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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림 Nov 27. 2023

어떤 구름이 낯익다면 모른 척해 주세요.

초단편소설



“저거 어디서 본 것 같지 않아?”


“뭐가?”


“저기, 저 구름 말이야. 왜 우리 봄에 남산타워 올라갔을 때 구름 보면서 얘기했었잖아. 그때 본 거랑 비슷하게 생겼어. 저 구름.”


남자의 기억 속에 봄의 남산타워가 떠오른다. 분명 그때도 그들은 구름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만큼 높이 올라오면 구름과 더 가까워질 줄 알았는데 아래에서 보는 거랑 똑같다는 여자의 말을 시작으로 그들은 난간에 기대어 한참 동안 구름 모양을 맞추며 놀았다.


“그때 그랬잖아. 입에서 불을 뿜는 티라노사우루스 같이 생긴 구름이 있다고. 저게 딱 그때 본 거랑 비슷하다니까? 잠깐만. 아마 사진 찍었을 텐데.”


여자는 휴대폰을 꺼내고는 신속한 손동작으로 여름에서 봄으로 사진첩을 거슬러 오른다.


“찾았다! 이거 봐. 똑같지? 우와 진짜 똑같네. 내가 기억하는 것보다 더 똑같이 생겼어. 신기하다. 어떻게 이러지?”

진짜다. 진짜 똑같이 생겼다. 둔탁한 머리며 짧은 꼬리, 입에서 뿜어져 나오는 실낱같은 구름까지, 지난봄 그들이 본 구름과 똑같이 생겼다. 남자와 여자는 머리 위의 구름과 사진을 번갈아 보며 입을 다물지 못한다.






그 시각 ‘사단법인 창백한 푸른 점’의 기상부 담당 직원 죠니에게 긴급 메시지가 하나 들어온다. 사내 인트라넷을 통한 비밀 메시지이다. 구름 의자에 거의 누운 자세로 구름과자를 집어먹던 죠니는 심드렁한 표정으로 눈앞에 메모를 띄운다.


아시아 대륙 - 한국 - 서울
구름 시스템 에러 발견
첨부파일로 좌표 확인 바람
현재 한국인 2명이 의심 중
(* 한국인은 눈치가 빠르고 상상력이 풍부하니 빠른 대처 및 주의를 요함)

- 밤말낮말트래킹부 우담바


평소 우담바와 비밀 메시지를 자주 주고받지만 그 내용은 대체로 시시껄렁한 농담들이었다. 하지만 지극히도 업무적인 비밀 메시지에 죠니는 직감적으로 자세를 고쳐 앉으며 우담바가 알려준 좌표를 검색한다.

이런. 우담바가 말한 게 사실이다. 아시아 대륙 - 한국 - 서울에서 지구인 2명이 구름 이야기로 목소리를 키우고 있다.


요새 영 업무가 지겨워져 예전에 만들어 두었던 구름들을 여기저기 돌리며 쓰고 있었는데, 고작 몇 달 사이에 같은 나라, 같은 지역에다 같은 구름을 보내는 실수를 한 거다. 하필 눈치 빠른 한국인들이 많은 나라에 이런 실수를 하다니. 죠니는 입 안에 남아 있던 구름 과자를 마저 씹어 삼키며 생각한다.


‘씁... 이거 걸리면 경위서로는 안 되겠는데.’


머리를 굴리던 죠니는 결국 바람을 가져다 쓰기로 한다. 바람은 다루기가 까다로워 사용 전에 용도와 양, 일자와 시간, 지역, 방향과 세기 등에 대한 상세한 계획서를 제출한 후 기상부 팀장 소삭의 허가를 받아야만 쓸 수 있다. 지구 시간으로 4년 전쯤엔가 기상부 직원 두프올이 북미 대륙에서 컨트롤하던 토네이도가 예상보다 커지는 바람에 계획에 없던 집을 스물두 채나 날려먹은 적이 있었다. 그때 기상부 전체가 얼마나 떠들썩했던지. 그러게 그렇게 대량의 바람을 강하게 사용하는 일을 고작 8년 차 - 지구 시간 기준 - 신입에게 맡기다니. 죠니는 한심하다는 듯 고개를 젓는다.


어쨌든 지금은 긴급상황. 소삭 팀장에게 한참 잔소리를 듣기야 하겠지만 그런 걱정할 시간이 없다. 인간한테 들킬 뻔했다는 것보다는 허가 없이 바람을 쓴 잘못으로 불려 가는 게 무조건 낫다. 더군다나 지구 시간으로 벌써 23년 차인 죠니에게 적재적소에 바람을 쓰는 것쯤은 어려울 일도 아니다. 죠니는 문제의 좌표로 작고 빠른 바람을 보내 구름을 흩뜨려 놓는 데 성공한다.






“어? 뭐야! 사진 찍으려고 했더니만 그새 달라졌네? 아~ 진짜 신기했는데. 그렇지?”


햇빛에 눈을 찡그리며 하늘을 향해 카메라를 들이대던 여자는 못내 아쉬워한다.


‘후, 하마터면 들킬 뻔했네.’


기상부 죠니는 가슴을 쓸어내린다.

다른 직원이 발견했다면 필시 사내 긴급 공지로 올렸을 터. 생각만 해도 머리 위에 먹구름이 드리운 듯 서늘해진다. 죠니는 비밀 메시지로 찔러 준 우담바에게 그가 제일 좋아하는 솜사탕 맛 구름과자 몇 봉지를 보내줘야겠다고 생각하고는 먹고 있던 구름과자에 느긋하게 손을 뻗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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