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에 대한 나의 의견
클래식
서양의 전통적 작곡 기법이나 연주법에 의한 음악.
흔히 대중음악에 상대되는 말로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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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assic
일류의, 최고 수준의, 고전, 명작
전형적인, 대표적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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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 쓰는 말이 있다. 클래식은 클래식이다.
클래식은 고전이다.
초등 자녀 둘을 키우는 내가 도서관에서 자주 들르는 코너는 어린이 명작 코너이다. 숱한 사람들의 손때가 묻어 책등이 닳고 닳아버린 책은 결코 그 선택을 후회하지 않는다. 어떤 책을 골라도 흥미진진하고 이야기의 전개에 푹 빠질 수 있다. 적어도 2시간은 모든 것을 잊고 오로지 이야기와 등장인물에 나를 고스란히 대입시켜 볼 수 있는 기회다. 이런 책을 읽고 나면 꼭 마지막에 역시 클래식은 클래식이야 라는 말이 나온다.
하지만 이런 나의 의견을 결사반대하는 이도 있을 것이다. 그렇게 규정지어놓은 틀 때문에 고전으로 밖에 취급되지 않는 것이다. 이제 시대의 흐름에 따라야 한다. 예를 들면 이런 분위기 깨는 소리. 엄마 누가 요즘에 그런 거 읽어. 한 순간에 옛날 사람으로 추락하는 결정적 계기가 될 수도 있다.
클래식은 전형적인 것이다.
클래식은 어떤 부류의 특징을 가장 잘 나타내는 것이다. 런던 귀족층이 선호할 법한 B사 브랜드의 셔츠, 그리고 푸른 계열의 딱 떨어지는 드레스. 어떤 이유인지 모르겠지만 다른 브랜드와 달리 엄청 고가의 의류들. 왜 갖춰 입었다 싶으면 그 셔츠에 카디건과 체크무늬 스커트를 입혀야 하는지 모를 그런 분위기. 두 아이가 코흘리개 시절. 정말 쫄쫄이 바지에 티셔츠가 딱인 아이들에게 그런 고가의 의류를 꼭 사주시는 분이 계셨다. 나는 아끼고 아끼다가 결국 한 두 번 밖에 입히지 못하고 새 옷으로 남겨진 옷들.
클래식은 최고 수준이다.
런던을 여행할 때 아침마다 들르는 아주 작은 커피가게가 있었다. 왠지 그곳은 커피숍보다 가게가 더 어울리는 정말 작은 곳이었다. 아침 출근 시간보다 더 일찍 움직였기 때문에 내가 거의 첫 손님이었는데 어느 날인가 내게 커피를 건네면서 "It's classic!"이라고 빙긋 웃는 것이다. 뭐 이 커피가 클래식이라고? 그날이야 어리둥절했지만 진짜 작은 구멍가게에서 매일 커피를 파는 그 훈남의 자존감은 정말 두고두고 잊히지 않는다. 자신의 커피를 세계 최고라고 여길 만큼의 자부심이니 그렇게 문전성시를 이루는 거겠지. 정말 그곳은 아침에 가도 낮에 가도 저녁에 가도 끊임없이 손님으로 붐볐다.
역시 클래식이다.
한 달에 한 번, 둘째 주 화요일이면 클래식 공연을 듣기 위해 공연장을 찾는다. 그렇게 크지 않은 소규모 객석의 공연장에서 들을 수 있는 수준 높은 음악은 처음에는 잘 몰랐어도 2~3년 듣다 보면 다른 공연에 비해 연주자가 얼마나 수준이 높은지 체감할 수 있다. 점점 높아만 가는 내 듣는 귀는 내 주머니 사정은 아랑곳하지 않고 좋은 공연을 얼마나 발 빠르게 예매할 수 있는지만 고민하게 만든다.
클래식은 대표적인 것이다.
내 전문분야인 영어 그림책의 클래식은 단연코 에릭 칼이다. 물론 모리스 샌닥, 헬렌 옥슨버리 등등 엄청난 작가들이 많지만 영어 그림책을 본다 하면 꼭 이 책은 보고 넘어가야지 하는 책들이 있다. 요즘 좋은 신간이 얼마나 많은데요 라고 이야기하는 분들에게도 난 클래식은 다 이유가 있다고 말씀드린다. 아직 그 책을 보지 않았다면 꼭 찾아서 보시라고. 다들 이 정도는 봤겠지라고 생각하는 기본. 그것이 클래식이 아닐까?
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이렇게 길게 클래식에 관한 이야기를 썼을까?
코로나 4단계로 아침부터 4시까지 줌으로 아이들을 만나고 있다. 만나는 아이들의 연령은 초등학교 1학년에서 4학년까지의 아이들이다. 도서관에서 기획한 방학 프로그램에 접수해서 글쓰기와 영어 그림책 수업으로 아이들을 만나고 있다. 불특정 다수를 8번 정도 만나기 때문에 수업의 수준이 깊을 수가 없고 아이들의 흥미를 유발하는 수업 위주로 만들어져 있다. 하지만 8번의 시간은 아이들과 깊은 유대를 맺기에 충분하다. 아이들의 신뢰를 얻기 위해서는 첫인상이 무척 중요하다. 아이들의 말을 일일이 주의 깊게 들어주고 내가 지금 너에게 모든 관심을 쏟고 있다는 신호를 보내야 한다. 그리고 어떤 의견도 그냥 흘려보내지 않는다. 그렇게 온 힘을 다해서 진실되게 처음 만남의 시간을 보내고 나면 아이들은 결코 나를 배신하지 않는다.
이렇게 쌓은 신뢰는 무척 견고해서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나는 수업 중간중간에 내가 얼마나 너희들을 믿고 있는지 얼마나 멋진 친구들인지 계속 이야기하는데 이러한 과정을 통해 아이들은 스스로 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약속을 꼭 지키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특히 어린 친구들일수록 신뢰관계는 오래 지속된다. 왜 큰 아이들일수록 쉽게 믿지 못하고 신뢰도 쌓지 못할까? 상처의 경험이 있어서지 않을까? 그 상처가 깊거나 오래되었거나 무튼 저마다 경험이 있기에 의심이 쌓이고 계속 시험에 들게 하는 건 아닐까 싶다.
나는 아이들을 대하는 태도만은 클래식이고 싶다. 어린 친구들을 존중해주고 싶고 예의를 갖추고 싶다. 그들이 노력하는 만큼 성과를 내어 결코 좌절하거나 실망시키고 싶지 않다. 혹 실망하더라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용기를 주고 싶다. 앞으로 나아갈 그들의 길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된다면 그보다 더 보람 있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들의 눈망울에 비친 내 모습이 따뜻하고 사랑으로 느껴지길 바란다. 그리하여 존중받아 일어선 그 경험을 꼭 한 번 느껴보길 그리고 오래 간직하길 바란다.
p.s. Pixabay로부터 입수된 MorningbirdPhoto님의 이미지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