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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나라 오드리 Jul 21. 2021

거기 누구 있소

메아리에 드는 생각

새벽마다 걷는 산책길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있다.

매일 아침 같은 시간에 비슷한 장소에서 만난 사람들은 나도 모르게 동질감을 갖게 된다.

'아 저분들도 새벽산에 참 맛을 아시는구나.'

이제 막 어둠을 걷어낸 산은 비밀스러운 공간을 조금씩 내어주며 나를 조용히 품어줬다.


산을 찾기 시작한 건 아주 어렸을 때 아버지와 함께 였다. 

회사원이 되어서는 산악회에 가입해서 야간산행이며 새벽산을 주로 찾았고 운동을 좋아하는 친구와는 남들이 스키 탈 때 옆에서 산을 오르고 먼 산도 일부러 찾아 산 아래에서 하룻밤을 묵었다. 언젠가 여름휴가로 설악산 아래에서 간단한 텐트 하나로 2박 3일을 묵으며 매일 산을 오르고 내린 경험은 잊을 수가 없다. 내 두 발로 걸어 온 몸으로 익힌 산은 내게는 제일 편안한 안식처였다.



지난해 봄, 코로나로 집에 만 있는 아이들을 데리고 새벽마다 걷는 산에 데리고 다녔다. 새벽엔 혼자, 오후엔 아이들을 데리고. 물론 쉽지는 않았다. 하지만 쉽게 거절할 수 없었다는 것을 알았는지 금세 수긍했고 우리는 엄청난 선물을 받았다. 바로 다람쥐의 서식처를 발견한 것이다. 작은 수풀 아래 아이 손바닥만 한 다람쥐 새끼들이 얼핏 보아도 6~7마리 정도는 되어 보였다. 그리고 그런 둥지 두세 군데가 근방 500m 안에 드문드문 눈에 띄었다. 이제 막 세상 밖으로 나온 아기 다람쥐들은 호기심과 두려움으로 어느 누구 하나 쉽게 나가지 못하고 그 좁은 입구에서 들어오고 나가기를 반복했다. 간혹 몇 발짝 나갔다 얼른 다시 둥지로 돌아가 몸을 숨기기 바빴다. 그때부터 우리는 산에 가야 할 목적이 생겼다. 아기 다람쥐 먹이 주기.


하루가 멀다 하고 매일매일 다람쥐 마을을 찾았다. 가는 길에 곳곳에 사과 조각, 해바라기씨, 땅콩 등을 놓아두면 돌아오는 길에 어느새 말끔히 없어졌다. 다람쥐들이 커가는 모습을 보는 것도 큰 보람이었다. 날마다 혹시 잘못된 다람쥐가 없는지 수를 헤아려보고 다람쥐와 숨바꼭질해가며 정을 쌓았다. 그중에 유난히 겁이 많은 녀석이 있었는데 다른 형제들이 모두 마실을 나가도 오직 그 녀석만은 둥지를 지키며 누가 자기에게 간식을 물어다 주지는 않을지 기대하고 있었다. 어느 날은 다람쥐를 30마리 가까이 만난 적도 있었다. 처음에는 탄성을 지르고 그리고는 숨을 죽이고 각자의 시간에서 다람쥐와 이야기를 나눴다. 그러나 자연과 누린 그 시간은 오래가지 않았다. 


많은 비가 내려 나무가 쓰러지고 흙이 쏟아져 내리는 바람에 길이 통제되었고 보수공사를 하는 동안 우리는 다른 길을 걸었다. 그리고 계절이 바뀌었고 어느덧 다시 봄이 왔다. 

'올해 다람쥐는 새끼를 몇 마리나 낳았을까?' 수첩에 표시해 둔 날짜를 보며 기다렸다. 그동안 다람쥐에게 줄 간식도 야금야금 모아 배낭을 메고 이제나저제나 나올지 모를 다람쥐를 찾아갔다. 하루, 이틀, 일주일... 그러나 한 달이 지나도록 다람쥐는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다. 어디를 둘러봐도 다람쥐는 보이지 않았다. 자취를 감춘 것이다. 우린 실망을 감출 수가 없었다. 너무도 아쉬웠다. 

'어디로 갔을까? 그들은 더 좋은 자리를 찾았을까?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는 더 깊은 산속으로 들어갔겠지?'

그렇게 열심히 매일 산에 오르며 찾아다녔지만 허사였다. 아이들은 좀처럼 산에 따라가지 않았다.



다람쥐에 쏠렸던 관심이 사람에게로 옮겨간 건 얼마 되지 않았다. 매일 같은 길에서 만난 사람들은 저마다 사연이 있겠지. 그 사연을 가지고 이 새벽에 이 길을 찾았을 것이다. 원래 다른 사람의 삶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었던 터라 그저 가벼운 목례 정도 나눴는데 간혹 반갑게 인사를 나눠주시는 어른들은 겉으로는 나도 환하게 웃었지만 내심 속으로는 썩 달갑지 않았다. 

"아이고 젊은 사람이 부지런도 하지. 잠도 많을 텐데 벌써 나왔네."

"오늘은 왜 혼자야? 어디 갔어?"

"어제는 안보이데? 힘들지 그럼 힘들어. 그럴 땐 쉬는 게 약이야."

이런 소소한 관심들이 내겐 부담이었다. 


옛날에는 산에 오르면 무조건 야호부터 외치고 봤지만 이제 산은 조용히 혼자만의 사색을 즐기는 곳이라고 생각했다. 게다가 새벽에 왜 시끄럽게 소리를 질러대는지 이해가 안 갔다. 그럼에도 옆에 사람이 있든 말든 걷다가도 무조건 소리를 지르는 다정한 노부부를 만났다. 그 부부는 나와 거의 비슷한 시간에 산을 올라 코스도 비슷해서 걷는 내내 거리를 좁혔다 늘렸다 하며 거의 함께 걷다시피 했는데 어느 정도 걷다 보면 여자분이 먼저 소리를 냅다 질러댔다. 그 소리라는 게 야호라기보다 목청을 있는 대로 크게 내지르는 것이라 근거리에 있는 나는 그 소리가 그렇게 거슬릴 수가 없었다. 그래서 가급적 서둘러 먼저 걸어가거나 아니면 느긋하게 걸어 거리를 유지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날따라 일행분이 많아 함께 걷는 분들이 거의 길을 가로막고 걷고 계셨다. 조용히 앞지를 틈을 찾던 나는 그 여자분이 또 한 번 내지르는 소리에 몸서리가 쳐졌다. 정말 화가 날 정도였는데 그렇게 고함을 지르고 난 그분이 하시는 말씀이 내 귀에 꽂혔다.

"이렇게 소리를 지르면 저쪽에서 답이 와요. 야아 아아아아~~~ 호! 

그런데 그 의미가 뭔 줄 알아요? 

잘 지내지요? 오늘도 건강히 산에 왔습니다. 이런 말이에요. 하루라도 답이 안 오면 마음이 불안해요. 

저 양반이 어디가 아픈가? 왜 오늘은 답이 없지? 

얼굴 한 번 못 본 사람인데 마음이 쓰여요. 그러다 다시 답이 오면 아이쿠야 오늘은 왔구나. 감사합니다.

하게 되지요. "


이제 80을 바라본다는 그 노부부는 여기서 한 번, 반대쪽에서 한 번 그렇게 답을 주고받는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 양반 소리가 예전 같지 않다며 그렇게 우렁찼는데 이제 내 소리도 한 번에 안 나온다고 씁쓸해하셨다. 


삶이란 무엇일까? 고작 이 나이로 세상 시끄럽게 한다며 유난을 떤다고 저속한 생각을 했던 내가 너무 부끄러웠다. 단순히 그 한 마디에 그렇게 많은 뜻이 담겨있을 줄이야. 한 번도 보지 못한 누군가 내지른 야호에 답을 하며 안녕을 바라는 그 분들의 따스한 마음이 내게도 전해졌다. '우린 잘 있어요. 거기도 건강히 잘 있지요?' 한 시대를 함께 살아간 서로에게 위로와 복을 빌어주신 그 넓은 마음을 어찌 내가 알까? 그 짧은 순간에 한없이 가벼웠던 나를 돌아보며 마음속으로 간절히 빌었다.

내가 이 산을 찾는 내내 저분들의 메아리를 늘 들을 수 있도록 해 달라고.

'우린 잘 있어요. 내일 또 건강히 만나요~~'


그대 소식

3월의 한낮에 하얀 눈이 내리면

그대 소식을 전한다 하였네

바쁜 일상에 그대 생각은 

저편 풍경 속이었음을 고백하네

눈인지 비인지 알 수 없는 그 한낮

거짓말 같은 순간의 속삭임에 귀를 기울이며 

그대 이름을 부르는 순간

다시 화창한 봄날의 하루가 되었네

                       - 꽃이 너에게 간다 김현경 中


p.s. 사진은 함께 동행해 준 오래된 벗이 준 선물입니다.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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