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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리솔 Jun 16. 2024

다시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소중한 단골 손님께 배우는 마음가짐

떡 공방 5개월 차, 우리에게도 반가운 단골 손님이 생겼다. 떡케이크는 다른 디저트와 다르게 특별한 행사가 있을 때만 주문하는 메뉴라서 재주문까지 시간이 제법 오래 걸리는 편인데, 벌써 세 번 이상 찾아주신 우리 단골 손님들은 다른 사람들보다 특별한 행사가 몇 달 사이에 몰려 있는 분들이었다. 


공방을 오픈하고 3개월 정도는 떡 디저트를 파는 소매점을 운영했다. 동네 상권이 너무 열악한 탓에 금방 접어야 했지만, 그때 근처에 거주하시는 동네 분들이 종종 가게에 들러 떡을 사서 가셨다. 하루에 손님이 3-4팀 남짓해서 쉽게 얼굴을 외우고, 짧게 안부도 전하며 유대감도 쌓았다. 우리의 단골 손님도 대부분 이때 처음 만났다. 처음에는 아이 간식으로 가끔 떡을 샀다가 아이 생일 떡케이크를 주문하신 손님, 배달로 디저트를 먹어보았다가 첫인사 자리, 다시 부모님 선물로 디저트를 주문해 주시는 손님, 행사 때 필요한 간식을 매번 맡겨주시는 손님. 이름과 얼굴을 아는 손님을 반갑게 다시 만나는 기쁨을 알아가고 있는 요즘이다.


얼마 전 세 번째 주문으로 2단 케이크를 주문해 주신 손님의 몇 마디 표현 덕분에 엄마랑 나는 장사를 하는 뿌듯함과 재미를 생생하게 느꼈다. 우리 가게에서 떡을 드셔보셨던 손님께서 어버이날 케이크 주문에 이어서 이번에는 아버님 구순 잔치 케이크를 주문해 주셨다. 엄마는 공방을 오픈하고 거의 처음 응대했던 손님이라며 그분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감사한 마음이 들어서 더욱 케이크를 잘 만들고 싶다고 했다. 보통 케이크 픽업을 온 손님과 마주하는 시간은 30초 남짓이다. 케이크를 한 번 보여드리고, 보관 방법을 설명하고 인사를 주고받는데, 케이크를 찾으러 오신 단골 손님은 먼저 케이크를 정말 맛있게 먹었다며 말을 걸어주셨다. 


“저희 아버님이 여기 블루베리 케이크를 엄청 좋아하세요. 다른 떡케이크도 몇 번 해드렸는데, 잘 안 드시다가 여기 케이크는 맛있다고 혼자 다 드시더라고요!”

“정말요? 너무 감사해요. 맛있게 드셔주셨다니 다행이네요.”

“사장님 또 행사 있으면 주문할게요!”


오랜만에 듣는 표현에 엄마의 눈가가 살짝 촉촉해진 모습이 보였다. 예쁘고 맛있는 떡을 선물하는 기쁨에 이 일을 시작했다는 사실이 오랜만에 떠오른 게 아닐까 몰래 짐작해 보았다. 손님이 케이크를 찾아가고 나서, 평소의 엄마였다면 케이크를 만들고 진이 다 빠져서 표정에도 몸짓에도 힘이 없어야 하는데, 엄마의 표정이 온화해 보였다. 

“케이크가 예쁘다고 좋아해 주시는 것도 좋은데, 떡이 맛이 좋았다고 하니까 더 기쁘고 감사하다.”

손님의 표현 몇 마디가 엄마에게는 잊지 못할 감동으로 전해졌다.


누군가에게 우리가 만든 음식을 파는 일을 시작하면서 이 일에 대한 마음가짐과 무게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있다. 일면식이 없는 손님의 주문을 받을 때는 연고도 없이 우리 상품을 믿고 찾아주셔서 감사한 마음에 더 신경을 쓰게 된다. 얼굴과 목소리를 기억하는 손님의 주문은 정이 생겨서 더 맛있고 예쁜 케이크를 만들어 드리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음식을 만들 때만큼은 눈에 보이지 않는 기운이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맛있는 음식은 좋은 재료, 정확한 계량으로 만들어지기도 하지만, 만드는 사람의 마음가짐이 0.1%라도 맛에 영향을 준다고 믿는다. 진심으로 축하하는 마음, 달콤한 케이크와 함께 행복한 시간을 보냈으면 하는 마음, 우리가 만드는 케이크를 드실 분의 얼굴을 떠올리면서 케이크를 만들면 보이지 않지만 달콤한 맛이 더 생생하게 전해진다고 생각하며 음식을 만든다.

그리고 가끔 이렇게 단골 손님이 생기고, 맛있었다는 표현 한두 마디가 돌아올 때면 그 마음이 전해진 게 아닐까 싶어 기쁨과 감사함이 더욱 크게 느껴진다. 


우리는 우리가 만들고 판매한 만큼 이익을 얻는 장사가 여전히 익숙해질 듯 익숙해지지 않아서, 많이 팔지 못한 날은 실망하고 걱정스러운 나날을 보내고 있다. 하지만 우리가 만든 떡을 다시 찾아주시는 손님들 덕분에 전에는 몰랐던 새로운 힘 또한 얻고 있다. 주문이 적은 날도 많은 날도 음식을 만드는 순간만큼은 집중해서 최대한 맛있게 만들며 버티면 된다. 지금처럼 먹는 사람, 디저트를 선물 받는 사람을 생각하면서 만들고, 포장하고, 판매하는 시간이 쌓이다 보면 다시 우리가 만든 떡을 찾는 사람들이 생길 것이다. 다시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같은 맛과 경험을 줄 수 있는 것, 음식을 만들어 파는 일의 가장 기본일 테니까. 보이지 않아도 언제나 감사한 마음으로, 좋은 마음으로 손님들이 행복하게 먹는 모습을 상상하며 떡을 만든다. 우리가 만드는 떡이 오래 사랑받을 수 있기를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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