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빛나라 오드리 Jul 31. 2021

네일은 아무나 하나

네일에 관한 이야기 1.

하루에도 열두 번 물을 묻혀야 하는 나는 대한민국 아줌마다.


여름이 되면 눈길을 끄는 광고가 있다.  바로 네일~ 

손가락이 길고 하얘서 손 예쁘다는 소리 좀 들었는데 

그래서 조금만 손질해도 케어 받았냐는 질문을 받고는 했다.

20대 내가 가장 선호하는 매니큐어 색은 바로 연한 산호색!

매니큐어를 바르려면 과정이 있다.

우선 하루 전날 손톱과 손에 영양크림을 듬뿍 바르고 잔다. 

손톱에 립밤을 바르면 더 좋다. 그리고 다음 날 우선 손을 깨끗이 씻고 베이스를 바른다.

다음 내가 좋아하는 산호색을 바르고 다시 마무리로 투명한 매니큐어로 한 번 더 코팅해주면 끝!

조금 두께가 있어서 꼭 잠자기 전에 바르고 얌전히 잔다.

젊었을 때는 이렇게 신경 써서 관리했는데...

임신하고 나니 남편이 태아에게 별로 좋지 않을 것 같다는 소리에 바로 그만뒀다.

그렇게 딱 십 년이 지났다.


그동안 한 번도 안 한 건 아니지만 가끔 그렇게 손질을 해도 그 예쁜 손은 2~3일 후면 바로 

생채기가 났다. 설거지며 청소, 손빨래를 하다 보면 어느새 여기저기 뜯겨 보기 흉하게 되어버렸다. 

그런데 작년 어느 날 가깝게 지내는 언니가 패디를 하고 왔다. 

발톱에 정말 예쁘게 그림을 그린 듯한 관리를 받고 온 거다. 그렇게 화려하지 않지만 반짝반짝 예쁜 발이

내 눈에 들어왔다. 

"어머 언니 언제 케어 받았어? 너무 예쁘다." 감탄을 하며 언니 발을 연신 뚫어지게 바라봤다.

"응, 손은 바로 떨어질 거 같아서 도무지 안될 거 같고 발에 한 번 해봤어. 이거 요즘 핫해~" 

언니는 젤 네일이라며 생각보다 쉽다고 이야기해줬다. 

언니의 추천으로 집에 와서 바로 검색을 해봤다. 

매일 울리는 K톡방 상단에 광고 중인 5HR에 들어가서 좋아하는 디자인을 신중하게 고르고 드디어 도착!

생각보다 훨씬 예쁜 색감과 구성에 너무 맘에 들어 그날 바로 작업에 들어갔다.

설명서를 꼼꼼히 읽고 발을 우선 깨끗이 닦은 후에(물론 전날 밤 영양크림을 듬뿍 바르고 잤다.)

발톱을 곤두세워 꼼꼼히 알코올 솜으로 닦아주고 하나하나 정성을 다해 붙였다. 

이렇게 붙이는 게 끝이 아니라 램프에 한 번 구워줘야 하는데 과정이 그다지 복잡하지 않았고 

꼭 소꿉놀이하는 듯 즐거웠다. 

"엄마 뭐해?" 

이 시간쯤이면 책 보고 있을 거라 생각하고 방에 들어온 딸아이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난리법석이다.

"나도 나도 나도 하고 싶어."

생각보다 제법 큰 사이즈라 잘라낸 자투리를 딸아이 손에다 붙여줬다.

둘이 속닥속닥 그러고 있으니 남편이 뭐하냐며 빼꼼히 내다봤다.

그리곤 시큰둥한 표정으로 나가고 우린 마무리 작업에 착수했다. 

혹시 잘 안 붙은 곳은 없는지 꼼꼼하게 살핀 후 남편에게 가서 자랑했다. 

발이 볼수록 예뻤다.


어딜 가든 맨발을 내놓기가 참 부끄러웠다.

이제 발가락이 훤히 드러나 보이는 샌들은 가끔 민망하기도 했다. 이제 좀처럼 하얗지 않고 여기저기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안고 있는 발이 가끔 홀대받는 것 같기도 해 미안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렇게 예쁘게 꾸며놓고 보니 자꾸 들여다보게 되고 미소 짓게 되었다. 


세일을 한다기에 이번엔 내가 정말 좋아했던 산호색 네일과 민트색 네일도 하나 사두었다. 하지만 좀처럼 용기가 나지 않아해보지 못하고 두 계절이 지난 올해 여름. 드디어 결전의 날이 왔다. 큰 맘먹고 네일을 해보기로 했다. 전날 밤 손톱을 예쁘게 다듬어 꼼꼼히 영양크림과 립밤을 발라주고 잤다. 그리고 다음날 밤에 조용히 혼자 작업에 들어갔다. 뭔가 엄청난 일을 계획한 듯이 조용히 혼자 그러고 있으려니 한 편으로는 웃음이 났다. 그런데 손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오른손잡이 다 보니 왼손을 다듬기가 쉽지 않았던 것. 결국 딸아이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그날 밤 우린 대단한 일을 끝냈다.


손을 움직일 때마다 민트색과 투명한 비즈가 반짝여서 정말 예뻤다. 이제 예전만큼 예쁘지는 않지만 그래도 젊었을 때 열심히 관리하고 나에게 충실했던 빛나던 순간들이 생각나서 조금 위안이 되었다. 


하지만 네일아트는 이대로 해피엔딩이 아니었다. 오랫동안 붙여놓고 싶어서 과하게 욕심부린 게 잘못이었다. 손톱 위로 살짝 붙였어야 했는데 주변 살갗에 이어 붙이는 바람에 제일 끝부분이 잘 붙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아이들 머리 빗을 때 그리고 감을 때, 손톱 사이에 낀 머리카락이 급기야 빠지는 사태 발생. 그리고 음식 할 때 손을 꼼꼼히 씻어야 했고 엄지손톱에 살며시 놓인 빛나는 큐빅 때문에 설거지 할 때마다 너무 불편했다. 특히 계란을 톡 깨서 프라이 할 때  두 손가락이 마주 닿지 않아서 제대로 깨지를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 밤. 아이가 갑자기 손가락에 가시가 박힌 것 같다며 손을 내밀었는데 두 손가락이 서로 내기라도 하듯 밀어내는 바람에 가시를 빼줄 수가 없게 된 것! 결국... 화려한 네일아트는 일주일도 못가 막을 내리게 되었다. 네일을 떼면서도 한참을 고민했다. 아이고 아까워라... 지나간 내 젊은 날이, 다시 돌이킬 수 없던 그날들이 너무나 아까웠다. 그 밤 고작 네일 때문에 내 마음이 그렇게 헛헛할 수가 없었다. 


유난히 내 손이 예뻐보이던 어느 날





p.s 메인 사진은 Pixabay로부터 입수된 pieonane님의 이미지 입니다.

     

작가의 이전글 아버지는 피아노가 싫다고 하셨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