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이 지나갔다.
한 여름 뜨거운 날 태어났지만 숨 막히는 더위가 기승을 부리면 조금씩 지쳐서 영혼까지 갉아먹었다. 단디 살아보고자 노력할수록 더 힘겨웠고 살이 점점 빠져 기운 차리지 못했다. 7월은 어떻게 근근하게 보냈건만 오히려 바빠지는 8월에 몸과 마음이 내려가 오롯이 가을이 빨리 오기만을 기다림의 연속이었다.
딸아이의 생일이 지나면 절기를 몸이 귀신같이 알아차려 처서를 기점으로 몸이 조금씩 살아났으니 다행일지도 모르겠다. 해야 할 일들이 순서대로 있어서 차근차근하면 될 터인데 마음은 그렇지 못했다. 시간이 아주 없었던 건 아니었다. 공부도 시험기간이 다가올수록 부담으로 차올라 포기하고 싶었다. 정말이지 이걸 왜 시작했는지 교권이 바닥으로 치고 있는 시점에 내가 독서지도사를 따서 뭐 하나까지 생각의 고리가 연결되어 처음 내가 왜 따려고 했는지의 생각은 이미 잊은 지 오래가 되었다.
2주째 아이 감기에 잠 못 이루고 새벽 내 기침을 해대느라 한번 깬 잠은 덩달아 못 자 새벽수영은 사치 일어나지도 못하고 입 맛을 잃은 지 오래 살이 빠지다 못해서 피골이 상접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포기가 빨라 시험 이틀 전에 포기라는 걸 생각했다. 덕분에 두근거리고 눈에 안 들어오는 책이 오히려 가벼운 마음으로 변해 돈은 냈으니 시험은 보자 어리석은 마음으로 바뀌어 편안해지자 자연스럽게 머리가 맑아졌다.
먹지도 버리지도 못하는 이 느낌
시험이 코 앞이라는 생각으로 가득하니 전화로 수다 떨기, 카카오톡 메신저, 글쓰기, 새벽수영, 고단함을 날리는 맥주 한 캔까지 어느거 하나 맘 편이 하지 못해서 병이 들었나 싶다. 오히려 빨리 끝내버리고 글을 쓰고 싶다는 욕망이 점점 넘쳐흘렀다.
억지로 책을 펼치고 읽고 있다고 외워지게 아닌걸 스스로 알기에 자꾸만 일어서서 밖으로 나가 1센티 남짓 자란 라벤더와 바질을 한참 들여다보는 게 유일한 휴식이었다. 차라리 브런치에 주절주절 글을 쓰면 더 나았을 텐데 친한 친구에게 거리감을 느끼는 이상한 어색함이 밀려와 오히려 멀리했다.
마음을 비우고 시험을 보고 난 뒤 이제는 모르겠다로 바뀌면서 글 써야겠다는 감정이 휘몰아쳤다. 책을 못 읽어서 찝찝했던 마음 아이들에게 바쁘다는 핑계로 짜증 부렸던 마음보다 글을 써야 내가 살겠구나 라는 생각이 다행이다 싶다.
이제는 마음이 힘들 때 누구의 도움보다 스스로가 올라올 만큼 딱 그 정도는 단단해졌구나 안도했다. 실패를 하면 다시 도전을 하면 될 것이고 아닌 길을 가는 거라면 다른 길을 가면 된다. 어찌 보면 참 막사는 건가 싶은 이 마음이 좋다. 억지로 끼워 맞춰 놓은 새 구두처럼 발이 다 까져 평생을 살 수는 없다.
아침에 딸과 도서관 오후에 아들과 다른 도서관 투어를 하며 하루도 쉴 수 없는 내 신세를 한탄하지 않았다. 그냥 읽고 싶은 책을 왕창 빌려와 비록 읽지 못할지라도 바라보며 웃는 그 정도의 삶에도 감사함을 느꼈다.
여름에 태어난 아이는 여름이 두려운 어른이 되었다. 결국 가을은 온다는 걸 아는 어른은 또다시 잘 시작해 보려 한다. 가을아 잘 부탁한다. 고생했다 소로소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