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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나라 오드리 Jul 05. 2021

법으로 맺어진 관계

시어머니와 나에 관한 이야기

누가 그랬다. 

결혼은 집안과 집안의 결합이라고.

뜬금없이 무슨 집안?

내가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한다는데 거기서 집안이 왜 나와?

난 재벌도 아니고 어느 가문의 규슈도 아니고 지금이 어느 시댄데...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으나

맞다. 결혼은 그냥 그 남자와의 일생을 약속하는 단순한 사랑놀이의 종착점이 아니었다.


"있잖아. 엄마가 얼굴 한 번 보자고 하시는데..."

나보다 훨씬 숫기 없는 내 남자는 만난 지 고작 두 달 즈음 지났는데 벌써부터 인사를 하러 가자고 어렵게 

말문을 열었다. 우리가 만난 건 이미 혼기가 꽉 찼을 때니까 서두르는 것도 이해가 가지만 그렇다고 벌써? 

인사하러 가면 결혼 이야기도 나올 텐데 머릿속에 온갖 계산이 오고 갔다. 내 남자는 너무 순수한 사람이지만 난 이미 산전수전 공중전까지 겪은 터라 좀 더 만나보고 싶었는데... 어찌 된 일인지 이 사람 말은 쉬이 거절하기가 너무 어려웠다. 나보다 훨씬 착한 사람이라 상처주기가 너무 싫었던 듯. 




"어머나 실물로 보니까 훨씬 예쁘네!" 

처음 만난 내 남자의 어머니는 정말 귀티 나는 사모님이셨다. 그때는 중국과 우리나라를 오고 가며 생활하셨는데 들고 계신 가방과 옷차림이 너무너무 고급스러웠다. 화려하지 않지만 어딘가 모르게 심상치 않은 분위기는 금세 나를 사로잡았고 우린 늦은 점심을 먹고 근처 찻집에 가서 차도 한 잔 마시고 헤어졌다. 그때까지만 해도 남자 친구의 신상조사가 끝나지 않은 시점이었기에 어머니를 본 첫인상은 너무 놀라웠다. 이렇게 쓰고 보니 난 정말 속물이었나보다. 내 남친은 정말이지 너무 평범한 아저씨였다. 서른 중반까지 제대로 된 연애를 해봤을까? 의심스러운 하는 생각이 들만큼 순진남에 옷은 너무 평범하고 집은 그냥 그렇다고 진짜 별 이야기 없는 하지만 너무 착하고 배려심 많은 아저씨였는데... 내가 만난 사모님은 남친의 어머니라고 하기엔 너무 먼 그런 느낌이었다. 


내 예상은 절대 빗나가지 않았고 그 후로 우리 결혼은 정말 빛의 속도로 진행되어 어머니를 만난 여름이 지나 추석 즈음 상견례를 하고 다음 해 봄에 바로 결혼했다. 내가 꿈꾸던 남편감이었으니 이 사람하고 결혼하면 고생은 안 하겠다 싶었다. 내가 꿈꾸던 이상형 무조건 착한 사람. 하지만 내 핑크빛 결혼을 회색빛으로 점점 변하게 만든 건 예상 밖의 인물이었다. 바로 시어머니. 

 

나는 예외라고 생각했다. 지금까지 대부분 어른들은 싹싹하고 붙임성 좋은 나를 무척 예뻐하셨고 (외모는 절대 아니지만) 그런 관계가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시어머니는 달랐다. 어머니는 완벽주의자였다. 


수건은 무조건 흰색만! 

색이 들어간 수건은 걸레로 쓰시고 주방에서 쓰는 행주와 욕실 수건은 단연코 흰색이 여야 했다. 


고기는 집에서 먹어야지! 

나가서 먹는 고기는 믿을 수가 없다. 게다가 환기가 안돼서 가슴이 답답해.


내가 생각하는 게 기준! 

다른 건 용납이 안돼. 조금이라도 다른 의견이 내비치면 미개인처럼 바라보셨다. 그런 생각을 어떻게 하니?


시어머니는 교양 있는 여자였다. 

며느리 집 비밀번호는 궁금해하지 말 것! 대신 장을 보시면 문 앞에 두고 가시고 전화로 내려오라고 하셨다.  대신 소고기는 꼭 삶아주셨는데 내가 환풍기를 잘 켜지 않는 게 못마땅하셔서 아이들이 크는 동안에는 꼭 기름기가 없는 부위로 삶아서 주셨다. 좋은 냄비에 적당한 시간으로 영양분이 손실되지 않도록.


숨이 막혔다. 지금까지 그렇게 살아오지 않아서, 너무나 자유롭게 살던 내가 뭔가 크게 잘못하고 산 것 같았다.  하지만 며느리로 아내로 엄마로 13년에 접어든 지금은 완전히 다른 관계로 접어들었다. 



"감기 안 떨어지면 다시 전화해. 또 해줄게."

올해 초 아이들이 고학년이 되면서 스케줄이 너무 빡빡했다. 숨 쉴 틈이 없는 아이들이 걱정이 됐는데 아니나 다를까 큰 아이가 먼저 감기에 걸리더니 엊그제 작은 아이도 그리고 나까지 감기에 옮고 말았다. 다들 목부터 시작해서 코로 기침으로 힘이 들었다. 주말마다 시댁에 가는데 이번 주는 너무 힘들어 못 가겠다고 했더니 어머니는 그럼 해놓을 테니 가져가라고 하시며 삼계탕을 끓여주셨다. 


어머니가 해주시는 삼계탕은 산해진미가 다 들어간다. 일단 요리에 반드시 지켜지는 원칙이 있다. 제일 중요한 건 신선도!! 어머니는 재료가 좋지 않은 건 시도조차 하지 않으신다. 아침 일찍 시장조사를 하시고 그날 가장 좋은 재료로 그날 음식을 하시며 양념은 절대 과하지 않고 재료 그 자체의 맛을 살리는 것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신다. 그리고 그 원칙은 어머니가 주방에 들어가신 첫날부터 아마 주방에서 나오실 때까지 지켜질 것이다. 


어머니, 아버지의 아침식사는 대충 5~6가지 정도. 제철에 나는 감자, 고구마, 마, 단호박을 드시고 거기에 비트, 양파, 무를 감식초와 간장에 절여 곁들이신다. 그리고 초란 하나씩, 치즈와 2~3가지 과일이 아침식사로 차려진다. 음식을 먹는 순서도 중요하다. 과일과 유산균을 먼저 드시고 단백질, 탄수화물 순으로 챙겨 드시며 영양제로 마무리. 음식의 궁합도 중요해서 함께 먹는 음식 재료가 서로 잘 어우러지는지 꼭 확인하신다. 


어머니는 현명한 분이셨다. 

자신의 자리에서 어떻게 해야 가족이 건강한지 편안한지를 늘 고민하시고 그에 맞게 행동하셨다. 


물건을 고르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건 어머니 마음에 들어야 한다는 것! 

너무 당연한 거 아니야 하겠지만 어디 물건을 고르다 보면 100% 마음에 들지 않을 때도 있지 않는가? 어느 정도 조율해보고 이 정도다 싶으면 구매하지 않는가? 하지만 어머니는 꼭 내 마음에 쏙 드는 물건 이어야 했다. 그래서 지금까지 난 어머니 생신선물을 한 번도 제대로 해보지 못했다. 언감생심 어찌 우리 어머니 맘에 드는 물건을 찾을 수 있을까? 


그런 어머니 맘에 드는 며느리가 된다는 것도 쉽지 않겠다 싶지만 어머닌 나를 정말 많이 사랑하신다. 내가 잘해서가 아닐 것이다. 그냥 있는 그대로 어머니께 솔직하게 대한다는 것. 처음에는 어머니가 말씀하시면 무조건 '네'였다. 하지만 지금은 서운하면 서운하다, 좋으면 좋다를 솔직하게 아주 있는 그대로 표현한다. 

"어머니 전 이번 여행에 제주도 가고 싶어요."  

어차피 가면 3박 4일 내가 봉사해야 하는데 이왕이면 내가 가고 싶은 장소로 가고 싶었다. 그래서 발바닥에 큰 점을 제거하는 수술을 하고 이틀 후에 제대로 걷지도 못하면서 여행을 나섰다. 


고부관계. 아마 끝까지 풀리지 않는 숙제일지도 모르겠다. 우리 집안에서도 나와 어머니는 사이가 좋지만 다른 며느리는 그다지 좋지 않다. 하지만 어느 관계든 그 열쇠는 내게 있지 않을까? 어머니와 관계가 좋아지기 시작한 건 어머니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기 시작하면서였다. 아마도. 대체 왜 그러시는 거야? 에서 그래 어머니는 그게 좋다고 생각하셨을 거야~ 정말 한 끗 차이 살짝 몸만 틀었을 뿐인데 우리 사이는 핑크빛이다. 


어머니가 끓여주신 삼계탕을 먹으며 눈물이 찔끔 났다. 며느리 아프다고 아침부터 시장을 몇 바퀴 도셨을까? 더 좋은 낙지며 전복을 찾아서 발품을 파셨겠지. 아마 닭은 냉장되어있는 걸로 가장 최근에 들어온 걸로 부탁하셨을 거야. 닭가슴살이 퍽퍽하지 않도록 시간 조절도 중요하고 육수도 따로 내셨겠지. 아이고 뜨거운 닭을 어떻게 살을 발라내셨을까? 우리 어머니. 주방이 환기가 잘 안되서 엄청 더웠을텐데 이거 끓이시느라 땀을 얼마나 많이 흘리셨을까?


아무래도 전생에 어머니랑 나는 연인이지 않았을까? 전생에는 내가 쪼끔 더 잘했나 보다. 이생에 이렇게 애정이 깊으신 거 보면. 여름이 더 깊어지기 전에 얼른 발톱 손질해드려야 하는데. 부끄러워서 집에서도 맨발을 못 내놓으시지만 예쁘게 페디큐어도 해드려야지. 이번 주말에는 일찍 가서 발마사지도 해드려야겠다. 얼른 가서 곱디 고운 우리 어머니 꼭 안아드리고 싶다. 어머니 저 왔어요.


p.s. Pixabay로부터 입수된 OpenClipart-Vectors님의 이미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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