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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로소로 Jan 22. 2023

마지막 세뱃돈

미안해요.





며느리에게 명절은 고단하고 달갑지 않은 날이다. 나에게 설은 용돈을 얼마나 드려야 하나 계산기 두드리는 날이자 한순간 사라져 버린 친정아버지의 쓸쓸한 날이다.




일이 고단해 퇴근 후 반주로 시작하던 친정아빠는 언제부터인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항상 취해 있었다. 집에 친구들이 놀러 오고 싶어 할 때도 어린 마음에 항상 조마조마 아빠가 술 주정 하는 모습을 보일까 현관문 열기 전 심호흡을 하고 한 템포 쉬고 문을 열었다. 다행스럽게 친구들은 아빠의 발그레한 모습과 주절주절 하는 말들을 별로 신경 쓰지 않았고 나를 이해해 주었다. 





술에 취하지 않았을 때 아빠는 순한 양이자 꼼꼼한 분이셔서 회사에선 일 잘하는 분이셨다. 내가 어렸을 때 이란에서 근무했던 경험도 있었고 필리핀 파견 근무할 기회가 있다며 일 년간 준비하셔서 나가셨다. 가족들은 연봉도 많이 받고 술 주정하는 모습도 안 보게 된 행복한 마음을 담아 영어책과  MP3도 사드렸다. 안에서 새는 바가지가 밖에서 안 샐리가 있겠는가 날은 더워 몸은 축축 쳐지고 물가가 싸 한국에서 먹던 술 양에 몇 곱절을 들이부어 늘 취해 있었다. 일 년도 채우지 못하고 돌아온 아버지는 알코올 의존도가 전보다 더 심해져 일할 생각은 접어두고 실업급여를 곶감 빼먹듯이 드시며 다 탕진해 버리셨다. 






머리가 굵어진 자식들은 아버지의 취한 모습을 곱게 받아주기 어려워 바락 바락 싸우는 날이 잦았고 둘째는 대학 입학과 동시에 자취를 하며 집에 오는 날이 드물었다. 생각해 보면 나도 독립해서 나가면 그뿐이었는데 엄마와 늦둥이 막냇동생이 가여워 꾸역꾸역 우리는 참고 살았다. 시간이 흘러 남편의 오랜 구애 끝에 결혼하며 조금씩 안정감과 행복함을 맛보았다. 




최대한 친정에는 안 가는 걸로 암묵적인 합의가 되어서 생일 어버이날 명절에 밥만 먹고 바로 일어서 나왔는데 아빠는 그때마다 나에게 용돈을 달라며 애원하셨고 매몰차게 나는 뒤돌아 서면 내 뒤통수에 대고 인정머리 없다 하시며 사위에겐 넌 돈도 없냐고 마누라에게 쥐어 산다 그렇게 살아서 뭐 하냐고 핀잔을 주셨다.






사회 통념상 그때는 신경정신과에 입원해서 치료하는 게 정신병원에 넣고 꺼내주지 않는다라는 인식이 많아 치료도 길게 받지 못했고 아버지 몸은 쇠약해져 1년에서 6개월 사이 대학병원을 들락거렸다. 

가족들이 할 수 있는 건 입원하게 되면 치료비를 나눠서 내는 게 전부였고 제발 좀 술 좀 끊으라고 애원해도 아빠는 "내가 살아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한 줄 알아"라는 뻔뻔스러운 말씀만 하셨다. 





아빠는 신랑을 참 좋아했다. 가끔 가는 날이면 연신 옆에 앉혀두고 이야기하는 걸 좋아하셨는데 술냄새와 반복되는 술주정에도 싫은 내색 안 하고 몇 시간씩 들어주는 신랑이 참 고마웠다. 

임신했을 때 딸이길 간절히 바랐는데 아들인걸 알고 실망한 나에게는 말 못 하고 본인이 태몽을 꿨는데 사위 똑 닮은 아들이었다고 너무 좋다 하셨지만 나에게 직접 이야기해 주시지 않고 손주가 태어나는 날만 바랐다.  






40주가 지나도 아이는 나올 생각을 안 했다. 배가 불러 밥 먹는 것도 시원찮아하는 며느리가 안타까워 보였는지 웬일로 일찍 친정에 가서 쉬라는 시부모님 말씀이 반가울 텐데 발길이 안 떨어졌다. 눈에 넣어도 안 아플 외손주가 태어나는데 뭐 하나 사주시기는 커녕 늘 취해 있을 테고 앞으로 친정에 아이를 어떻게 데리고 오나 한심스러운 마음이 가득 차있었다.




오늘따라 술주정이 없어서 엄마에게 물었더니 며칠을 연거푸 마시다 속병이 나셨다며 오늘은 조용하게 보낼 수 있다고 하셨다. 집안이 조용해 기분은 좋았지만 유난히 힘이 없어 보였다. 평소 같으면 술 사드실까 봐 용돈을 안 드렸는데 이날은 왠지 지갑에서 십만 원짜리를 꺼내 아빠에게 드렸다. 아빠는 아이처럼 웃으시며 연신 고맙다며 눈에는 미안함이 묻어 있고 너무 좋아하셨다. 






며칠 뒤 잠결에 전화벨이 울렸다. 아침부터 사촌언니에게 전화올 일이 없는데 왜 했을까 언니가 우물쭈물한다. 아무렇지 않게 태연한 내 목소리에 언니는 전화한 게 실수구나 싶어 딴소리를 했고 눈치 빠른 나는 우리 집에 무슨 일이 생긴 걸 직감했다. 



"언니 무슨 일이야? 

나에게 아무도 연락이 없었거든 무슨 일 있는 거 같은데 엄마인지 아빠인지 그것만 말해줘"

"미안 내가 너무 일찍 전화한 거 같아. 작은 아빠가 돌아가셨어."

"내가 이따가 다시 전화할게."



전화기를 다시 보니 부재중 전화는 하나도 없고 출산예정일이 지난 내가 놀랄까 봐 가족들은 새벽에 아빠가 돌아가신 걸 알려주지 않았다. 남편과 통화 후 택시를 타고 정신없이 병원장례식장을 향하며 6개월 전 의사가 한 말이 떠올랐다. 신장기능이 많이 떨어져 치료 후 나가서  또 술 드시면 다음엔 돌아가신다는 말이 정말이었다. 아빠는 의사가 말한 딱 그만큼 더 살다가 가셨다. 






설날이 되어 세뱃돈을 드릴 때면 돌아가신 아빠가 생각난다. 며칠만 더 살다 가셨어도 사위 똑 닮은 외손주도 보셨을 텐데 평생 가족들 힘들게 하시더니 마지막은 뭐가 급하셔서 가버리셨나 원망스러웠다.

"내 애기 태어나도 아빠 때문에 친정에 와서 산후조리도 못하게 생겼어. 

맨날 술 먹고 주정하는데 내가 여길 어떻게 와있어! 진짜 징글징글하다."

"그래. 오지 마라 이것아! 내 집인데 내 편하게 살 거다."




임신한 상태인 나는 장례절차를 하나도 볼 수 없었고 지긋지긋하고 괴로웠던 시간의 아빠와 인사도 나눌 수 없이 연기처럼 사라졌다. 

술만 드셔서 용돈을 챙겨드리지 않다가 유독 눈빛이 안쓰러워 세뱃돈을 드렸고 그 마저도 다 사용하지 못하고 노잣돈으로 챙겨 가셨다.




아빠가 설날 차례상에 이제 저 갑니다. 남아있는 가족들 잘 돌봐 주세요 하고 인사했잖아. 
우리 잘 지내고 있으니까 하늘에서 좋아하는 소주 많이 드시고 나중에 우리 만나자.
 그때는 내가 술 많이 드릴게 한 번도 말한 적 없는데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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