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읽고 싶은 책
책의 소재를 발견하는 것은 세상이 주는 커다란 선물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그보다는 늘 촉각을 곤두세운 채 소재를 기다린 결과이다. 대개는 자신이 찾는 책, 그리고 다른 사람도 읽고 싶어 하는 책이 소재가 된다.
_작가의 시작 p301
브런치, 아줌마들이 점심까지 기다리기는 좀 그렇고 일찍 만나 수다 떨며 근사한 차를 마시는 문화의 한 가닥으로만 알았을 때 우연히 어느 포털사이트에서 발견한 브런치 제목은 무척 신선했다.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대충 '두껍아 두껍아 헌 집 줄게 소재 다오~'였던가? 그만큼 글 쓰는 이들에게 소재란 무척 중요한 단초였다. 물론 나도 크게 다르지 않다.
한 편의 글을 발행하기로 마음먹은 날은 온종일 소재로 적당한 것을 찾기 위해 정말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든다. 내가 주로 찾는 소재거리는 일상에 가까운 소박한 것들이다. 사람 냄새가 적당히 나고 어디 때라도 좀 낀 익숙한 이야기들. 읽으면 내 이야기 같고 언젠가 한 번 내게도 일어날 법한 일들, 아니면 일어났었던 일들.
같은 이유일까? 내가 찾는 책들은 청소년 이야기들이다. 이해하기 쉽고 표현이 맛깔나며 공감하기도 쉬운 스토리는 금세 나의 마음을 빼앗는다. 순수하고 때 묻지 않은 이야기들을 읽다 보면... 어렴풋이 나의 청소년기가 떠오른다. 어쩌면 잃어버린 학창 시절일지도 모를 안타깝고 가슴 시린 시간들.
언제부터인지 나는 내가 기억하고 싶은 것만 기억했다. 문턱이 닳도록 드나들던 안경점이 다시 생각난 것도 십 년이 지난 후였다. 중1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채 겉돌고 있을 때 우연히 안경을 새로 맞추러 들렀던 동네 안경점 아저씨와 친해졌다. 학교 가는 길목에 있어 오고 가며 지나다녔는데 안경을 맞추고 난 후 가끔 들러 아저씨랑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던 기억이 난다. 어떤 이야기들이 오고 갔는지 자세히 기억이 나지 않지만 내 고민을 잘 들어주던 친절한 아저씨였던 건 분명하다.
단짝이라고 부르기도 뭣한 두 친구는 주로 만화방에서 살았다. 가끔 친구들이 학원에 오지 않으면 만화방으로 찾으러 갔었는데 지하에 있는 만화방 입구에 들어서면 확 풍기는 낡은 책 냄새가 무척 좋았다. 그 냄새가 좋아서 계단을 천천히 걸어내려 갔다. 절대 공부하기 싫어서 친구를 찾는 시간을 길게 끓었던 건 아니었다. ㅎ
한동안 잊어버렸던 그 종이책 냄새를 학교 도서관에서 맡은 후로는 내내 도서관에서 살았다. 도서관 봉사를 자처하고 하교 후에도 1~2시간씩 남아 도서관에서 책을 가지고 시간을 보냈다. 그때 읽었던 태백산맥, 아리랑은 시간이 지나서 첫 아이 임신 열 달 동안 다시 꺼내보았다.
그렇게 책장에 쌓아둔 책은 고스란히 친정아버지에게 갔다. 아버지가 읽으시고는 가끔 꺼내시는데 그럴 때마다 우린 뭔가 모를 중요한 비밀을 공유하고 있는 느낌이다. 어쩔 수 없었던 그 시대를 안타까워하며 일반인인 나로서는 몇 줄 감상담으로 표현할 수 없는 그 이야기를 두런두런 나누게 된다.
입맛은 나이 들면 변한다고 하던데 책을 읽는 취향은 쉬이 변하지 않을 것만 같다. 지금도 나는 아이의 책가방에서 주섬주섬 꺼내놓은 책을 읽다가 밤을 새우고 책 속 주인공을 이야기한다. 그렇게 주고받는 이야기 속에서 우린 서로 다르지 않음을 알아간다. 나와는 너무 다른 세상을 살고 있는 청소년들의 이야기는 우리 아이들을 이해하는데 가장 빠른 안내서가 된다. 그들의 갈등과 성장을 함께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그 안에는 나도 보이고 우리 아이들도 보인다.
어쩌면 과거 그 시절을 제대로 겪어보지 못한 나의 허전함일지도. 그렇게라도 채우고 싶은 욕심일지도 모르겠다.
내가 읽고 싶은 이야기는 특별한 소설이 아니다. 우리네가 사는 이야기. 어쩌면 나에게도 일어날 법한 이야기, 언젠가 내가 겪었던 비슷한 이야기, 그런 사람 냄새나는 소소한 이야기들을 곁에 두고 오래오래 읽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