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리솔 Jun 09. 2024

엄마와 딸, 우리 인생의 황금기

엄마랑 같이 무언가를 만들고 해낸다는 기쁨

인생에서 엄마랑 같이 무언가를 힘을 합쳐 본 적은 언제가 처음이었을까? 아마 초등학교 운동회에서 했던 가족 이어달리기 행사에서 우리는 처음으로 무언가를 같이 이루어보지 않았을까. 대체로 수평보다는 수직 관계가 익숙하게 그려지는 부모와 자녀 관계에서 각자의 역할에서 발휘할 수 있는 최대 힘을 모아 얻어내는 성취를 부모와 자녀가 경험해 볼 기회는 드문 것 같다. 자녀가 어릴 때는 부모가 무엇인가를 가르쳐주고, 보살펴주고, 부모가 나이 들면 자녀가 부모를 모시고, 부축하고. 언제나 힘이 강한 한 사람이 힘이 약한 사람에게 도움을 건네며 의지하게 되는 것이 부모와 자녀 관계일 테니까. 


엄마랑 공방을 시작하면서부터 나는 엄마와 내가 다시 오지 않을 황금 같은 시간을 잡은 것이라고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대부분 내가 어떤 시간을 보냈는지는 그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돌아볼 수 있게 되지만, 엄마랑 공방에서 보내는 시간은 감히 미래를 예상할 수 있었다. 우리는 절대 이 시간을 후회하지 않을 것 같다고. 엄마가 환갑이 되고, 내가 삼십 대가 되어도 그때 같이 시간을 보내길 잘했다고 말할 것 같았다. 누구 하나 아프지 않고, 바쁘지 않아서 서로의 인생을 좀 더 가깝게 이해할 수 있을 때, 대화를 나누고 몸을 부딪치고, 같이 무언가를 이루어내었던 이 시간은 우리 인생에 큰 추억으로 남을 게 분명해 보였다.


지난 몇 주간 갑자기 공방이 사라질 위기를 겪으면서 이렇게 짧게, 이렇게 쉽게 포기할 것이었다면 왜 이런 선택을 했을까, 의심했던 시간이 있었다. 서로가 서로에게 큰 상처를 남겨버렸다고 잠시 생각했었다. 분명 서로 믿음이 무너진 아픈 시간이었지만, 순간 마음에 먹구름이 너무 짙어져서 그 아래 우리가 함께 장사를 고민하고, 떡을 만들고, 새벽부터 땀 흘려 돈을 벌고, 기쁨에 서로를 껴안기도 하며 보냈던 눈부신 몇 개월을 보지 못했다. 우리에게는 이미 돌아볼 수 있는 소중한 추억이 생겼고, 그 시간이 고작 4개월 만에 끝난다 해도 우리는 같이 공방 일을 하지 않았을 시간에는 영영 이해하지 못했을 서로의 모습을 같이 있기를 선택한 덕분에 알게 되었다.


얼마 전 오랜만에 엄마랑 힘을 합쳐 2단 케이크를 만들고 나서 환하게 마주 보며 웃었다. 여전히 앙금으로 만든 꽃은 원하는 만큼 모양이 예쁘지 않고, 꽃을 올리는 손은 떨리고, 시간은 촉박하고, 서로 예민해져서 만드는 내내 살짝 찬 바람이 불었지만, 완성한 케이크를 깔끔한 천 위에 올려놓고 사진을 찍으면서 모난 마음이 녹아내렸다. 만들 때는 꽃 하나하나에 집중하느라 몰랐는데, 우리가 함께 만든 케이크가 제법 조화롭게 아름다웠다. 아름다운 꽃케이크에 반해서 처음 이 일을 시작했다던 엄마의 마음, 케이크를 만드는 재미를 처음 발견했던 순간, 같이 만들었던 첫 케이크가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혼자 케이크를 만들어내지 못해서 1인분을 해내지 못했다는 생각 대신에 오늘은 함께 힘을 합쳐 예쁜 케이크를 만들어 낸 우리가 정말 자랑스러웠다. 


공방을 함께하지 않았다면 우리 모녀 관계에도 무언가를 주고받는 데서 얻을 수 있는 기쁨만이 있었을 것이다. 의식주를 챙겨주고, 선물을 주고, 사랑을 주고, 서로 주고받는 관계. 사람이 사람에게 건넬 수 있는 가장 따뜻하고 깊은 마음이지만, 때로는 주었기 때문에, 받았기 때문에 더 돌려주지 못해서, 더 주지 못해서 미안한 마음으로 바뀌기도 하는 그런 마음. 하지만 우리는 함께 떡을 만들면서 힘을 합쳐 무언가를 이루어내는 기쁨을 발견하게 되었다. 서로의 능력을 긍정하고, 존중하고, 배려하고, 자랑스러워할 수 있는 동등한 관계가 되어 서로 다른 자아가 부딪치고 미워지기도 하지만, 성취를 이뤄내면서 돈독하고 더 애정이 깊어지는 마음을 알게 되었다.


평생 모르고 지나갈 수도 있었을 이 특별한 마음을 우리 삶에 남길 수 있어서 엄마와 나에게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 소중하다. 우리의 노력이 통하지 않아서 당장 내일 주문이 없어진다고 해도, 다시 몸이 아파서 일을 지속할 수 없어진다고 해도, 지금은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 기억하며 성실하게 살아낼 것이다.

이전 13화 엄마를 돕는 사람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