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빛나라 오드리 Jul 08. 2021

너는 나의 보배
나는 너의 보배

이시대를살아가는열혈엄마이야기

밤마다 잠들기 전 아이 눈을 바라보면 묻는다.

"우리 딸 엄마한테 뭐라고?"

"엄마 보배~"


어린이집을 다니기 시작했을 때 엄마인 내가 가장 싫은 건 식탁에 약봉투였다.

첫째가 감기가 걸려 거의 나았다 싶을 무렵 둘째가 감기에 걸린다. 

그리고 둘째가 낫고 이제 병원 좀 쉬겠지 하면 다시 첫째가...

무슨 돌림노래도 아니고 일 년 열두 달 병원 문턱이 닳도록 드나들었다.

병원 진료와 함께 식탁에는 약봉투가 안 보이는 날이 없었다.

아이들이 건강한 편이었는데도 누가 감기 걸렸데 하면 거의 비슷하게 우리 집도 시작되었다.


그러다 약속이라도 한 듯 7살이 되니까 거짓말처럼 병원을 가지 않았고 그렇게 싫어하던 약봉투도 어느새 식탁에서 보이지 않았다. 이제 어지간한 신호는 휴식과 따뜻한 건강차로 답했고 그러다 보니 초등학교에 입학할 무렵에는 정말 예방주사 맞을 때 빼고는 병원을 찾지 않게 되었다. 하지만 그만큼 건강관리에 점점 둔감해졌고 그렇게 꼬박꼬박 챙겨 먹이던 영양제와 제철음식도 서서히 귀찮아졌다. 다행히 아이들은 별 탈 없이 잘 크고 있다. 


우리 집에는 아플 수 있는 요일이 있다. 일주일 중에 스케줄이 가장 한가한 날. 바로 주말이다. 작년에는 코로나로 아이들이 그다지 바쁘지 않았는데 올해 3월이 되면서 일주일 중 하루도 쉴 수 있는 날이 없었다. 그나마 주말이 좀 한가했고 아프려면 금요일부터 앓기 시작하다가 일요일은 완쾌! 월요일은 정상 컨디션으로 꼭 학교에 가야 했다. 이게 무슨 말인가? 누가 정해놓고 나 주말에 아파야지 하나?  아니나 다를까 둘째가 하루 앞서 금요일 아침부터 감기 증세를 보였다. 서둘러 병원에 다녀왔고 계획대로라면 일요일까지만 아파야 한다. 그런데 월요일 아침 머리가 너무 아프단다.  일단 학교에 다녀와. 가서 너무 힘들면 다시 집에 와. 하며 등을 떠밀었다. 결국 점심시간 전에 조퇴를 했고 나는 마음이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아.. 이러면 곤란한데. 오후 스케줄은 어떡하지?  우선 그럼 일단 월요일은 양보하고 오늘만 딱 오늘 하루만 더 쉬는 거야! 하며 내 마음을 저울질했다. 쉰다면 어떤 과목일 때 쉬는 게 더 나을지, 기왕이면 공부 학원은 갔으면 좋겠고... 여기까지 읽었을 때 우리 둘째는 과연 몇 학년일까? 고작 초등학교 3학년이다.


보호자분은 자연분만이 목표이신가 본데
우리는 아기가 건강하게 태어나고 산모분이 건강하게 출산하는 게 목표입니다.


얼마 전 우리 집 최애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에서 양석형이 아기와 산모의 건강보다 똑똑한 아기를 원하는 보호자에게 일침을 놓은 대사였다. 이 말이 오늘은 내게 이렇게 들린다.


어머니는 공부 잘하는 기계가 목표이신가 본데 

우리는 아이가 건강하게 자라는 게 목표입니다.


그렇지. 건강하게만 커다오. 가 늘 소원이었지. 식탁에 약봉투가 쌓여갈 때, 매 시간 맞춰 약 먹이기 힘들 때 제발 그냥 건강하기만 했으면. 가끔 가는 대학병원에 하얀 환자복이 너무 커 보이는 아이들을 보며 제발 너는 환자복 입을 일이 없기를 속으로 수없이 되뇌었지. 그런 내가 이제 요일을 정해서 아프기를 바라는 그런 간사한 엄마가 되어있으니... 


아이들이 잘 따라온다고, 권하는 거 크게 마다하지 않고 스스로 잘 챙겨서 잘해주는 아이들이 내심 고마웠고 그 마음과 함께 좀 더 잘했으면 하는 마음이 커가고 있었다. 보이지만 안 보이는 척, 난 아닌 척하며 아이의 행복이 중요한 엄마라고, 난 다르다고 했으나 나도 크게 다르지 않은 이 시대의 대한민국 열혈 학부모였다. 아이가 회복단계에 있는 지금도 하루빨리 괜찮아져서 얼른 정상 스케줄을 따라줬으면 하는 마음이다. 누구나 그럴 수 있어 싶으면서도 조바심 나는 내가 너무 미웠다. 여유 있게 이 기회에 푹 쉬어야지 하는 마음보다 오늘 쉬면 다음 보강이 힘들 텐데... 하는 마음이 더 컸다.


머리가 아프다고 엉엉 우는 둘째 앞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너무 겁이 나 서둘러 병원으로 가며 제발 큰 병이 아니기를 바라고 또 바랐다. 두통과 구토를 동반한 증세는 어떤 병의 징후였던가 자꾸 되새기며 아닐 거야 아니기를 주문처럼 외웠다. 다행히 여러 검사를 거쳐 증명될 무서운 병을 의심할 정도는 아니어서 간단히 약을 처방받았고 오후에는 너무 힘들어해서 수액을 하나 맞았다. 그렇게 힘들다고 울며불며 자지러지더니 수액을 맞고는 빙긋 웃으며 편의점 소시지가 먹고 싶다는 아직은 철없는 어린아이였다. 


아이들이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 내가 하는 일을 확장하고 싶었다. 정말 잘할 자신이 있었고 하고 싶었다. 하지만 나를 제외한 우리 집 어느 누구도 바라지 않았다. 그때 내가 결심한 건 엄마 역할에 충실하자 였다. 아직은 엄마로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고 마음먹었는데 어떤 엄마로 살기로 결심했는지 점점 잊고 있었다. 분명 건강보다 공부가 먼저를 강요하는 엄마는 아닐 텐데... 밤마다 하는 질문에 답을 다시 한번 생각해본다. 내가 생각하는 보배는 어떤 보배일까?


"우리 딸 엄마한테 뭐라고?"

"엄마 보배~"



p.s. 사진은 다양한 꿈 중에 화가 꿈도 꾸는 둘째 미술작품입니다.

      


작가의 이전글 달이 참 예쁘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