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와의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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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월 12일 오후, 열쇠로 문을 열고 처음 마주했던 기숙사는 그야말로 먼지 구렁텅이였다. 그전에 사용했던 사람이 신발을 신고 생활했는지 온 바닥이 검댕이 + 먼지로 난리였다. 그래도 분명 퇴실 전에 보증금을 받기 위해서라도 청소를 꼼꼼히 해야 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거의 물건만 치워놓고 간 수준이었다. 비록 해외생활이지만 한국에서처럼 맨발로 다니고 싶은 마음이 있었는데, 빠르게 맨발에서 실내화 필수로 바꿨다. 아래는 하루 종일 열심히 쓸고 닦은 후에 쓴 메모이다.
와 진짜 오늘 정말 힘들었다...문화충격이라면 문화충격인 건데 전주인이 집에서 신발을 신고 다닌 거 같다. 겨우겨우 대충은 치웠는데 정말 너무 힘들었다. 일인실이고 사진으로도 괜찮길래 기대를 많이 하면 안 됐다... 막상 와보니 더럽기는 진짜 지금까지 본 방 중에서 제일 더럽고 벽지도 막 부분 부분 뜯어져 있고 부엌이랑 냉장고도 너무 더러웠다... 하...
(중략)
오늘 너무 많이 걷고 계속 청소하고 해서 뒤꿈치가 애리다... 내일마저 치워야지 후후 원래 다이어리랑 인스타 쓰려고 했는데 쓸 여력이 안 나서 여기다가 남긴다! 오늘 하루도 수고했다 솔희야~~ 참고로 베개랑 청소용품 가져온 거 정말 잘했다 짱짱맨 bbb샴푸도 그냥 다 들고 올걸 후...
이렇듯 거의 이틀간의 전쟁을 치른 끝에 안심하고 생활할 정도의 환경을 만들 수 있었다.
당연하게도 기숙사 도착 이후 첫 방문 장소로는 마트가 당첨됐다. 청소와의 전쟁을 치르기 위한 무기인 청소용품을 사기 위해 먼저 기숙사 근처에 있는 마트로 향했다.
플록스타에서 도보 5분 거리에 ICA라는 마트가 있다. 듣기로는 웁살라 매출 1위 지점이라는 플록스타 ICA이다. 스웨덴에 머물었던 5개월 시간 동안 나의 마음의 안식처이자 산책 코스 장소로 자주 갔던 곳이기도 하다! 스웨덴이 외식 물가가 한 끼에 인당 2만 원은 기본으로 들 정도(버거 제외)로 워낙 비싼 터라 대부분의 학생들이 밥을 직접 해 먹는데 나 역시도 진짜 요리를 자주 해 먹은 편이다. 오히려 재미 붙여서 이것저것 만들고 친구들도 초대해서 다 같이 먹고 했던 기억이 난다. 하여튼 ICA 중에서도 규모가 큰 편이라 이것저것 식재료들 할인 행사도 자주 했어서 날마다 어떤 품목이 할인되는지 확인하는 것도 정말 재밌었다.
위 사진에서도 확인할 수 있는데 스웨덴의 장점이 유제품이 진짜 싸다는 거다! 사진 속에서 10:- (10 크로나)로 할인하는 품목이 바로 요거트다. Alpro 1 liter는 한 팩에 1리터라는 의미로 즉, 1리터짜리 요거트 한 팩을 10 크로나 (약 한화 1300원)에 판다는 것이다. 우유는 제일 싼 게 8 크로나로 1000원 정도 된다. 그 외 치즈며 버터며 다 싼 편이라 요리할 때 아주 요긴하게 사용했다.
하여튼, 꿈과 희망의 장소(?)인 ICA에서 물걸레, 고무장갑, 수세미 등 청소 용품들을 구비한 뒤, 이불, 수건 등 필요한 물품들을 사기 위해 이케아로 향했다.
플록스타 근처 ICA 앞 정류장에서 804번을 타면 이케아로 갈 수 있다. 버스는 single ticket을 끊었는데, 편도도 요금이 26~27 크로나 (한화 3,300원)에 육박할 정도로 교통비가 비싼 편이다. (버스 요금이 요거트 1리터보다 비싸다) 도시 곳곳에 강의 건물들이 흩어져 있는 대학 특성상 대개 도보로 이동하기엔 조금 부담스러운 거리이기 때문에 이런 이유에서도 자전거 이동이 활성화된 거 같다는 생각을 했다.
한국에서도 가본 적 없는 이케아였는데, 정말 생각보다 훨씬 더 넓고, 거대했으며 무엇보다도 북유럽스러웠다. 뭔가 몽글몽글하면서도 깔끔한 느낌이 훅 와 닿아서 괜히 북유럽 대표 기업이 아니구나 싶었다. 그중 이케아의 여러 상품들로 꾸며낸 부엌, 거실 등의 데코가 정말 마음에 들었다. 같은 거실이더라도 여러 가지의 콘셉트 방을 꾸려서 배치해놓는데 그대로 따라 하고 싶을 정도로 예뻤고, 구경하기에도 쏠쏠했다.
한편, 유명하다는 이케아 미트볼 또한 먹어봤는데, 미트볼을 별로 안 좋아하는 편인데도 진짜 잘 먹었다! 호불호가 갈린다고 하지만 필자는 특히 링곤베리 잼이 정말 마음에 들었다. 한국에서는 보기 어려운 링곤베리 잼은 스웨덴처럼 서늘한 지방에서 잘 자라는 링곤베리로 만들며, 스웨덴 친구 말로는 스웨디안들 사이에서는 약간 한국의 딸기잼처럼 즐겨먹는 잼이라고 한다. 미트볼은 8개, 16개 둘 중 하나로 개수를 선택할 수 있었는데, 처음의 패기를 가득 담아 16개를 선택했고 그 외에 케이크와 음료를 포함해서 한화로 약 11000원 정도 냈다.
그다음 날인 1월 13일도 ICA와 이케아를 오가며 모자란 물품들을 구입하고 기숙사를 청소하면서 보냈다!
이야기를 마치기에 앞서 양 이틀 동안 있었던 웃긴 일화를 얘기해보려고 한다.
1.
스웨덴은 수돗물을 식수로 사용할 정도로 물이 정말 맑은 국가다. 어느 정도 나면 대학교에서 물 마시고 싶으면 화장실로 가서 세면대 물 떠다 마시고, 집에서도 목마르면 물컵 하나 들고 화장실 들어가서 떠 마신다. 그렇기 때문에 생수 개념이 없는 편인데, 이걸 과소평가했던 S와 필자는 마트에서 한참을 헤매며 생수를 찾아다니다가 물이 담긴 플라스틱 병을 발견하게 된다. 드디어 찾았다 하고 신나게 결제한 뒤에 집에 가서 병뚜껑을 여니 푸쉬쉬- 하는 김 빠지는 소리가 났다. 생수병인 줄 알고 샀던 게 알고 보니 탄산수였던 것이다. 사실, 살 때도 병에 레몬, 라임 등 과일 그림이 있어 좀 의아해하면서 안전하게 푸른 색상의 병을 구매했던 건데 그냥 아무 맛, 향 안 나는 탄산수를 고른 거였다. ㅎ 탄산수를 즐겨마시지 않는 편이라 산 김에 그냥 버리긴 아까워서 김 빼고 마셔봤는데, 탄산수에서 탄산 뺀다고 물이 되지 않는다는 걸 깨달은 경험이었다.
2.
플록스타는 한 층에 12명이 모여 살 정도로 사람이 많은 편이라 타 기숙사 대비 자주 발생하는 사건이 있다. 바로 냉장고 식품 도난 사건이다. 필자의 경우 기숙사 생활 이틀째에 우유 도난을 당했다! 열심히 이름도 포스트잇에 써놓고 붙여놨는데 도난당해서 슬펐다 (···) 그 때문에 다음날 아침에 시리얼을 못 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