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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나라 오드리 Jul 06. 2021

달이 참 예쁘다

달에 영감을 얻은작품 이야기

문학작품에서 가장 인기 있는 소재는 자연이 아닐까?

그중에서도 달은 많은 영감을 떠오르게 하는 고마운 선물일 것이다.


요즘 어린이들은 그림책에서 달을 처음 만나겠지.

하야시 아키코의 [달님 안녕]

마거릿 와이즈 브라운의 [Goodnight Moon] 은 유아들이 제일 처음 만나는 달이 주인공인 그림책이다. 우리 집 꼬맹이들도 잠자리 들기 전 이 책들을 수없이 들었다. 번역본이라는 것이 조금 아쉽긴 하지만 정서적으로 너무나 따뜻하고 예쁜 책이라 아무래도 더욱 인기가 있지 않을까 싶다.


얼마 전 읽은 박완서 선생님의 수필집에서도 달과 관련된 따뜻한 이야기를 만났다. 손자를 데리고 공원에 나갔다가 달이 왜 자꾸 따라오냐고 너무나 의아한 표정으로 묻는 장면에 어린 손자가 얼마나 에쁜지 글로 다 표현할 수 없는 안타까움이 전해졌다.


이 외에도 수 없이 많겠지만 일일이 열거하면 이 글이 끝나지 않을 거니와 나의 배경지식이 얼마나 얕은지도 금세 드러날 테니 이쯤에서 오늘 하고 싶은 이야기를 시작해볼까 한다. 


얼마 전 우연히 너튜브 추천 동영상에서 가수 이승윤의 곡을 이선희가 부르는 장면을 봤다. 이선희는 알아도 이승윤은 몰랐고 내 폰으로 너튜브를 보는 아이 덕분에 의외의 영상도 보게 되는데 사실 한편으로는 조금 짜증도 났다. 똑똑한 AI가 알아서 내가 원하는 추천 동영상을 찾는 수고로움을 덜어주는데 거기에 아이가 끼는 바람에 흐트러진 듯한 불쾌함과 걸러내고 싶은 완벽함까지... 내가 제일 싫어라 하는 꼰대의 느낌을 고스란히 느끼게 하게 끔 만들고 있었다. 하지만  이선희가 불렀다 하니 궁금함을 참을 수 없어 반쯤 누운 삼각형을 누르고 말았다. 


밤하늘 빛나는 수만 가지 것들이

이미 죽어버린 행성의 잔해라면

고개를 들어 경의를 표하기보단

허리를 숙여 흙을 한 움큼 집어 들래

방 안에 가득히 내가 사랑을 했던

사람들이 액자 안에서 빛나고 있어

죽어서 이름을 어딘가 남기기보단

살아서 그들의 이름을 한번 더 불러 볼래


가사 한 글자 한 글자를 꾹꾹 눌러 부르는 듯한 그의 목소리가 가슴에 차곡차곡 새겨진다. 무엇보다 시처럼 쓰인 가사가 너무 좋아서 다이어리 한 켠에 고이 적어두었다. 난 꼰대였구나. 아이돌이 부르는 노래는 가사를 알아들을 수 없고 너무 가벼워 잘 듣지 않았는데 이런 가수도 있었다니 정말 의외였다. 어떻게 이런 곡을 만들었지? 그날 종일 무한 반복했고 아이와도 함께 곱씹어 들었다.


달을 소재로 한 신선한 가곡이 있다. 작곡가 김주원이 김용택 시인의 [달이 떴다고 전화를 주시다니요]에 곡을 붙여 만든 가곡이다. [달이 떴다고 전화를 주시다니요] 어느 날 모 시인이 김용택 시인에게 달이 너무 아름답다고 전화를 했단다. 거기에 영감을 얻어 이 시를 쓰셨는데... 헉 좋아서 하는 밴드도 노래로 불렀네? 한국인이 애정 하는 시 맞다.


달이 떴다고 전화를 주시다니요

이 밤 너무 신나고 근사해요

내 마음에도 생전 처음 보는 환한 달이 떠오르고

산 아래 작은 마을이 그려집니다.

간절한 이 그리움들을, 사무쳐 오는 이 연정들을

달빛에 실어 

당신께 보냅니다.


매달 한 번씩 찾는 클래식 공연에서 작곡가 김주원의 해설로 이 곡을 처음 들었다. 여자 소프라노의 밝고 경쾌한 목소리로 반가운 전화를 받은 설렘과 들떠있는 감정이 고스란히 담겨 듣는 내내 즐거웠다. 게다가 전화를 한 시인도 전화를 받은 시인도 남자이고 단순히 달이 떠서 그냥 전화를 걸었다는 에피소드에 마음이 따스해졌다. 특별한 것 없는 그 밤이 아주 가끔 뜨는 달도 아닌 매일 밤 뜨는 달로 신나고 근사해졌다고 말하는 시인이 어쩐지 부럽기까지 했다.


나 또한 잊히지 않는 달그림자가 있다. 

나는 어린 시절을 산골에서 보냈다. 아직도 청정자연을 유지하는 그곳은 산새가 아름답고 깊은 계곡이 곳곳에 숨겨져 있어 영원히 개발되지 않을 미지의 마을 같은 곳이다. 우리 가족의 유일한 이동수단은 오토바이 한 대. 온 가족이 그걸 타고 정말 많이도 다녔다. 맨 앞에는 동생이 그다음은 아버지, 나 그리고 마지막에는 엄마가 탔다. 한 번에 이동하는 건 쉽지 않아 짐을 먼저 옮기고 우리가 이동했다. 아버지는 가급적 사람들이 다니지 않는 곳에 자리를 잡고 텐트를 치셨다. 우린 시원한 계곡에서 발을 담그고 고기를 구워 먹었을 것이다. 사실 너무 어렸을 때라서 자세히 기억나지는 않는다. 어느 정도 날이 저물고 (산은 갑자기 해가 진다.) 우린 텐트 안에서 놀고 아버지는 밖에서 뭔가를 하셨던 것 같은데... 갑자기 아버지가 짐을 챙기셨다. 그리고는 우리에게 지금 바로 집으로 가야 한다고 하셨다. 우린 영문도 모른 채 짐을 챙기고 서둘러 길을 나섰다.  오토바이 한 대로 다 같이 이동할 수 없으니 엄마와 나는 걸어가고 아버지는 동생이랑 짐을 옮기기로 했다. 어딘지도 모르는 밤길을 엄마손을 꼭 잡고 달빛 하나에 의지해 길을 나섰다. 


깊은 숲이라 인적이 드물고 어둑어둑한 밤길을 아무 말없이 걷기만 했다. 엄마는 뭔가 많이 화가 나신 것 같았다. 어린 시절 엄마는 다정다감하기보다 차갑고 늘 화가 나있는 것 같았다. 도시에서 멋지게 살다 시골에 들어와 살려니 얼마나 답답했을까? 그때 그 밤길을 걸으며 엄마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어스름한 기억에 엄마가 눈물을 흘렸던 것 같기도 하고 내내 한 숨소리를 들었던 것도 같다. 그래서 그날의 달빛은 따스하고 즐거운 추억보다 슬프고 외로운 기억으로 남아있다. 그나마 엄마 손에서 느꼈던 따스한 온기가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노래 한 곡으로 잊힌 줄 알았던 기억의 저편에 숨겨져 있던 추억이 되살아났다. 

오늘 밤하늘의 달은 보이지 않겠지만 간절한 그리움을 담아 엄마에게 전화 한 번 드려야겠다.


p.s. 그날 아버지가 보신 건 호랑이 눈 빛이었답니다. 

    너무 두려워서 서둘러 그곳을 떠날 수밖에 없었지요.

    사진은 제 지인 소심한 막둥이님의 작품입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4Zq_mTq_vu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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