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포기할 수 있는가
당신이 글을 쓰기 위해 기꺼이 포기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그리고 글을 쓰지 않았을 때 치러야 하는 대가는 무엇인가?
_작가의 시작 p321
첫 직장을 얻자마자 통장부터 만들었다. 월급의 80%를 저축하고 나머지로 생활하며 알뜰하게 살았다. 비록 현금은 없지만 카드는 있었다. 수중에 돈이 생기니 자연스레 내 눈은 내가 가질 수 있는 물건들로 향했다. 우연히 지나친 백화점에서 마음에 쏙 드는 코트를 발견했다. 긴 롱코트에 차이나 칼라 그리고 길게 잘 빠진 라인이 예뻤다. 고급스러운 까만색 모직 코트는 백화점 문을 나서도 계속 생각났다. 겉으로 드러난 단추도 매듭도 없었다. 매일 저녁마다 퇴근길에 코트를 보러 갔다. 혹한 겨울 추위로 코트는 절대 입지 못할 즈음 그 옷은 내 것이 되었다.
계획에 없던 지출로 내가 포기해야 하는 건 많았다. 당장에 눈에 보이지 않지만 곧 다가올 카드값은 무서운 일이었다. 외식 금지, 쇼핑 금지, 문화생활 금지.,, 외출금지. 하지만 옷걸이에 다소곳이 걸린 코트를 볼 때마다 행복했다. 해마다 그 코트를 입으면서 얼마나 흐뭇해했던지. 아직도 내 옷장 한켠을 차지하고 있는 코트는 벌써 그 자리를 15년동안이나 지키고 있다.
추위를 막아주기에 패딩만큼 좋은 게 또 있을까만은 까만색 모직코트는 가끔 멋스럽게 옷 입기에 최상의 아이템이다. 옷 안에 내복을 껴입고 간신히 코트를 걸치면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었다. 코트가 딱 한 벌이었다면 한 겨울을 어찌 버텼을까? 돈이 없어 간신히 겨울 옷 한 벌을 장만했던 그 옛날을 생각하면 사치일지도 모르겠다. 그랬다면 그 코트는 내 것이 되지 못했을 텐데.
시골 초등학교에서도 총각 선생님은 인기가 많았다. 초등학교 5학년 담임선생님은 키가 크고 날렵했다. 가냘픈 얼굴에 안경은 무척 센스 있어 보였고 가끔 선생님이 산다는 하숙집 앞을 지날 때면 우연히 마주치지 않을까 기대도 했었다. 서울에서 유명 스포츠 의류 회사를 다니던 막내 이모가 보내 준 회색 패딩은 내가 살 던 동네에서는 찾기 힘든 귀한 옷이었다. 엄마는 그 옷을 아주 가까운 몇 분에게 선물했는데 그중에 우리 선생님도 있었다. 첫눈이 내리던 어느 날 눈에 익은 회색 패딩을 입고 나타난 선생님을 본 순간 난 한눈에 알아보았다. 그 옷의 출처가 어디인지. 선생님은 2번의 겨울을 오로지 그 옷으로 보내셨다. 얼마나 따뜻했을까? 우리나라에서도 유독 춥기로 유명한 지역이었는데 아마 그 옷이 선생님의 겨울을 조금은 따뜻하게 해주지 않았을까?
엄마로 아내로 프리랜서로 살면서 글을 쓰기 위해 나는 많은 것을 포기해야 했다. 가장 쉽게 포기된 건 아무래도 집안일이다. 우선 매일 청소는 패스. 심하게 발에 밟히지 않는다면 자기 전에 한 번 걸레로 바닥만 닦아내고 아침에 비질한 번 하는 걸로 마무리한다. 점심은 최대한 간단히. 평일 점심은 내게 사치다. 간혹 지인과 약속이 있다면 모를까 대부분 아침은 삶은 계란과 시리얼, 점심은 고구마와 우유.
그리고 하릴없이 돌려대는 채널, 인터넷 쇼핑, 그리고 핸드폰.......
블랙 모직코트를 사면서 내가 치른 대가는 아주 오랫동안 이어졌다. 예상 밖의 카드값으로 3개월을 정말 가난하게 살아야 했고 (왜 그렇게 많은 돈을 꼬박꼬박 적금으로 부었을지...) 기차값이 없어서 집에도 못 갔다. 엄청나게 비싼 옷도 아니었는데 돌이켜 보니 내 삶은 언제나 작은 손이었다. 그렇다면 회색 패딩을 받고 포기한 것도 있을까? 그때 당시는 촌지도 가능한 시대였으나 선생님은 고집도 있고 그렇게 살가운 분도 아니었다.
방학숙제를 받아오면 늘 내 동생은 얼굴이 울상이었다. 독후감 쓰기 5편. 방학 내내 열심히 놀다가 개학 즈음 괴로운 얼굴로 나를 바라본다. 그리고 종일 쫓아다니며 다양한 조건을 제시했다. 우린 사이좋은 오누이니까 밤에 화장실 앞에서 기다려주기. 그리고 쫀디기 다섯 개 정도로 독후감 숙제를 대신해주었다. 왜 화장실은 마당을 나가 일반창고 하나, 연탄창고 하나를 지나야 젤 끝에 있는지 여름밤이고 겨울밤이고 난 화장실 가는 게 제일 괴로웠다. 화장실 가기 전 동생을 깨워서 창고 앞에 세워두고 볼 일을 보다 가끔 동생을 부르곤 했다. 동생은 그 번잡스러운 일을 참을 만큼 글 쓰는 게 힘들었고 나는 좋았다.
검색 창에 초성만 쳐도 뜨는 드라마도 포기할 수 있다. 얼마 전 딸이 정말 재미있는 웹툰이라며 줄거리를 대충 소개해줬다. 우리나라 유명한 중증외상센터 의사를 모델로 한 의학 웹툰이었는데 남주는 얼마나 멋있는지 스토리는 얼마나 재미있는지 꼭 봐야 한다고 추천해주었다. 하지만 그 이야기는 내 이야기만큼 재미나지 않더라. 노트북 앞에서 손가락이 리듬을 맞춰 나의 이야기를 풀어놓는 이 순간이 내겐 그렇게 재미있을 수가 없다.
만약 내가 글을 쓰지 않는다면 아니 글을 쓰는 맛을 모르는 사람이었다면 내 삶이 얼마나 단조로울까. 한 문장 한 문장 곱씹어보고 적당한 단어를 골라내고 눈에 훤히 보이듯 근사한 문장을 뽑아내고 나면 세상 그 어떤 유명 작가도 부럽지 않다. 내 삶의 글이란 나를 소개할 수 있는 가장 멋진 단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