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보니 실리콘밸리 UXUI 디자이너가 되었습니다.
2019년의 9월 1일, 집도 구하고 본격적인 학기 시작 전 시차 적응도 할 겸 학기 시작 한 달 전 미국으로 출국했습니다. 듣던 대로 시애틀은 일주일에 다섯 번은 비가 왔고, 목조 건물이 많은 미국 특성상 얇은 벽 사이로 들리는 생활 소음, 담배 냄새보다 더 자주 맡는 weed(마약) 냄새 등 참 낯선 것들 투성이었습니다. 그래도 학교 주변에 새로 지은 오피스텔 같은 건물이 많아, 미리 온라인으로 계약한 마이크로 하지만 아늑한 내 공간을 꾸미며, 한국에서 알게 된 동지들과 시애틀 관광을 해가며 적응을 마치고, 미국의 석사생활을 두렵지만 설레는 마음으로 시작했었네요.
제가 다닌 학교는 University of Washington이라는 주립대학에다가 학과는 MDes(Master of design) 코스로, 엔지니어링 학부에 있는 HCID 전공과 달리 학문적 성격이 강한 디자인 department 소속이라 상대적으로 백인의 비율이 높은 전공이었습니다. 오리엔테이션 날 처음 마주한 학과장 교수님은 온화한 인상의 백인 할머니였는데, 제가 상상할 수 있는 가장 미국적인 사람이었습니다. 온화하지만 단단한 기준이 느껴지는 그 모습에, 첫인상을 수줍음 많은 아시안 여자애로 남기지 않으려고 기를 썼던 기억이 아직도 납니다. 하루하루가 얕잡아 보이지 않으려, 한 사람 몫의 석사생으로 성장하려 고군분투했던 미국의 석사생활을 되돌아봅니다.
석사 생활의 첫 시작은 학과 건물 뒷마당에서 케이터링 서비스를 불러 진행한 소소한 오프닝 파티였습니다. 벚꽃으로 유명한 아름다운 캠퍼스가 내려다보이는 디자인 학과 건물에서 2년을 함께할 동기들과 교수님을 처음 만났습니다. 한 해에 4명에서 6명의 석사생들을 뽑는데, 제가 입학한 년도에는 나이도 비슷, 성별도 같지만 국적과 (미국인 테일러, 러시아인 베실리사, 중국인 페이, 한국인 나) 세부전공은 다른 4명의 초보 석사생들과 함께하게 되었습니다. 낯선 인종과 생각할 수 있는 모든 나라와 문화가 섞인 그곳에서 (이민의 나라 미국) 만난 사람들의 이름은 뒤돌아서면 생각나지 않아 애를 먹었습니다.
한국의 석사생활은 교수님 수발 (=교수님이 따온 연구 같이하기, 학과 수업 조교, 행정 등등)이 수업보다 더 중요하고 수학의 기회가 되어서, 사실 석사 수업에 할애하는 시간이 2할 정도였던 것 같습니다. 반면, 미국의 석사생활은 학부 못지않게 빡빡한 수업의 연속이었습니다. (학과, 학교마다 다를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졸업 논문을 메인으로 그에 관련된 전시를 교내 전시관에 전시하는 것이 졸업 요건이었기에, 논문을 읽고 요약하고 나만의 논리 구조를 세워 발표와 토론을 하는 수업은 2년 내내 있었습니다. 한국에서도 안 읽혀 쩔쩔매던 논문을 모국어도 아닌 영어로 일주일에 3-4편씩 읽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더군요. (요즘같이 AI가 고도화되었다면 요약을 먼저 시켜볼 수 있었을 텐데 아쉬운 부분입니다.) 그래도 사람이 죽으란 법은 없는지 나중에는 속독이 가능해지고, 부족한 영어표현은 인포그래픽 같은 시각화로 채워 넣는 임기응변이 가능해졌습니다. 약점이 오히려 다른 사람들이 인정해 주는 강점으로 바뀌는 것을 느꼈습니다. 이때의 경험들이 나의 약점을 정면돌파 해야겠다는 인생의 교훈을 주었달까요?
그리고 미국은 참 말로 천냥 아니 만 냥 빚도 갚고, 심지어는 더 벌 수도 있는 나라였습니다. 일단 부딪쳐보기에 최고의 환경이었죠. 일례로, 저보다 티칭 경험도 영어실력도 월등한 동기들 사이에서 TA(Teaching Assisatant-수업조교) 기회를 따낼 수 있었던 것도, STEM OPT가 아닌 MDes 과정을 워킹 비자 연장이 가능한 STEM 학과로 만들 수 있었던 것도 다 한번 말이나 해보지 뭐로 시작된 결과들이었습니다.
하지만 영어권의 동기들과 주변인들 사이에서 수줍음 많은 한국인이 내 주장을 펼치는 것은 정말로 쉬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또, 아무리 좋게 생각해주려 해도 말도 통하고 문화도 공유하고 있는 미국인들이 미국인 교수님들 눈에도 더 편하고 예뻐 보이는 것은 어쩔 수 없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렇다고 미국인이 미국에서 더 크고 다양한 기회를 쟁취하는 것을 마냥 부러워만 하고 있기에는 당장에 TA를 하고 받는 베네핏은 엄청났습니다. 학비 면제에 2주에 100만 원 가까이의 생활비까지 지원한다니….! (이 베네핏 또한 학교마다 매우 다를 수 있습니다. UW은 주립대라 지원이 좋은 편.)
그래서 제가 선택한 방법은 영어를 쓰는 자아를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영어의 억양과 제스처를 따라 하는 것뿐만 아니라 미국인들의 워너비 성격과 문화까지 학습한 나만의 머신 러닝 된 자아…! 나의 영어 실력은 고만고만이지만 영어 스몰톡 장인, 수업 조교 장인, 인턴 장인 등을 상황 상황에서 배우고 싶었던 사람들의 모습을 생각하고 자아를 갈아 끼우면 영어가 다섯 배는 잘해 보이는 효과가 날 수 있더군요. 말은 쉽지만 그게 되냐고….라고 생각하신다면, 누구나 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오버스러운 것을 질색팔색하는 ISTP 인간인 저도 가능했으니까 말이에요. 다만 갈아 끼울 자아를 학습하는 과정은 쪽팔림의 연속이고 그 부끄러움이 성장통이라는 것을 받아들인다면요!
이번 편에는 한국 대학원과 미국 대학원이 뭐가 다른지. 그 낯설었던 미국 대학원에서 살아남기 위해 제가 취했던 방법과 지금까지도 인생이 교훈삼은 삶의 태도에 대해서 얘기해 보았습니다. 다음 편에는 순수악에 가까운 미국 젠지들 사이에서 영어 고수 TA 자아를 학습 한 에피소드들에 대해 말해보려 합니다. 기대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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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배우고 성장하는 유익한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커피챗/멘토링 후 짧은 피드백을 부탁드릴 수 있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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