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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나라 오드리 Jul 23. 2021

삼신할미가 특별히 더 사랑한

삼신할미 작품


너희들 삼신할미가 누군 줄 아니?

그분이 어떤 분인지 알기나 해?


사람이 태어나는 건 다 그 할머니 소관인데

그분이 어떤 사람을 계획 없이 만들겠니?


30명이나 되는 우리 반 아이들을

아무 생각 없이 만들었겠냐고?


벼슬할 사람은 나랏일 잘 돌보라고

머리 좋은 사람은 로켓도 만들고 비행기도 만들라고

부지런한 사람은 씨 뿌리고 가꾸어 착한 사람들

먹여 살리라고


크게 쓰실 계획으로 만든 것이니

삼신할미 작품 함부로 대하지 마라.


백민주 시



어린이처럼 귀한 존재가 없다. 나이가 어릴수록 더했다. 길을 가다가도 어린 아기들을 보면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 20대, 30대 예쁜 핸드백 한쪽 구석에는 늘 작은 주머니에 달달하고 무지개색으로 곱게 단장한 간식거리가 있었다. 그러다 꼬마친구들을 보면 나도 모르게 하나씩 내어주고는 했다. 지하철에서 만난 꼬마들에게 자리를 내어주고 엄마 손을 꼭 잡고 아슬아슬 서있는 친구들은 넘어지지 않도록 늘 손을 내어줄 수 있게 준비하고 있었다. 


내 마음은 여전히 어린아이였다. 어린이가 귀해 보이는 건 아마도 나의 반쪽 짜리 어린 시절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 멈추었다. 그렇다고 내 어린 시절이 불우했다거나 보잘것없었던 것은 아니다. 다만 사춘기 부모님과 멀리 떨어져 살며 너무 외로웠던 모양이다. 그 마음 때문인지 나도 모르게 어린이들을 보면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한 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사내에서 동료들과 여름휴가를 갔다. 우린 부장님이 별장으로 사두신 아파트에서 하루 묵었는데 그 집에서 함께 간 아이들과 하나가 되어 정신없이 놀았다. 그땐 왜 그렇게 눈치가 없었는지 그냥 아이들과 노는 게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결국 막내였던 나는 눈총을 받았고 아직 철이 덜 들었다는 칭찬인지 욕인지 모를 소릴 들었다. 뭐 그게 그렇게 큰 사건은 아니지만 이런 일은 그 뒤에도 종종 있었다. 


어른들은 좋지 않을지 몰라도 아이들은 늘 내편이었다. 가족동반 회식자리에서 자주 보는 과장님 3살 아들은 나를 위해 꼭 나가기 전에 신발을 가지런히 놓아주었고 내가 남편을 소개하는 첫자리에서 장난감 칼을 휘두르며 이모를 잘 지켜달라고 했다. 내 손을 꼭 잡고 화장실까지 데려다주거나 함께 깊은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유치원 여자 친구 문제.


하지만 결혼해보니 나와 비슷한 어른들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어린아이 둘을 데리고 지하철을 타면 눈치가 보였고 특히나 출퇴근 시간은 가급적 피해 다녔다. 가끔 유모차를 끌고 급히 횡단보도를 건너다보면 그렇게 빨리 가면 유모차 안에 있는 아기가 얼마나 힘들겠냐며 핀잔을 주셨다. 특히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는 젊은 부부보다는 어르신들이 훨씬 많은데 주변에 아이들이 없다 보니 내게 보이는 관심이 가끔은 부담스러웠다. 


다른 아이들은 그렇게 예쁘던데 내 새끼는 왜 이렇게 힘든지... 물론 예뻤다 하지만 힘들었다. 예쁘다와 힘들다는 큰 관계가 있는 단어다. 예쁘지 않다면 힘들 이유도 없다. 예쁘니까 내가 해주고 싶은 게 많았고 해 주는 게 많으니 바라는 것도 늘었다. 당연히 힘들 수밖에... 둘 중에 하나를 포기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었다. 


아이들을 좋아하니 결국에는 아이들과 관련된 일을 시작했고 내 꿈이 되었다. 올해 운명처럼 만난 김소영 에세이 '어린이라는 세계'는 이런 내 마음을 너무나 잘 표현한 책이었다. 그럼에도 내가 생각지도 못한 것들을 실천하고 있었다. 작가는 글쓰기 교실을 운영하면서 아이들을 어떻게 대하고 있는지 편안하게 이야기하고 있다. 아이들이 불편함을 느끼지 못하도록 재킷을 입혀주고, 늘 존대를 하고, 아이들의 품위를 지켜주기 위해 노력하는 어른이었다. 


나는 어떻게 어린이의 품위를 지켜주고 있을까? 

우선 내 몸에 밴 습관은 눈을 맞춰주는 것이다. 키가 큰 편이라 아이들과 이야기할 때는 무릎을 굽혀 최대한 낮춘다. 그리고 손을 잡아주거나 아낌없이 내가 너의 이야기를 듣고 있어라는 눈빛과 몸짓을 보낸다. 이렇게 하면 처음 본 친구들도 어느 정도 마음을 열어준다.

친구가 만약에 기분이 좀 언짢아 보인다면 혹시 선생님이 잠시 안아줘도 될까요? 하고 물어본다. 생각보다 아이들은 너무 쉽게 안겨 아주 포옥 내 심장에 귀를 대고 잠시나마 위안을 찾는다. 그리고는 내 눈을 바라보고 "이제 괜찮아졌어요. 감사해요." 하고 정중하게 말한다. 

선택의 기회를 자주 준다. 좋아하는 색, 모양, 놀이를 선택할 수 있도록 한다. 준비하는데 시간이 좀 걸리고 서로 의사를 조율하려면 가끔 문제도 생기지만 내 경험으로는 내가 신사적으로 대한다면 상대도 내게 무례를 범하는 일이 많지는 않았다.

잠시 기다려준다. 이건 정말 인내가 필요하다. 특히 낯을 많이 가리는 친구들은 내게 의사표현을 할 때까지 무조건 기다린다. 의사표현이 꼭 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쪽지를 주고받거나 귓속말로 자신의 의견을 속닥속닥 전할 수도 있다. 아니면 기호로 나타내 달라고 부탁하기도 한다. 



내가 어린이를 좋아하는 이유는 내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해도 괜찮기 때문이다. 슬프다. 기쁘다. 즐겁다. 화가 난다. 이런 감정 표현들을 어린이는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 나이가 어릴수록 더 그렇다. 친구가 색칠한 물고기가 너무 예쁠 때 아이들은 있는 대로 탄성을 지르며 감탄을 한다. 그런데 십 대들은 순수한 칭찬을 하기보다 때 묻은 칭찬을 한다. "넌 왜 그렇게 글씨를 잘 썼어?"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마음이 아프다. 그리고 나도 뾰족한 말을 내뱉게 된다. 나는 더하다. 누군가 좋은 일이 있을 때 내 마음이 있는 그대로 칭찬해주기가 쉽지 않은 경우가 더 많았다. 특히나 내가 하고 싶은 일일 경우는 더욱. 


어쩌다 보니 어린이에게 치유받고 어린이에게 사랑받는 어른이 되었다. 세상에 나만큼 복 많은 사람이 또 있을까? 아무래도 난 삼신할미에게 엄청 이쁨 받았나 보다. 우린 모두 삼신할미 작품이니 그 기억이 조금이라도 더 남아있는 이들이 나를 알아보는 게 아닐까 싶다. 나만의 착각일지라도 오래도록 아이들을 만나며 사랑을 주고받으며 살고 싶다. 그리고 어린이의 품위를 지켜주는 더 많은 어른들이 있었으면 좋겠다. 어쩌면 나도 몰랐지만 삼신할미가 특히나 더 예뻐했던 작품일지도 모르니.



p.s. 사진은 Pixabay로부터 입수된 Madlen Deutschenbaur님의 이미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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