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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나라 오드리 Aug 02. 2021

세상에 뿌려진 관심만큼

관심은 곧 사랑이다.

연일 계속되는 무더위로 잠을 제대로 잘 수가 없었다. 그나마 어젯밤에는 선선해서 좀 잘까 싶었지만 뜻하지 않은 불청객으로 결국 4시간 남짓 잤을까? 더위보다 더한 건 모기였다. 아침은 어김없이 밝아왔고 더 자고 싶었지만 밤새 무섭게 내린 비로 걱정되는 게 하나 있었다. 다름 아닌 거미였다. 


새벽 5시에 일어나 산에 오르면 30분쯤 된다. 한 시간 반 정도 걷고 스트레칭을 마치고 내려오는 길에 드문드문 거미줄이 보였다. 그런데 그 거미줄에 낯선 무언가가 대롱대롱 매달려있었다. 꼭 연한 갈색 껍질에 싸인 통통한 잣 모양으로 크기가 다른 게 하나, 둘 맺혀있었다. 신기한 모양에 처음에는 먹이를 아주 잘 감싸 놨다 생각했다. 


그리고는 무심코 지나쳤는데 얼마 뒤 아이와 가서 거미줄을 보고 요 녀석 아직도 안 먹었네 하고는 사진만 찍고 왔다. 이틀 뒤 내가 진행하는 수업시간에 아이들과 방학 이야기를 나누다가 찍은 사진을 함께 보는데 나는 너무 놀라고 말았다. 내가 찍어온 사진은 다름 아닌 알주머니였던 것이다. 그리고 우연히 그 알주머니에서 새끼거미가 나오는 장면까지 포착했다. 사진 찍는데 집중하느라 새끼거미가 나오는 줄도 몰랐던 나의 무지함에 정말 어처구니가 없었다.


아이들은 너무 신기해하며 다양한 이야기가 오고 갔다. 저 안에 도대체 몇 마리나 있겠는지 어떻게 저 주머니가 매달려있을지, 저 새끼 거미들은 무엇을 먹을지... 평소 관심도 없던 거미에게 모든 사랑과 찬사가 쏟아졌다. 어미 거미가 애썼다는 둥 어떻게 미역국이라도 끓여주고 싶다는 둥 이 더운 삼복더위에 출산한 사람이 있는지... 매일 미라클 모닝을 외치는 단톡방에서도 거미를 주제로 다들 손가락이 바빴다.



오늘 아침 내가 너무나 걱정된 건 거미였다. 

거미줄이 괜찮을까? 그 새끼거미들이 거친 빗줄기에 다 떠내려간 건 아닐까? 서둘러 옷을 입고 산으로 향했다. 사실 일 년을 산에 다녀보면 정말 가고 싶지 않은 날씨가 있다. 바로 무더위 속에 찾아온 비 끝인데 이유인즉 그냥 비가 내렸다면 선선하고 코끝도 촉촉하니 기분이 좋다. 하지만 더위와 함께 찾아온 비는 너무 습하고 달려드는 모기 때문에 걷기가 너무나 힘들다. 오늘 나는 그 불편함을 모두 감내하고 거미의 안부를 묻겠다고 산으로 간 것이다. 


다행히 거미는 난간 아래 적당히 비를 피해 잘 숨어 있었다. 게다가 이웃 거미들도 하나 둘 알주머니를 매달고 부푼 배를 힘겹게 이고 알주머니의 상태를 살피고 있었다. 어느새 나는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알주머니를 세우고 있었다.  평상시 아무 관심도 없던 거미줄에서 거미의 출산을 본 이후로 이제 그냥 단순한 거미가 아니었다. 자그마치 열개의 알주머니가 조용히 때를 기다리고 있었다.


거미뿐만이 아니었다. 우연히 지나다 만난 사슴벌레를 길에서 다시 숲으로 돌려보내 주고 아스팔트에서 힘겨운 싸움을 하고 있는 지렁이는 얼른 흙 위로 옮겨주었다. 길바닥에 떨어진 나뭇잎을 보고 누군가의 표정을 떠올려 웃음 짓고 지나치는 사람들에게 좋은 하루의 인사말을 건네는 나는 분명 다른 사람이었다.


현미가 넉넉히 들어간 잡곡밥처럼 문장을 하나씩 곱씹어 읽고 있는 책 속에서 이런 문장을 발견했다. 


책을 읽을 때는 물론이고 남의 말을 듣거나 술을 마시다가, 또는 꿈속에서 난데없이 생각난다. 생각이 생각을 불러오는 와중에 어느 순간 통찰이 생긴다. 이처럼 통찰은 관심 있는 특정 분야나 주제에서 비롯된다. 관심사가 없는 사람에게 통찰은 찾아오지 않는다.
강원국 [나는 말하듯이 쓴다]


그렇다. 관심이었다. 어떤 특정분야에 관심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매일 지나치는 순간에서 관심을 빼놓고 지내온 과거와 관심을 둔 지금은 너무나 다르다. 단순히 관심은 그냥 관심에서 끝나지 않았다. 삶에 에너지를 불어넣어 주고 나를 따뜻하고 여유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도록 해주었다. 그동안의 관심사는 오로지 나와 가족이었다면 이제 주변을 둘러보고 다독일 여유가 생긴 것이다. 


아직까지 내게 통찰력은 찾아오지 않았다. 하지만 내가 느낀 바를 글로 적고 누군가 공감할 수 있는 따뜻한 공간이 될 수 있는 자리는 만들고 있는 것 같다. 어쩌면 지금 내게 더 필요한 건 주변을 살피는 관심일지도 모른다.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선물처럼 통찰력도 찾아오겠지.


이제 작은 생명에게 안부를 전한다. 곧 태어날 수많은 새 생명에게도...

알주머니에서 탈출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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