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속 풍성할 줄 알았습니다

by 소로소로



입추와 말복이 지나가고 처서가 코앞이다. 집중호우로 한바탕 난리를 쳤지만 더위는 아직 승전 기를 펄럭거리고 덩달아 몸도 마음도 지쳐가는 이 여름이 야속하기만 하다. 휴가기간에 무사히 살아남은 식물들은 보고 있자니 올해는 식집사 밥값은 했구나 므흣한 미소가 번졌다. 아침에 카페에 나가면 실내온도 33도 이글이글 더운 공기로 가득 찼다. 문을 열어 환기를 시키고 에어컨을 빵빵하게 가동해 간밤에 더위를 날려 주었다. 초여름에 고급 영양제까지 든든하게 주었더니 싱그러운 자태를 뿜어내는 새 잎들은 보고만 있어도 배가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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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이 주는 시원함



비가 오나 해가 뜨나 심지어 쉬는 날에도 매일 아침 밖으로 빼내서 6리터씩 시원하게 물을 주고 가게로 들이는 정성을 알아주니 사람들이 지나갈 때마다 예쁘다고 한 마디씩 해줬고 에어컨 바람이 잘 드는 곳으로 이사시켜 주었다. 뭐든 과하면 안 된다는 것과 자만심이 만나 시너지를 일으키는 순간 그다음은 처참했다. 시간을 다시 돌려 달라 애원해 보고 혹시나 아닐 거야 고개를 절레절레해보았지만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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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옷깃에 우수수 떨어지는 잎을 보고 있노라 마음이 아팠다. 물을 많이 줘서 그런 건가 왜 이래 마음이 심란했다. 원인은 시원하라고 틀어준 에어컨이 문제였다. 말 못 하는 식물도 사람과 같았다. 매일 9시간을 시원하게 하강하는 에어컨 바람에 냉방병이 걸린 거다. 은빛이 돌던 폴리안 잎은 점점 누렇게 바싹 말라 떨어졌고 주인의 마음도 건조하게 말라갔다.



연인관계에서 틀어지면 바로잡기 위해서 이것저것 시도하느라 원인 파악도 없이 미안해라고 말해버리는 어처구니를 식물에게 하고 있다. 에어컨 바람 때문에 싫었구나 그럼 통풍을 위해 햇빛을 좀 쐬어줄게 판단하고 밖에 좀 놔뒀다. 정말 아주 조금이라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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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수수 떨어지는 잎에 이어 녹는 잎을 보고 있으니 또 하나 가는 건가 여름아 얼른 썩 꺼져줄래 저절로 입어서 터져 나오고 나머지라도 건저 보겠다는 심정으로 꽃가위를 들고 싹둑싹둑 잘라줬다. 풍성했던 입과 가지들이 잘려나갔다. 잘 키워보려고 했던 게 과했다. 에어컨도 햇빛도 내 마음 같지 않구나 네가 말을 해준다면 참 좋을 텐데 정성과 무관하게 폴리안은 아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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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칼립투스 종류 중에 하나인 폴리안은 바람에 따라 팔랑팔랑 동전모양을 닮아 사람들이 좋아했고 유난히 예뻐하는 나무이다. 무럭무럭 자라 풍성해졌는데 영원할 줄 만 알아 사진 한 장 남기지 않았다. 소갈머리 없이 되어서 둥실 떠올라 하울에 움직이는 성이 된 저 아이를 어떻게 가위로 속아내야 하는지 이 여름에 사달이 날까 봐 만지지도 못하겠다.



대머리가 된 심정을 느껴보고 있다. 한 잎 두 잎이 소중한 이 마음 한 올 한 올 끌어올려 살포시 덮고 싶은 마음이랄까 어떻게든 여백을 채워 주고 싶지만 일을 저질렀다간 빈 나무 꼬챙이만 보게 될 거 같아서 당분간은 시도하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미안한 마음을 모아 내가 먹던 영양제를 조금 물에 타서 주면서 살아나라 말라죽지 말라고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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