세요. 용기와 자유도 두 가지 아니냐고요? 이것 참. 용기가 있어야 자유로울 수 있고, 자유로우면 용기가 생긴답니다. 둘은 겉으로는 다른 것 같지만 본질은 하나예요. 제가 까마귀처럼 영리하게 삶의 선택지들을 택해 나가고, 까치처럼 용감하게 뛰어들며, 먼 창공을 나는 수리처럼 자유로울 수 있게 해 주세요. 그럼 저는 세상을 훨훨 날아다니면서 이곳을 조금 더 나은 곳으로 만들기 위해 제 힘을 쓸 거예요.


이제 마지막 소원입니다. 가장 중요한 게 마지막에 나오는 거 아시죠? 영화에서도 범인은 마지막에 밝혀지고, 주인공은 항상 마지막에 나타나는 법이지요. 제 마지막 소원은 말이에요. 지구에 사는 모든 사람이 환경 문제를 최우선으로 생각하게 해 달라는 거예요. 사람들이 밥 먹고 음료를 마실 때, 정치인들이 법안을 발의할 때, 어떤 나라가 전쟁을 일으키려 할 때, 국제적으로 쓰레기나 대기오염 문제를 논할 때. 이런 모든 순간, 모든 선택에 ‘지구를 깨끗이 사용하는 것’이 가장 앞서는 기준이 되도록 사람들 마음에 씨앗 하나씩 심어주세요. 이대로라면 우리 인간들은 지구상에서 사라져 버리고 말 거예요. 저희가 이룩한 다채로운 문명, 과학발전의 성과들, 신비롭고 무한한 인간의 가능성. 이런 것들이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면 너무나 아쉽지 않나요? 뭐 어차피 저희가 사라져 버린 후라면 아쉬워할 존재조차 남아 있지 않겠지만, 그래도 때로는 어리석게, 때로는 기특하게 살아가는 저희 인간들이 없어진다면 산신령님께서도 심심하지 않으시겠어요? 그러니 저희가 더 늦지 않도록, 조금이라도 더 되돌릴 기회를 가질 수 있도록 저희 마음속에 씨앗 하나 심어주세요. 지렁이처럼 부지런하게 땅을 고르고, 양분 가득한 똥을 누는 새처럼 영양분을 잔뜩 주고, 거북처럼 꾸준하고 끈기 있게 가꿔서 마음속 작은 숲을 울창하게 키워낼게요. 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 여전히 많이 있으니까요. 우리는 잘할 수 있을 거예요.




숲해설가는 길고 긴 세 가지 소원을 모두 말했습니다. 어느새 물 위에 편하게 앉아 숲해설가의 말에 집중하던 산신령이 말했습니다.


“음... 알겠다. 일단 소원은 접수됐고, 언제 이루어질지는 너에게 달려 있어. 살아가는 동안 네 소원들을 어느 때보다도 간절하게 원하게 되는 순간들이 올 거야. 소원은, 그때 이루어질 거야. 당장 내일 이루어질 수도 있고, 10년, 20년이 걸릴 수도, 어쩌면 이루어지지 않을 수도 있어. 네가 얼마나 이 소원들을 마음에 새기고 간절히 원하느냐에 따라 달려있어. 명심하도록. 그럼 행운을 빈다.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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