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물주의 텃밭

by 소로소로



오래된 상가건물에 빈티지한 연베이지색 타일 짙은 갈색의 묵직한 철문을 밀고 들어오면 가게를 대표하는 이미지가 완성된다. 실내로 들어오면 문과 같은 색에 타일과 엔틱 한 가구들 하얀 벽면에 어울리는 식물들이 주인의 취향 따라 자라고 있고 손님들은 아기자기하고 소중하게 가꿔지고 있음을 한눈에 알아본다. 가게 안을 구경하고 싶어 커피를 일부러 사러 들어오는 손님도 있고 그냥 궁금해서 들어와 여러 가지 질문만 하시는 분들도 종종 있었다.



내가 식물을 사랑하는 만큼 건물주도 식물을 사랑한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똑같은 식물들은 키우시지 않고 다양한 식물을 심고 키우기를 반복하신다. 나와 결이 달라 내 눈에 너무나 지저분해 보였고 이런저런 조언을 해드렸지만 세대차이인지 몇 년째 내 말은 들은 척도 안 하시고 꿋꿋하게 본인의 스타일을 고수한다. 가끔 커피 찌꺼기를 모아서 달라고 말씀하실 때면 따로 바싹 말려서 드리는 것 외에 내가 특별히 해드리는 건 없으니 더 이상의 조언은 사치였다. 점점 뜨거워지는 날씨에 불쾌지수가 올라가고 더불어 갈증으로 아이스아메리카노를 연거푸 마시다 보면 화장실로 향하는 일이 늘어난다.



KakaoTalk_20230727_145244004.jpg 화장실로 가는 길


이 알 수 없는 조합의 식물은 내 눈에 이쁨을 받지 못하지만 출근해서 문을 열고 들어가면 건물주님은 해가 뜨겁게 타오르기 전 일어나셔서 물을 주시고 사라지셨다. 비가 오는 날에는 화장실을 가는 길에 잎들이 팔과 다리에 스쳐서 옷이 다 젖는다고 불평을 늘어놓아 보지만 들은 척도 안 하신다. 얼마나 싱그럽냐면서 오히려 그 정도는 이해하라고 하신다. 내 건물이 아니니 세입자의 설움을 건물주는 알리가 없다.




어느 날 출근해서 보니 화단에 파리가 웽웽 꼬여있다. 화장실 앞에 그렇게 되어 있어서 여쭤보니 배시시 웃으시며 무언가를 거름으로 묻었으니 며칠 이면 없어질 거라고 하셨지만 일주일이 지나도 없어지지 않은 걸 보면 생선뼈를 묻으신 게 아닌지 의심이 들지만 더 추궁했다간 밀린 월세를 독촉하실지 여기까지만 하자 저자새로 슬그머니 나도 내뺐다.



KakaoTalk_20230810_101847658.jpg
KakaoTalk_20230810_102720841.jpg
식물을 잘 키우시는 건물주


아담하고 예쁜 걸 키워보시라고 선물로 드렸다. 라일락 향이 코끝을 자극하고 주인아주머니도 흡족해하셨다. 작고 예뻤던 아이가 3년 차에 지나자 거대한 화분이 되어버렸다. 이렇게 잘 키우실 일인가? 난 분명 작은 포트에 심어진 것을 드렸는데 분갈이와 영양분을 얼마나 주셨는지 화분이 나중에 고추심어 키우는 볼품없는 플라스틱 화분으로 갈아탔다. 건물주님이 가게 앞에서 꽁초를 버리고 간다며 사람들이 못 버리게 마음씨 좋게 내놔 주셨는데 꽁초는 없어졌지만 그 자태가 나무가 될 상이다. (너도 생선뼈를 먹었니 참으로 튼튼하구나)



초여름만 되면 어디서 모종을 얻어 오신다. 화장실 뒤쪽으로 담벼락에 옹기종기 심어서 길러 드시려나보다. 저 많은 흙은 어떻게 흘러들어온 건가 가끔 궁금하긴 하다. 배양토라는 글이 쓰여있는 포대를 본적기 없기 때문이다. 그런 모종들이 무럭무럭 자라 빗물과 해를 듬뿍 머금었다.



KakaoTalk_20230727_145244004_06.jpg
KakaoTalk_20230727_145244004_09.jpg
KakaoTalk_20230727_145244004_08.jpg
KakaoTalk_20230727_145244004_07.jpg
KakaoTalk_20230727_145244004_05.jpg
KakaoTalk_20230727_145244004_02.jpg
KakaoTalk_20230727_145244004_04.jpg



방울토마토가 어찌나 튼튼한지 대가 손가락마디 만해질 거 같아서 토마토나무라고 불렀다. 정리를 하면 좋을 텐데가 입 밖으로 나오지만 참아야 한다. 나의 먹거리가 아니기 때문에 자꾸 잔소리가 올라오지만 옴~~~~ 정신수양을 하며 화장실 갔다가 눈을 질끈 감고 다시 되돌아와야 한다. 연일 이어지는 폭염으로 몸이 지쳐가고 나 역시 가게 화분들이 죽을까 노심초사라 건물주의 텃밭에 관심은 사그라들었다. 뜨거운 휴가를 보내고 가게로 출근했다. 다행스럽게 올여름은 가게 식물들이 무탈하구나 안도하는 마음이 들었고 별생각 없이 화장실로 향했다.



KakaoTalk_20230810_104858154.jpg



맙소사


한 단어만 입에서 터졌다. 무성했던 밀림은 온데간데없고 바싹 말라버리고 잎이 다 떨어져 있었다. 그 많던 오이는 어디로 갔고 토마토 몇 알만이 먹거리의 최종임을 알렸다. 막상 건물주의 텃밭이 한순간 사망한 걸 보고 있노라 내 마음도 쓰라렸는데 가꾼 사람의 마음은 어쩌겠는가 빗물이 수돗물 보다 영양분이 많다고 연신 물을 주고 영양분도 듬뿍 섞어서 주셨는데 며칠 만에 다 죽었다. 건물주는 속상한 마음을 담아 다시는 오이를 안 키운다며 가위를 가져와 바싹 말라버린 잎들을 정리해 치워 버렸다. 깨끗하고 단정하게 좀 키우시라는 말을 할 때는 별 생각이 없었는데 막상 이렇게 정리가 되니 나 역시도 마음이 좋지 않았다. 내년엔 내가 잘 크는 모종을 사다가 드려야겠다 싶었다.




이것저것 심고 케오는 게 취미인 건물주는 나의 엄마이다. 몇 년 동안 깨끗하게 좀 키우라고 잔소리를 했었는데 어느 순간 월세(용돈)를 드리지 못하니 마음이 편치 않았고 덕분에 나의 잔소리도 쏙 들어갔다. 엄마 이제 맘껏 심어 잔소리 안 할게 그리고 오이농사 망친 거 나 때문은 아닐 거야. 내년 농사를 기약해 봅시다. 안 키우면 더 좋을 거 같기도 해.




거친 텃밭

텃세 없음 주의

보기 싫으면 건물을 사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