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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소리 Apr 25. 2021

카페 아르바이트 입문기




17살에 같은 반 친구에게 교회 오빠를 소개해 줬을 때, 처음으로 커피숍이라는 곳을 가 보았다. 캔모아 같은 또래 가득한 장소가 아닌 정말 어른들이 가는 '커피숍' 말이다. 그 장소를 콕 집어 선택한 교회 오빠는 능숙하게 사이다를 시켰고 친구는 파르페를 시켰다. 나도 으레 메뉴를 살폈지만 돈이 없는 데다 소개만 시켜주고 나갈 참이었기 때문에 빠르게 주문서를 덮었다. 어색해 하는 친구 보다 더 어색해하며 (주선자 역할은 난생처음이었다.) 이미 알고 있을 각자의 이름과 나이를 언급하고 있을 때 테이블 위로 음료가 놓였다. 화려하지만 왠지 먹을 게 없어 보이는 파르페는 티브이에서 보던 것과 그 모습이 크게 다르지 않았지만 사이다는 그렇지 않았다. 빨대 꽂힌 얼음 잔에 칠성 사이다 캔 하나가 덜렁 나오는 것을 보고 작은 충격을 받고 말았다. 가격이 3000원이었기 때문이다. 캔을 따고 잔에 부어 주는 최소한의 서비스도 없이 저 가격을 받는다는 것이 그저 놀라울 따름이었다. 지금에야 탄산 유지와 위생을 따지자면 그 서빙의 형태가 더 나은 것임을, 또 커피숍에서 매기는 음료 가격에는 정말로 음료 가격만 있는 것이 아님을 알지만 말이다. 그렇게 커피숍에 대한 내 첫인상은 '사이다를 비싸게 파는 곳' 정도였다.





2000년대 초반 우리나라에서는 에스프레소 머신이 보급화되기 시작했고, 중반에 와서는 거리에서 스타벅스가 쉽게 눈에 띄기 시작하면서 음료를 구입해 매장 밖으로 들고나가는 테이크 아웃(take-out) 개념도 빠르게 자리 잡혀가고 있었다. 그런 시기에 막 성인이 된 나는 집 근처 대학교 내에 있는 커피숍에서 카운터 알바를 시작했다. 손님이 쟁반에 담은 베이커리를 가지고 오면 빵 이름과 개수를 헤아려 포스기에 찍었다. 그다음 무슨 음료를 시키실 건지 묻고 함께 계산한 뒤 영수증은 손님을 드리고 주문서는 주방 벽에 붙이기만 하면 되는, 비교적 쉬운 업무였다. 하지만 나는 그 쉬운 일을 익히는데도 두 달이 넘게 걸렸다. 빵 이름이 왜인지 다 외워지지가 않았고 손님에게 거스름돈을 돌려주며 맛있게 드시라는 멘트를 날리기도했다. 거기다가 주문서를 주방에 붙이는 걸 깜박해서 마냥 기다리던 손님의 원성을 듣는 일도 부지기수였다. 그런 나를 짜증 한 번 없이 인내심으로 품어준 사장님과 직원 언니들을 생각하면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신기할 지경이다.



신선한 원두에서 추출된 에스프레소에선 크림처럼 크레마가 생성된다는 것을 이제는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다. 모른다 하더라도 아메리카노 위에 떠있는 갈색 거품을 이상하게 여기지는 않을 테다. 그렇지만 내가 막 계산 알바를 하며 빵 이름을 되뇌고 있을 그 무렵엔, 들고나간 커피를 다시 가지고 와서 의문을 제기하는 손님들이 많았다.

왜 커피 위에 기름이 떠있어요?

라며 인상을 쓰는 사람들을 위해 외워둔 멘트는 이것이었다.

저희는 에스프레소 머신이라는 보일러가 들어가 있는 커피 추출 기계를 사용하는데 그걸로 커피를 내리면 원두가 신선할수록 이렇게 기름처럼 보이는 '크레마'라는 것이 생겨요. 걱정 말고 드셔도 됩니다.

그렇게 말하는 나도 고 압력으로 추출된다는 커피에 대한 개념이 당연히 없었다. 미성년자는 커피를 마시면 안 된다는 어른들의 말을 충실히 따랐었기에 나는 정말로 성인이 되고서야 커피를 마시기 시작했던 거다. 나에게 있어 블랙커피란 엄마가 사다 놓은 검은 인스턴트커피 알갱이를 티스푼으로 한 번 떠서 뜨거운 물에 녹여 마시는 것이었다. 비율을 적절히 한 블랙커피는 잘 끓인 보리 차와 크게 다르지 않아, 그저 구수하고 뜨끈했다. 그런데 사장님과 바리스타 언니는 원두 봉지를 새로 개봉할 때마다 한 잔씩 내려 먹으며 이건 꽃 향이 난다는 둥 저건 초콜릿 향이 난다는 둥 이해할 수 없는 말을 했다.



종종 에스프레소를 주문하는 손님도 있었는데 십중팔구 아메리카노와 헷갈린 것이기 때문에 그 상황을 위한 고정 멘트도 있었다.

손님. 에스프레소는 매우 적은 양의 커피 원액인데, 찾는 음료가 맞으실까요?

이때 무시하는 듯한 뉘앙스가 조금이라도 풍겨서는 안되기 때문에 말투에 꽤 신경을 써야 했다. 그러면 대부분의 손님은 아 그래요? 하며 아메리카노로 바꿔 주문했고. 가끔 정말로 에스프레소를 주문해 마시는 사람도 있었다.

에스프레소 트리플 샷으로 주세요.

매일 이렇게 외치고 바 자리에 앉아 바리스타 언니와 스몰 토크를 나누다 가는 손님도 있었는데, 샷을 세 개나 때려 넣고 다음 수업을 가는 뒷모습을 보며 무슨 어려운 공부를 하길래 보약처럼 매일 저걸 먹을까 싶었다. 그러면서도 왠지 진정한 어른의 모습을 본 것만 같아 일면 멋있게 느껴지기도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손님은 언니에게 관심이 있었던 거 같다. 에스프레소를 설탕도 초콜릿도 없이 마시는, 그런 유니크하면서도 어딘지 고상한 취향을 가진 자신을 어필하고 싶었던 거 아닐까. 정작 이탈리아 사람들은 설탕 잘만 타 먹는다고 하던데.






하여튼 나는 한 모금이면 끝날 저 쓰디쓴 음료를 왜 먹을까 궁금증이 생기기 시작했다. 사장님과 언니가 말하는 갖가지 향이라는 게 정말로 저 커피 한 잔에서 다 느껴지는 걸까 알고 싶었다. 마침 우리 카페는 대학교 도서관 지하에 위치해 있었고 그 덕에 책 빌려 읽는 것이 매우 수월했다. 쉬는 시간이면 커피 관련 책을 한 권씩 대여해 읽었다. 처음엔 바리스타 언니가 그렇게 하는 걸 보고 따라 한 거였다. 그러다 재미가 붙어서 수첩을 들고 다니며 공부했다. 전문 서적부터 잡지까지 '커피'라고 쓰여있는 책은 그냥 다 빌렸던 거 같다. 매일 보는 원두가 처음부터 갈색이었던 게 아니고, 커피나무 열매에서 수확한 연초록의 생두를 볶은 것이라는 걸 처음 알았을 땐 너무나 신기해서 혼자 음소거 박수도 쳤다. 콩을 볶은 것이었구나. 우린 그걸 잘게 갈고 뜨거운 물로 내려서 까만 음료로 만들어 마시고 있는 거였구나. 누가 처음 그렇게 먹을 생각을 한 걸까. 우리나라 사람들은 왜 이렇게 커피를 좋아할까. 한국에선 커피나무가 잘 자라지도 않는데...... 그런 궁금증들을 해결해 가며 알바를 하다 보니 어느새 나도 카운터를 벗어나 바리스타 언니와 함께 커피 내리는 일을 하고 있었다. 우린 퇴근하고도 마주 앉아서 각자 새롭게 알아낸 내용을 나누기도 했다. 주로 내가 질문하는 쪽이었지만 말이다. 그렇게 자신이 일하는 분야를 즐겁게 연구해 나가면서, 어리버리한 나까지 챙겨준 언니가 있었기 때문에 힘든 줄 모르고 일했던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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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프레소의 세계는 심오하고 흥미로웠다. 원두를 분쇄하는 굵기에 따라, 탬핑(담겨진 원두가루를 도구를 사용해 누르는 행위)을 하는 압력에 따라, 그날 습도에 따라 커피 맛이 확확 바뀌었다. 그 '확확 바뀜'을 혀로 구분할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도 흥미를 이어갈 동력이 되었다. 또 바쁜 매장이었기 때문에 탬핑 연습, 우유 스팀 연습을 자연스레 많이 할 수 있어서 언젠가부터 나는 주방에서 막 날아다녔다. 만약 바가 오픈 된 카페에 가게 된다면, 호흡이 잘 맞는 바리스타들이 바쁜 시간에 몸을 어떻게 쓰는지 한 번 지켜보길 바란다. 꼭 춤을 추는 것 같다. 군더더기 없는 움직임으로 최대의 효율을 내면서 정확하고도 빠르게 음료를 내다보면, 고되긴 하지만 무지하게 재미있다. 물론 어떤 리듬 없이 바쁨만 계속된다면 죽을 맛이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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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지나 대학 입학을 하게 되면서 정든 첫 일터를 떠나게 되었다. 돌이켜보니 직업인으로서 정말 많은 것을 배우고 빠르게 성장한 시간들이었다. 몇 개 되지도 않는 빵 이름도 못 외워 버벅거리던 나를 나름의 기술자로 만들어준 소중한 일터. 아무리 생각해도 첫 단추를 그렇게 잘 끼울 수는 없는 것인데 어쩌다 그런 좋은 사람들 곁에 우연히 놓이게 되었던 것일까. 인간관계의 카테고리가 '가족'과 '친구'밖에 없던 때에 처음으로 배운 '직장 동료'라는 영역이었다. 그리고 그 관계가 시간이 지날수록 '친구' 카테고리와 교집합이 되어가는 경험이었다.


그 후로 지금까지 여러 카페를 거치며 일을 해오고 있다. 가만히 세어보니 열 군데는 되는 거 같다. 아르바이트부터 직원, 매니저도 했었고. 친구와 7평 작은 커피숍을 오픈해 3년 넘게 운영한 적도 있다. 사실 모아 놓은 돈도 없으면서 나는 또 카페 공간을 만들 꿈을 꾸고 있다. 내 블로그엔 비밀 게시판 하나가 있는데 거기엔 내가 여태껏 일해 오며 하나 둘 모아 놓은 아이디어들이 무 질서로 쌓여 있다. 사장 입장과 직원 입장을 비교해 놓은 글도 있고, 획기적인 재료 관리법도 있다. 그렇다. 나는 준비가 다 되어있다. 돈만 빼고.



골목마다 커피숍이 넘쳐나고 있는 이 시대에 그 꿈을 실현 시킬 수 있을지 모르겠으나. 노동자 한소리로서 가장 자연스러운 일은 정말이지 카페 일이긴 하다. 그러니 계속 꿈꾸고는 있겠다. 주기적으로 연금 복권을 구입하면서.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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