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빛나라 오드리 Jul 20. 2021

엄마의 기도

이른 새벽. 작은 소리에 몸이 먼저 반응한다. 아직 날이 밝으려면 좀 남았는데......

잠시 쉬어갈 겸 친정에 들러 엄마 옆에 잠이 들었는데 늘 그렇듯 엄마는 새벽기도를 올리고 계셨다. 

향을 피우고 선을 하신 후 기도를 하시겠지. 

아침을 준비하시다가 잠시 짬을 내 씻으실 거야.

그리고 곱게 화장을 하시고 아침 식사 마무리. 

엄마가 국을 간 보실 때쯤 난 졸린 눈을 비비며 마지못해 일어날 거다. 

그리고 다 된 아침을 그냥 옆에서 거들기만 하고 아침부터 진수성찬을 만끽하리라! 

너무나 뻔뻔한 딸은 아직도 철이 덜 들었다.


엄마는 늘 한결같았다. 가끔 사람일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화를 내시는 일이 거의 없었고, 지친 기색도 없었다. 늘 반찬은 십 인분. 손이 어찌나 크신지 한 번 반찬을 하시면 윗집, 아랫집, 나 그리고 우리 시댁까지 챙겨주셨다. 그렇게 에너지가 넘치는 분이셨다. 

"엄마 많이 바빠요?" 하고 물으면 늘 대답은 똑같았다.

"아니 엄마 놀고 있어요~" 

방금 밭에서 돌아오신 걸 알지만 목소리만은 경쾌했다. 

그렇게 다른 사람들에게 에너지를 고루 나눠주는 분이셨다.


엄마의 최애 간식은 떡볶이!

고3. 엄마는 담석을 오랜 기간 앓고 계셨는데 내가 수능이 끝나자마자 수술을 하셨다. 고통이 어지간하셨을 텐데도 수술실에서 링거대를 끌며 당당히 걸어 나오셨다. 그리고 학교 끝나고 엄마를 만나러 갈 때마다 난 떡볶이를 사들고 병실에 갔었다. 병실 침대에 하얀 가운을 입은 엄마와 나눠먹는 떡볶이는 정말 꿀맛이었다. 엄마와 나의 최애 간식은 아직도 떡볶이. 남편은 친정에 갈 때면 항상 매운 떡볶이를 단계별로 사들고 간다. 


무슨 일이 있어도 화장은 필수!

엄마의 맨얼굴을 본 건 거의 열 손가락에 꼽을 정도. 엄마는 자기 관리가 철저한 분이셨다. 여자의 맨얼굴은 게으름의 표시라며 내가 대학에 입학하자마자 화장품을 사주셨고, 결혼 후 아이들이 어렸을 때 맨얼굴로 집에 가면 화장은 하고 다니라며 핀잔을 주셨다. 그리고 엄마의 맨얼굴을 볼 수 없는 만큼 엄마가 새벽기도를 거르는 모습도 거의 볼 수가 없었다.


엄마의 기도는 어떤 내용이었을까?

우선 우리 가족의 안녕이었을 것이다. 불나방처럼 정의를 위해서라면 무조건 뛰어드는 아버지의 안녕을,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끝까지 해보겠다는 둘째의 열정을,  아직 제대로 여물지 못한 나의 안위를 위해 새벽기도를 올리셨겠지. 정작 자신을 위한 기도는 했을까?


엄마가 기도를 하기 시작한 건 흔들리는 마음을 잡기 위해서였다. 아버지를 따라 시골로 내려오신 후 마음고생이 심하셨는데 그때 자신의 마음을 다스리기 위해 기도를 시작하셨고 그 기도가 지금까지 이어졌다. 그리고  엄마를 살린 건 기도였다고 한다. 그래서였을까? 엄마는 속내를 잘 드러내는 법이 없었다. 가끔 아버지에게 크게 화가 나거나 서운한 일이 있어도 그 자리에서 버럭 하시지 않았다. 늘 경계를 늦추고 자신의 마음을 다독이시는 분이셨다. 


묵묵히 자신의 자리에서 흔들림 없이 계셨기에 우리 가족은 지금까지 안녕하다.  그 공을 자신에게 있다고 주장하는 아버지와 고운 얼굴이 하나 둘 사라져 가는 엄마를 지극히 사랑하는 동생 그리고 든든하지만 아직 철이 덜 든 나까지. 무엇보다 엄마에게 열성팬이 넷이나 생겼는데 바로 할머니를 껌딱지처럼 붙어 다니는 손녀들이다.  할머니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날 사랑둥이들 덕분에 그나마 엄마는 웃을 일이 많으시다.


엄마와의 추억이 거창하지 않은 건 늘 한결같았기 때문이리라. 

그래서 이 작은 페이지가 한편으로는 너무 아쉽게도 느껴진다. 





작가의 이전글 아버지의 눈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