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빛나라 오드리 Jul 02. 2021

지금 만나러 갑니다.

저는 도서관에서 아이들과 함께 그림책을 하고 있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영어 그림책이지요.

벌써 6년 차 프리랜서 강사.


어렸을 때 꿈은 선생님이었어요.

아버지의 반대로 다른 공부를 하고 전혀 매력적이지 않은 일을 10년간 했지요.

어떤 일을 10년 동안 하면 전문가라는데 사실 전 그 10년 동안 선생님이 되기 위한 준비를 

차곡차곡 해왔던 것 같아요.


제 꿈을 찾아간 건 육아를 시작하면서부터였어요.

아이를 키우는 데 있어 정말 탁월한 재능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지요. 주말부부로 아이 둘을 혼자 키웠는데 주변에 시부모님도 친정부모님도 가까이 계시지 않았지만 전 너무 즐거웠어요. 가끔 조카 둘이 오면 그 아이들과 함께 하루를 정말 알차게 놀 수 있었어요. 크리스마스나 어린이날처럼 특별한 날은 아이들과 어떤 이벤트를 할지 구상하고 몇 날 며칠을 걸려 혼자 이벤트를 준비했지요. 남편은 왜 사서 고생이냐고 물었지만 제가 좋아서 하는 일이니 힘든 줄도 몰랐어요. 그래서 제 꿈을 찾아갑니다. 아이들이 어린이집에 가면서 제법 내 시간이 생겨서 가까운 평생학습관과 도서관에 열심히 강의를 들으러 다녔어요. 대부분 그림책에 관련된 수업이었는데 그즈음 독서지도사, 스피치, 논술... 여러 자격증을 취득했어요. 그러던 어느 날 가깝게 지내던 강사님이 도서관에 자리가 났는데 괜찮은 사람이 없다며 고민하시길래 덥석 제가 해보면 안 될까요? 하고 발을 들여놓게 됩니다. 


첫 발, 첫 수업

수업을 준비하면서 아이들의 눈길을 끌만한 의상을 고민하다가 뽀로로 앞치마를 손수 만들었어요. 서둘러 아이들을 등원시키고  아주 큰 주머니에 아이들을 현혹시킬만한 사탕이며 장난감을 가득 넣고 수없이 연습한 애벌레 책을 들고 일찌감치 도서관으로 출발했어요.

"어머니, 저 오늘 첫 수업인데 너무 떨려요. 심장이 터질 것 같아요."

그날 도서관에 들어가기 전, 왜 시어머니께 전화를 해서 이런 이야기를 했을까요? 

시어머님의 아낌없는 응원을 받고 40분을 영유아 2세~4세 친구들과 신나게 수업을 했습니다. 그날이 아직도 잊히지 않는 건 아마 가슴이 벅차오르는 행복 때문일 거예요. 몸이 너무 힘들고 아파도 친구들 앞에만 서면 다른 사람이 되는 저는, 진짜 선생님이었어요.



늘 도서관에서 노래 부르고 춤추고 웃고 떠들며 아이들과 시간을 보냈는데 이제는 화면으로 아이들을 만나고 있죠. 다행히 일주일에 4일은 줌 수업을 하고 있어요. 처음에는 어린 친구들을 데리고 화면만 보며 뭘 해야 할지 막막했지만 그 시간마저도 얼마나 소중하고 행복한지 한 시간을 푹 빠져있는 저를 보면서 진짜 제 길을 찾았다고 생각했어요. 


줌 수업을 하다 보면 대면 수업보다 수업 준비가 훨씬 까다로워요.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자료와 책을 찾는데 정말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했지요. 강사 입장에서는 한 권을 준비해서 다양한 수업에 쓰면 참 좋겠지만 간혹 여기저기 제가 등장하는 수업을 동시에 등록해준 친구들 덕분에 제탕, 삼탕은 꿈도 못 꿨답니다. 그런 친구들 중에 최고는 단연코 주원이었어요. 물론 가명입니다. 주원이는 정말 제 찐 팬이었어요. 이제 6살 호기심 많은 장난꾸러기 주원이는 수업 시작 10분 전부터 들어와 오드리를 불러댔어요. 

"썬쌩니임~~ 오드리 선쌩님~ 얼굴이 안 보여요!!"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주원이보다 주원이 어머님이 더 눈길이 끌렸어요. 정이 들었을까요? 가끔 제 안부를 묻는 톡을 보내시고, 설에는 온 가족이 한복을 입고 제게 덕담을 전해주시는 동영상을 보내셨지요. 하루도 빠짐없이 주원이 옆에서 제 수업을 경청해주시고 혹시 자료가 틀린 부분도 하나하나 체크해주시며 정성을 다해주셨는데... 그날따라 유달리 주원이가 풀이 죽어 보였어요.

'선생님 친정엄마가 병원에 입원하셨는데 상황이 안 좋아요. 주원이는 사촌누나랑 수업에 참여할 텐데 잘할지 걱정이네요. 우리 주원이 응원해주세요.'

제 에너지원이었던 주원이가 그렇게 힘이 없으니 저도 기운이 빠졌어요. 그렇게 1주일이 지나고 다시 만난 수업에 주원이는 예전과 같은 배경에 씩씩하게 앉아서 저를 반겼지요.

"오드리 선생님~ 우리 할머니 하늘나라 가셨어요. 이제 거기서는 안 아플 거래요."

생각지도 못한 이야기에 목이 메어 입을 뗄 수가 없었습니다.

화면에 비치지 않는 말간 얼굴의 어머니께 어떤 위로의 말을 전해야 할지 몰라 결국 머뭇머뭇거리다 말았어요.


"선생님 주원이가 도서관에 갈 때마다 오드리 선생님 보고 싶다네요. 잘 지내시죠?"

선뜻 만나자는 말씀도 못하시고 안부인사만 전하는 어머님의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졌어요. 화사한 얼굴은 아니지만 순수하고 사려 깊은 미소가 아름다운 분이셨거든요. 늘 자연 속에서 아이와 함께 하는 모습에 제가 생각하는 육아의 가치관과 맞닿을 거라는 기대감까지 갖게 했지요.  비록 화면이지만 얼굴만 봐도 그날 제 컨디션이 어떤지 느끼시는 세심한 분이셨어요. 절대 먼저 만나자는 의사를 내비치지 않으셨지만 그분으로서는 가장 강한 텔레파시를 보내신 거예요. 어머님 저도 만나고 싶어요.



우리 만날 수 있을까요? 

먼 거리도 아닌데 약속이 계속 어긋났어요. 주원이를 위한 선물도 하나둘 챙겨뒀는데 벌써 3번째 재약속. 

정말 오늘이 아니면 안 되겠구나 싶어 그냥 무작정 출발했습니다.

"어머니 저 지금 출발해요. 주원이 하원 시간 맞춰서 도서관으로 갈게요~" 

"선생님 지금 오시면 퇴근길에 엄청 밀리실 텐데..."

그렇게 우리의 첫 만남이 이루어졌답니다.


선생님, 화면서뵈다 실물 뵈니 똑같고요, 꼭 연예인 만난 것처럼 좋았습니다.

저 타지 사람에 집콕이라 선생님과의 만남이 참 감사해요.

물질로 사랑으로 마음으로 열정으로 나누어주셔서 너무 송구스러워요.

감사드립니다.


어머니 제가 너무 감사해요. 

아이들과 함께 있을 때 제일 행복한 제 진짜 모습을 알아차려 주셔서 정말 감사해요.

자주는 못 뵙겠지만 그래도 우리 종종 만나요~ 



p.s. 사진은 Pixabay로부터 입수된 pieonane님의 이미지 입니다.


작가의 이전글 나꿈시가 무어냐고 물으신다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